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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곰돌이 Aug 05. 2024

애니로 담긴 그로테크스 리얼리즘

-애니매이션 <체인소 맨>

애니로 담긴 그로테크스 리얼리즘

-애니매이션 <체인소 맨>     

 근래 방영한 재패니매이션 중 가장 깊게 다가와 비평의 주체로 삼을 만한 작품이 있다면  <체인소 맨>을 뽑고 싶다. <귀멸의 칼날>처럼 센세이셔널한 인기를 얻은 작품은 아니지만, 작품성의 측면에서 돋보였다고 말하고 싶다. <체이소 맨>의 세계관, 함축된 이데올로기와 주제, 서사 방식은 기존 일본 애니매이션에 비해 앞서갔고, 무엇보다 현실을 애니매이션이란 장르로 적절히 녹여내고 있다는 점에서 명작이라고 부르고 싶다. 본고에서는 만화가 아닌 재패니매이션으로서 <체인소 맨>을 평가하고, 이 작품이 시사하는 바를 말하고자 한다.


 그로테크스한 소년만화의 계승

후지모토 타츠키의 원작 <체인소 맨>을 원작으로 하여 방연한 애니매이션 <체인소맨>에서 가장 돋보이는 특징은 그로테스크함이다. 원작자의 전작에 비해 순화된 면이 있다고 하지만, 가장 시원시원한 살육은 시청자의 시각적 흥분을 야기한다. (물론, 악마와 계약한 데블 헌터는 다시 재생된다는 설정이 있다.) 점점 인기를 얻는 소년만화는 그로테스크해지고 있다. 소년만화의 전성기를 연 ‘원나블’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이후 신원나블(원펀맨,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블랙 클로버) 중 원펀맨 같은 경우, 악당을 한 번에 분쇄해버리는 폭력성을 보였다. 그리고 또 다른 원나블의 후계자로 불린 <진격의 거인>과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던 <귀멸의 칼날>은 폭력성으로 ‘만 19세 이상 시청가’ 시청 등급을 받았다. 체인소 맨은 점차 그로테스크해지는 소년만화의 계보를 잘 계승하고 있다. 거의 매화 피로 점철되고, 죽음이 등장한다. 그 결과 소년만화임에도 소년이 관람할 수 없다. 그렇지만 치열한 경쟁으로 인한 소외가 점차 심해지는 상황에서, 이런 잔인한 살육은 시청자들에게 원초적인 쾌락을 제공해준다.        


선악의 해체와 안티 히어로

 기존 소년만화를 기반으로 한 재패니매이션은 선한 주인공이 악당 세력을 물리치며 성장한다는 진부한 설정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나, 본작의 주인공 덴지는 기존 소년만화 주인공과는 다른 면이 있다. 바로 안티 히어로라는 점이다. 체인소의 악마 포치타와 계약했으며, 포치타가 죽은 이후 악마를 흡수해 체인소 맨이 되었다. 평상시에는 평범한 인간이지만, 전투할 때는 악마가 되어 악마들을 비롯한 악당들과 싸운다. 특히 머리가 기과한 전기톱으로 변하고, 팔에서도 전기톱이 솟아나는 전투 모드 체인소 맨은 외형상 빌런에 가깝다. 외형뿐 아니라, 실제로 안티 히어로의 자질을 갖추었다. 평면적인 정의로운 소년만화의 주인공들-<강철의 연금술사>의 에드워드 엘릭, <나루토>의 나루토, <귀멸의 칼날>의 탄지로 등-과 달리 정의와 도덕이라는 관념은 그에게 없다. 단지 체인소와 융합되기 전에는 부모의 빚 탕감을 위해 악마들을 도살했으며(그러면서 잼도 바르지 않은 식빵만 먹었다) 이후 아침밥을 준다는 말에 공안에 입사한다. 그가 공안에 입사해서 집과 식사가 마련되자, 그의 삶의 목적은 ‘성적 욕구 충족’으로 바뀐다. 기존의 소년만화 주인공들이 도덕(에드워드 엘릭), 공동체 (나루토), 가족(탄지로) 등 이상적 가치를 위해 헌신했다면, 덴지에게는 원초적 결합 욕구가 바로 그의 삶의 최종 지향점이다. 마치 격렬히 부딪히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체인소처럼, 그는 강렬히 여성의 신체와 마찰하고 싶어한다. 바슐라르의 개념을 빌리자면, ‘노발리스 콤플렉스’를 보이는 주인공이다. 소년만화는 지독하게 기사도적이거나, 정의로운 천치형 주인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체인소 맨은 이와 달리 매우 현실적인 이유로 활동하는 캐릭터이다.

 한 가지 또 주목할 만한 구조는 악마와의 계약이다. 주인공을 비롯한 공안 일행은 악말를 퇴치하기 위해 악마가 된다. 한 마디로, 목적만 정당하면 과정이 어떻든 상관없다는 것이다. 기존의 소년만화의 주인공은 목적을 위해 과정을 희생하는 것, 예를 들어 적과 싸우기 위해 동료를 희생하는 것과 같은 전개가 없었다. 목적이 정의롭다면, 과정 역시 정의로워야 한다고 생각해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덴지는 다르다. 덴지는 박쥐 악마와 싸우면서 민간인을 별로 신경쓰지 않았으며, 사람이 타고 있는 차를 던지기까지 했다, 본인 자체가 악마화될 수 있고, 빚을 갚기 위해 죽어가는 포치타에게 피를 주는 대신 힘을 계약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기존 소년만화의 선악의 대립을 해체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비도덕적인 소년만화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허무주의

 앞서 언급한 그로테스크함과 더불어 작품 전체에 스며든 관념 중 하나는 ‘허무주의’이다. 전혀 다른 장르이지만, 애니매이션을 보다 보면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으로 이 세계의 공허함을 폭로한 기형도의 시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안티 히어로인 덴지에게 정의, 이상, 도덕과 같은 관념은 공허할 뿐, 현실적인 쾌락이 그의 원동력이다. 식빵보다 더 나은 식사를 원하다가 식사가 충족되자, 그는 성적 욕구를 느끼며 여성의 가슴을 만지는 것을, 키스를, 그리고 섹스를 갈망한다.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역겨운 묘사지만, 이상을 상실한 지옥에서 사는 것 같은 평범한 현대인을 잘 묘사한 것 같다. 마침 작중 배경이 소련이 붕괴된 1990년대 중후반인데, 사회주의라는 이상이 좌절되고, 점차 신자유주의의 질서에 물화되어 원초적인 쾌락만 갈망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덴지라는 소년을 통해 입체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애니매이션에게 기대되는 것 이상을 보여주었다. 마치 그로테크스 리얼리즘을 애니매이션으로 담아냈다고 할까. 세밀히 들여다보면 아쉬움이 남지만, 근래 애니매이션 중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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