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부터 N사에 출근했다.
초반 2~3주는 대기업, 글로벌 브랜드의 뽕을 흠뻑 느끼며 어깨가 잔뜩 올라갔다 (파견 계약직이었지만, 마음만큼은 이미 간부였다).
인수인계 여유 있게 받으면서 마켓 비짓을 다녔다.
그때 마다 스스로를 소개하며 돌렸던 명함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줄 모른다.
살면서 처음으로 소속감 비슷한 걸 느꼈다.
허니문 기간이 끝났다.
나를 뽑은 이유는 과장급의 산휴 대체 휴가로 임시로 쓰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 말인 즉슨, 10년 차가 했던 업무를 그대로 이어받아 해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솔직히 첫 회사였던 프랑스 V사는 치열하지 않았다.
워낙 업계 탑이기도 했고, B2B 비즈니스라서 한번 계약하면 몇십년이었으며, 프랑스 회사 특유의 여유 있게 하는 문화가 있었다.
햇병아리던 나는 그게 회사 생활의 디폴트라고 생각했고, N사와 허니문 기간이 끝나자마자 바로 느꼈다 - 와 여긴 개빡쎄구나.
사람들은 다들 똑똑했고, 나이스 했으며, 일도 잘했고, 적당한 자기 PR에 정치질도 기가 막히게 했다.
미국 회사 특유의 경쟁을 유도하고, 스스로 뽐내는 문화에 잘하는 사람은 철저하게 보상해 주고 부족하다 싶으면 메일 한 통으로 잘라 버리는 그런 곳이었다.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처음으로 압박을 느꼈고, 동시에 나의 부족함도 뼈저리게 느꼈다.
나와 함께 입사한 계약직 동기들마저 다 각자의 무기가 있었고, 나는 그냥 대학생과 별 차이가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면접에서 나를 이상하리만큼 잘 봐주셨던 분은 나의 매니저가 되었다.
그는 일로서도, 그 밖의 분야에서도 사내에서 자신의 입지가 단단한 젊은 이사님이었다.
그렇기에 나에 대한 기대도 높았으리라, 안타깝게도 나는 그의 기대 수준을 채울 수 있는 실력과 내공이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사람이 여유가 없고 초조하면 가지고 있는 능력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메일 하나 제대로 못 보내고, 엑셀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는 신입이 되어 버렸다.
주위 가족과 친구들은 계약직이라도 N사에 입사한 나를 자랑스러워했지만,
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 첫인상 조졌네!
그렇게 코로나 2년 차의 봄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