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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곰돌이 Aug 21. 2024

상실한 제주의 푸른밤

들려주소서, 무사 여신이여, 황폐화되어 가는 제주의 공허함을, 슬퍼서가 아닌 공허해 우는 오름 속 풀벌레들의 노래를,  

영혼의 은사, 게오르크 루카치처럼 말해볼까. 제주의 푸른 밤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러나 불행하게도 제주의 밤하늘은 생기를 잃고 타락하니, 그 괴로운 풍경의 서울의 창공과 다를 바 없다. 낭만적 바다 풍경에 조명조차 희미하여 목가만 잔잔하게 울려퍼져, 수고한 영혼들을 치유해줄 것만 같은 한국의 유토피아적 장소로 미화되던 제주는 미디어로 만들어진 시뮬라크르에 불과하다. 목가적 풍경은 사물화라는 바람에 쓸려 페허가 되었고, 그 폐허에서 헛된 유토피아 구축을 위한 시도들-야자수 심기, 인공적 조형물-은 더욱 괴기하게 다가올 뿐이다. 자연은, 자연일 때 가장 빛나고, 제주의 바다는 어디선가 비춰오는 달과, 별들,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을 때만 그 본연의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이 쓸쓸한 목마가 서있는 이호태우던, 동남아에 대한 어설픈 모방으로 괴로운 색달해변이던 간에, 그 모든 것을 집어 삼킬 것만 같은, 파도의 소리가 인위적 인공물에 오염되지 않을 때만 가능하다. 

 제주의 이상적 풍경은 오후의 햇볕을 담은 파도와 같다. 해변으로 파도가 몰아칠 때 마치 용이 승천하기 위해 바다를 헤엄칠 때 흘리고 난 풍경과도 같다. 그런 풍경을 볼 때, 멀리서는 어색한 피조물들이, 가까이서는 사소하게 자욱한 쓰레기들이  눈에 밟힌다. 제주는 유물론적으로 봤을 때도, 시인의 시선으로 봤을 때도 나약해져 생기를 잃었다. 제주의 바다는 더 이상 동경할 곳이 되지 못한다. 육지로부터 흘러온 도시의 파편들은 목가의 편린이 남아있는 제주의 낭만을 헤쳤고, 그 낭만이 상실된 곳에는 허무한 바람만 불어온다. 그런 바람이 그윽한 제주의 해변은, 묘지와 같아서, 더욱 은거할 곳이 되지 못한다. 같이 울어줄, 아니 울음에 파묻혀 존재조차도 망각할 숲으로 가자, 존재의 숲이 아닌 존재 망각의 숲으로 향하자. 한라산의 가장 그윽한 어딘가로, 몸을 의탁한 체, 영혼이 가장 높은 위치에 도달할 수 있는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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