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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곰돌이 Aug 08. 2024

물질적 풍요속 울리는 공허한 상실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물질적 풍요속 울리는 공허한 상실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들어가며

 무라카미 하루키, 90년대 이후 문학계에서는 비평가만이 아니라 문학도와 독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뜨겁게 논쟁이 되는 이름이다. 누구는 인생 작가이자 노벨상 수상 후보라는 평가부터, 삼류 작가라는 평가까지 그에 관한 다채로운 평가가 공존한다. 하나로 통일된 의견으로 정리하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하루키가 한국 문단에 울린 파동의 크기가 거대함을 알 수 있다. 남진우 평론가가 90년대 한국 소설에 속 불어온 댄디즘 바람의 근원을 하루키 작품과 왕가위 영화에서 찾은 것처럼, 90년대 이후에도 한국 문단에서 하루키라는 세례 혹은 저주를 여전히 느낄 수 있다.

  하루키의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그의 독특한 문학 세계를 여는 이정표 같은 작품이다. 그의 작품 세계를 총괄하는 '상실'의 키워드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상실과 소외

 하루키의 문장은 수려하지 않지만 단백하고 읽기 쉬워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는 평론가들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대중들에게 하루키라는 이름이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적이거나 거시적인 사건이 없더라도 단지 간결하면서도 날카로운 문장과 일상적 사건들로 통해 현대인의 물질적 풍요와 반대되는 상실을 포착하는데 탁월하다.

 이 소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상의 단면을 통해 현대인 고독과 소외감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그의 모든 작품을 아우르는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역시나 그의 작품 세계를 망라하는 '섹스' 역시 작중에서 삶의 쾌락보다는 삶의 허무함을 증폭시킨다. 주인공은 자신과 성관계를 한 세 명의 인물들을 통해 인생에 있어 심각한 갈증을 느끼고, 그것을 해소하려고 했는지 청춘의 한복판에서 맥주만 들이킬 뿐이다.

하루키 소설의 또 다른 단골인 '지인의 죽음' 역시 마찬가지이다. 섹스와 죽음. 조르주 바타유에 따르면, 에로티즘이란 그것은  죽음까지 인정하는 삶이라고 했다. 주인공과 섹스했던 세 명의 여성 중 마지막 불문과 연인의 죽음은 주인공에게 더욱 삶의 허무함을 느끼게 해주었을 것이다. .



 이야기의 무질서한 총체적 융합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점은 하루키 특유의 구성이다. 간결하면서도 세밀한 묘사, 그리고 일상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요소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이야기들이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자유로운, 혹은 무질서한 서술 방식은 독자들에게 현실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하는 효과를 준다. 한국에서도 박일문의《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이런 스타일의 영향받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8월 6일부터 26일까지 20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첫섹스를 했던 고향에서의 회고를 통해 주인공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한다



 당시에는 많은 비아냥을 받은 방식이나, 현대인의 일상적 상실감을 포착하는데 있어서 탁월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소설인지, 일상 산문인지 잊게 만들면서도 결국은 세계와 자아의 대립을 통해 상실감과 이로 인해 멜랑꼴리가 느껴진다는 점에서 분명 '소설'이다.



물질적 풍요와 상실감

《노르웨이 숲》의 한국 번역명 중 하나인 '상실의 시대'는 하루키의 세계관을 탁월히 요약한 단어이기도 하다. 이 소설 역시 '상실의 시대'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물질적 풍요의 시대 속 실존에 대한 상실감이 드러난다. 소설의 배경인 60, 70년대 일본은 급격한 경제 성장과 함께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였다. 이 시기의 젊은이들은 전통적인 가치관과 현대적인 사고방식 사이에서 갈등을 겪으며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었다. 하루키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주인공의 내면적 갈등과 성장 과정을 그려낸다. 이는 독자들로 하여금 당시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전공투로 대표되는 변혁 운동도 등장하지만, 반대로 자본주의에 물화된 대중문화는 물질적 풍요감을 빙자한 실존적 상실감을 선사한다. 섹스를 통해 허무감을 느낀 주인공은 데모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물화된 인물도 아닌 단지 맥주로 상실감을 달랠 뿐이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또한 당대 유행한 음악과 하루키의 취향이 반영된 문학, 영화 등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주인공이 음악을 통해 느끼는 감정, 문학 작품을 통해 얻는 영감, 그리고 영화 속 장면들이 소설 곳곳에 등장한다. 이는 하루키가 대중문화를 어떻게 문학적으로 재해석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독자들에게 친숙한 느낌을 주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그러면서도 단지 반영 뿐 아니라, 허구적 인물을 창조하기도 한다.하루키가 만들어낸 가상의 작가 '데릭 하트필드' 인용을 통한 독자 우롱 역시 소설의 기묘한 매력이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하루키 문학의 출발점이자, 그의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작품이다. 일상적 이야기 속에 담긴 깊은 실존적 고민과 독특한 문체는 하루키를 대표하는 요소들이다. 이 소설을 통해 우리는 일상 속에서 잃어버리기 쉬운 작은 의미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삶의 본질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하루키의 첫 소설이지만, 그 안에는 이미 그의 문학 세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는 그가 이후에 발표한 작품들과도 긴밀하게 연결되며, 그의 문학적 여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후 본작의 주인공이 이어지는 3부작으로 독특한 하루키 월드가 구축된다.

 한편으로 하루키가 말하는 '상실의 시대'에서 여전히 걸어가는 우리들에게 이 작품은 맥주 한 잔을 권한다. 가끔 전력으로 허무헌 무언가를 추구하기보다 느긋하게 작중 주인공과 친구 쥐처럼 취해보면 어떨까. 항상 취해 있어야 한다. 보들레르의 명시 <취해라> 의 서문 "핵심은 바로 거기에 있다 /이것이야말로 /그대의 어깨를 짓누르고 /그대의 허리를 땅으로 /굽히게 하는 무서운 시간의 /중압을 느끼지 않게 하는 /유일한 과제이다 "이 떠오른다. 취한 채로, 속세를 휘젓는 도시의 굉음보다 차분히 불어오는 바람의 노래에 귀기울여보면 어떨까 싶다.



 참고로 나는 주인공처럼 스물 한 살 8월 여름 방학, 고향에서 이 책을 접했다. 이토록 사소한 우연은 축복으로 여기고 싶기도 하다. 공허한 아우라를 즐겨볼까. 일본식 드라이 맥주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한 캔을 까서 마시고 싶다. 쥐가 먹은 콜라 부은 팬케익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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