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 곰돌이 Mar 05. 2024

김현 <문학사회학>

  내 개인적인 정치 사상과 세상을 인식하는 인식론의 틀은 마르크스주의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 엥겔스의 표현으로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에 의해 세계를 끊임없이 변하는 변증법적 사고와, 물질이 관념을 선행한다는 유물론적 사고 방식을 통해 사회를 파악한다. 기계론적, 교조적 마르크스주의, 일명 스탈린주의에 반대하나 그렇다고 하여 레닌의 당이론을 버리지 않는 트로츠키주의자임을 자처한다. 다만, 내 문학적 취향-미적 취향은 전혀 좌파적이지 않다. 사람에는 서열이 없을 지라도, 글에는 서열이 있다고 믿는다. 신형철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시의 꿈을 꾼 산문과 그렇지 못한 산문이 있다던데, 그런 점에서 시적 사유를 추구하는 글을 사랑하고, 시를 쓰지는 못하지만 시를 투영한 산문을 쓰려고 한다.  그래서 다소 많이 생략하고, 간략화한 경향이 있지만, 텍스트로만 알고 있던 창비와 문지 논쟁에서 나는 문지파를 지지한다. 문단 내 좌파적 경향을  보이는 창비(주요 사상가로는 루차키의 리얼리즘, 리영희, 백낙청의 좌파 민족주의 등), 문단 내 순수문학을 추구하는 경향인 문지(주요 사상가로는 프랑스 사상가 바슐라르나 바르트, 김현과 김병익둥 ) 중에서 문지의 글이 조금 더 단아하면서 시적으로 섬세한 것 같다. 아주 극단적으로 간추리자면, 문단내 좌파들의 우상인 루카치와 문단 내 우파들의 아이돌인 바슐라르 중 바슐라르를 지지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문지를 정치적 우파로 취급해서는 곤란하다. 오늘날에야 둘 다 진보적 성향을  띄고, 김현 선생의 <행복한 책읽기> 등 메모집에서는 반제국주의와 인문 좌파로서의 꿈이 포착된다.  ) 서론은 길었지만, 정치적으로는 마르크스-레닌-트로치키를  지지하지만, 문학적으로는 횔덜린, 하이데거, 바슐라르 같은 반동적 사상가들을 선호한다. 


 김현 문학 전집에 실린 <문학사회학>은 문학과 사회의 관계를  규명하는 책으로, 서론에서 내가 언급했던 참여/순수 문학 논쟁이 결국은 인간의 자유스럽고 질서있는 삶의 건설을 위한 싸움 속에 통합될 것이라고 말한다.  위 논쟁을 정리하기 위해, 문학과 사회를 어떻게 정의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김현 선생은 문학은 비현실적 기능으로, 사회를 현실적 기능으로 정의한다. 사회는 인간의 현실을 문학과는 다르게 인간이 질서있게 살도록 제도화시키는 것이라는 뜻이고, 그래서 문학은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학사회학은 무엇인가? 선생은 문학을 사회적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문학이 어떤 형태로 제도화되었는가를 생각하고 그것의 의미를  반성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좁게는 문학이 대중에게 어떻게 전달되며, 대중은 그것을 어떻게 수용하고 있는가. 그것은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가를 따지는 것에서 시작해, 문학적 구조와 사회적 구조의 구조적 동형을 이해 설명하고, 그 밑바닥에 작가의 세계관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을 밟히는 것, 사회 변혁의 중요한 문화적 인자로 문학 작품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의 용어로 풀어내면, 경제적 토대인 하부 구조가 사회.문화적 토대인 상부 구조인 문학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규명하돼, 그 자율성을 인정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선생처럼, 문학을 위한 문학은 없고, 사회를 위한 문학 역시 없다고 생각한다. 코제브의 금과 금반지 비유처럼, 금반지라는 인간의 삶은 금인 사회와, 문학(구멍)이 공존해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는 말에 동의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기파멸적 유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