고등학교 19 | 나는 충분히 훌륭했다
나는 생각을 멈추려 수학을 풀었다. 건조한 교실 밖에 나와 수학책을 들고 주야장천 문제를 풀었다. 사회학과에 진학하게 된 이상 '기하와 백터', '미적분 2'가 뭐 그렇게 중요하겠냐만, 내가 아는 생각을 멈추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복도를 지나가는 선생님은 수학책을 뜯어버릴 듯한 기세로 문제를 푸는 나를 보고선 "쟤, 무슨 대회 나간대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문제를 풀다가 지칠 때면 시집 한 권을 펼치고, 귀에는 이어폰을 꼽은 채로 일자 복도를 수십 번 오고 갔다. 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는 직선 도로 걷기뿐이었고 대학교에 가서는 더 이상 다리를 뻗고 앉는 편의를 바라기는 어려울 거라 어림잡아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날도 복도를 오가고 있었다.
'운 좋게' 합격했던 대학에서 연락이 왔다. 나보고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고 했다.
수능 성적 기준 또한 장학 기준에 포함되었다고 짐작했다. 학교 입학처 공지 게시물 중 장학 기준표를 살펴보던 와중, 나의 예상이 그대로 빗나갔음을 곧 깨달았다.
내가 받은 장학명은 수시 전형에 해당했고, 곧 내가 수시 전형 수석 합격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장학금은 한 학기 전액 장학금 정도로 적은 편이었으나 그게 중요할까. 그 소식을 접한 부모님께서는 너무 좋아하셨고, 담임 선생님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한 표정을 보이며 축하한다는 말을 남기셨다.
이 대학 합격이 보통의 운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었다.
그러나 그건 아주 잠깐의 행복에 불과했다. 한 대학의 수석 합격자가 다른 대학에서는 1차 합격조차 못 한다는 사실은, 해당 합격이 노력이 아니라 극도로 희박한 운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솟구쳤다.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졸업식까지 마쳤고, 나는 그대로 서울로 향했다. '노력의 한계'에 대한 문제는 이따금 나를 괴롭게 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이에 대해 생각하는 빈도가 매우 높아졌다. 그 시기에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술도 안 마시고 노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혼자 지내며 우울을 매일 품고 다녔다.
1년 뒤, 코로나19로 인하여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자마자 우울은 극에 달했다.
그리고 대학교 3학년 2학기 초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수능 후에 풀던 수학 문제는 그 학기 공학 전공에 큰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문과생이 공대 복수전공을 즉흥적으로 지원한 결과로 수많은 기초 강의도 함께 병행하는 등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강의나 교재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입학처 단기 근로 활동에 참여했다.
그날은 학교에서 수시 면접 전형이 진행되었다. 업무 배정은 매번 평등하게 배분한다면서도 운이 더럽게 없던 나는 연속 세 번 검역소에 배정되었다. 레벨 D 방역복으로 무장한 채로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학생들을 멍한 눈으로 바라봤다.
한 부자가 지나간다.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배낭을 멘 아버지는 긴장한듯한 아들을 푹 안아주었다. '두 분이 지방에서 오셨구나' 생각했다. 그리고선 '내가 면접 볼 때도 부모님이 함께 오셨다면 그동안 수고했다면서 저렇게 안아주셨을까'하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찰나.
문제가 풀렸다.
정확히 3년 만이었다.
나는 그 노력의 결과를 인정하지 못했다. 원하던 학과, 학교에 진학했다는 사실만으로 모두가 '그것까지 바라는 건 네 욕심이야'라고 말할 게 뻔했지만. 무한한 노력은 결국 내 노력만큼의 결과를 얻게 해주지 않았다. 그게 억울했고 우울했다. 근데 사실 그게 아니었다. 나는 이미 내가 소망했던 모든 걸 이룬 상태였다. 우울에 빠진 나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를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대학 합격은 수험생의 노력을 인정해주는 상징이었다. 근데, 어찌 보면 그 평가기준은 항상 모호했다. 능력주의를 대표하는 시험 성적은 그동안 해온 나의 노력 모두를 대변해주지 않았다.
나는 충분히 훌륭했고, 누구보다 노력했다.
'대단하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고등학교 2학년. 3학년이 되었을 때는 주변 선생님들이 나를 신뢰해줬고, 후배들은 나보고 '대단한 선배'라고 불러주기도 했다. 분명 그 말에 "에이 내가 뭐라고"라고 항상 대답했던 나의 음성이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충분히 훌륭하다.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 가진 것이 모두 같은 사람을 만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나는 내가 가진 것들로 최선을 다했다. 소중한 것을 잃어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음을 짓누르던 껍질이 벗겨진 듯이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졸업이 일 년 정도가 남은 시점에서야 나는 스스로에게 대학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게 되었다.
3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