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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곰돌이 Aug 13. 2024

혁명적 사상가 발터 벤야민

혁명적 사상가 발터 벤야민

 

오늘날 많은 진보 지식인의 우상이자 많이 인용되는 학자가 있다면 발터 벤야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좌파 진영에서 가장 많이 애용되는 사상가가 게오르크 루카치였지만, 소련의 붕괴와 총체성을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잘못된 흐름으로 인해 그 위상은 과거와 같지 않다. 그러나 발터 벤야민이라는 이름은 아직도 유효하고, 많이 인용된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를 반자본주의 사상가이자, 엄연한 혁명적 사상가임에도 그의 혁명적 사상을 거세된 채 미디어 매체의 선구적인 연구자나 단지 멜랑콜리커로 이해된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발터 벤야민은 혁명적 사상가이다.

그는 유대인 가문에서, 그것도 조금 부유한 프티 부르주아 가문에서 태어났다. 당연히 어렸을 때부터 유대교의 영향을 받았다. 혈연적으로 유대인의 피가 있지만 스스로를 유대인으로 규정하지 않는 마르크스주의자인 마르크스, 루카치, 트로츠키 등과 달리 그는 죽는 날까지 스스로 유대인이라 생각했고, 유대교 사상을 완전히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의 마지막 글로 알려진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에서도 메시아, 구원, 천사 등 유대교의 개념들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그의 메시아 사상은 고대 카발라 사상을 원형으로 하면서도 그대로 교조적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 그는 수동적으로 기다리다가 메시아가 강림해 기존 세계를 파멸시켜야만 구원이 가능하다는 고대 신비주의를 거부하고, 메시아를 모종의 변혁적 혁명으로 규정했다. 이것이 벤야민 사상의 핵심이다.

그가 태어날 때부터 마르크스주의자였던 것은 아니다. 유대교 신비주의 사상을 가진 천재 비평가였지만, 그의 사상은 연인 아샤 라시스와 교제하면서 익힌 마르크스주의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혁명적 사상가 발터 벤야민은 없었을 것이다. 과장하자면 시온주의자인 친구 숄렘의 영향을 받아 테러 국가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사상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한편 그의 혁명적 사상은 기계적 유물론자인 스탈린주의자들과 대비되는 인간학적 유물론을 기반으로 한다. 그의 초기 사상을 유대교와 멜랑콜리로 설명할 수 있다면, 후기 사상은 혁명의 능동성을 강조하는 인간학적 유물론이다. 벤야민 1926년 12월년부터 1927년 1월까지 두 달 가량을 러시아 모스크바에 거주하기도 했다. 그러나 벤야민이 마주한 러시아는 혁명이 좌절되고 반혁명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결국 벤야민은 변질되어 가던 소비에트에 합류하지 않았다. 좌파 아웃사이더로 신들이 떠나간 시대, 구원을 위한 서사시를 준비하려고 했다. 결국 완성되지 못한 초고들은 <아케이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사후 출간되었고, 그는 일상의 사물에서 혁명을 포착하려고 했다. 사후 뒤늦게 발견되어 출간된 이 책은 많은 진보적 사상가들에게 영감이 되어 사회학, 철학, 문학 등 여러 분야를 막론하고 인용된다.

그의 가장 유명한 텍스트는 아우라 개념이 담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다. 유물론적 관점에서 아우라라는 개념을 해체한 기술을 예찬한다. 특히 오늘날 미디어 비평의 경전과도 같은 작품이라 좌우를 불문하고 많이 인용된다. 그렇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이 글의 정치성은 많이 은폐된다. 벤야민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노동계급을 각성시킬 가능성을 엿보았다. 특히 노동계급이 혁명의 주체가 되기 위해 그는 영화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이 분석이 유효한지는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과 대비되어 많은 논쟁이 되지만, 적어도 그가 혁명을 위해 글을 썻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글 중 아방가르드한 형식의 <일반통행로>이나 멜랑콜리라는 키워드로 묶이는 문학 비평도 충분히 학술적 가치가 있지만, 가장 혁명적인 그의 글은 단연코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이다. 기존 헤겔주의 역사관을 거부하며 주류 마르크스주의를 거부하고, 마르크스주의의 능동성을 강조한 그의 사상은 혁명적 사상이다. 오늘날과 같은 전쟁과 혁명의 시대, 몰락의 위기에서 구원을 강조하는 그의 사상이 아직도 타오르는 이유이다. 벤야민이 여러 가지 이유로 혁명가는 아니었지만, 그의 사상은 후대 혁명가들이 본받아 마땅한 혁명적 사상이다. 혁명이 불가능하다고 믿어지는 시대, 그의 사상이 빛나는 이유이다. 거세되지 않은 벤야민의 혁명적 사상은 우리를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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