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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곰돌이 Aug 26. 2024

공허한 시대, 한국 출판 시장을 점령한 쇼펜하우어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와 생철학 신드롬

공허한 시대, 한국 출판 시장을 점령한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와 생철학 신드롬

 베스트셀러를 보면 그 사회의 초상을 볼 수 있다. 단지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에 베스트셀러인 책들을 제외하고서는 베스트셀러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나름 한국 출판 시장에 애정을 가진 독자로, 지난 수 년간 베스트셀러를 추적한 조약한 경험을 바탕으로 베스트셀러를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 번째는 자기계발서이다. 처세술, 인간관계, 경영, 경제, 부동산, 재테크 등 워낙 범위가 넓은 분야라 하나의 범주로 묶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학이라는 특징이 있다. 두 번째는 감성 에세이이다. 우울, 불안, 사랑 등 현대인의 마음의 병폐를 풀어낸 에세이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다채로운 표지와 그렇지 못한 내용, 문학적 미문보다는 단조로운 문장들이 그 특징이다. 세 번째가 자기계발적으로 곡해된 인문학 고전 해설서이다. '마흔에 읽는'시리즈가 유명하며, '~의 말', 이지성 작가이 책 등이 대표적이다. 이 시리즈들은 고전 입문자를 위한 책인 척 하지만, 인문학 정신이 결여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문학의 핵심인 인간 해방을 위해 헌사하는글들이 아닌 자본주의적 가치를 교묘하게 강조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중 대표저작이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이다. 한국에 생철학 신드롬을 불러온 대표주자이다. 쇼펜하우어는 책 뿐 아니라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인터넷에서도 그의 아포리즘은 자기계발이나 동기부여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그렇다면 한 번 쯤 들어본 쇼펜하우어는 누구이며, 왜 200년 후 한국에서 센셰이셔널한 인기를 자랑하는가?

 1)반헤겔주의자 쇼펜하우어
근대 철학의 종언이자 현대 철학의 아버지는 단연코 헤겔이다. 헤겔은 칸트, 피히테, 셀링으로 이어진 독일 관념론 철학을 완성시킨 동시에 마르크스, 포이어바흐 등 후대 철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의 안티들도 존재했는데, 바로 그 대표주자가 쇼펜하우어이다. 이미 한국 사회에 널리 알려진 니체가 반헤겔 철학을 개진시켰다고 알려졌지만, 그 선배격인 철학자가 바로 쇼펜하우어이다. 사실 쇼펜하우어는 헤겔과 동시대에 살면서 완벽하게 패배했던 인물이다. 당대 인기와 위상에서 쇼펜하우어는 속된 말로 듣보잡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그 유명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비롯해 유명 저작을 많이 남겼다. 그 중 대중에게 가장 유명한 책은《쇼펜하우어의 인생론》이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부록 정도 되는 글인데, 아포리즘(잠언)형식으로 되어 있어 사랑, 연애, 명예, 부와 같은 인생의 전반에 있어 그의 통찰을 보여준다. 그 특징은 인간을 매우 염세적으로 본다. '사는 것은 고통이다'라고 요약할 만한 그의 사상은 탐욕, 명예, 사랑은 다 부질 없는 것으로 보았다. 사랑은 성욕으로, 명예는 헛개비로 본 그의 염세주의는 헤겔의 인간주의와 대비된다. 특히 천박한 여성관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시대적 여성인권 수준이 오늘날과는 차이가 있지만, 유독 쇼펜하우어의 여성관은 더욱 천박하다. 이러한 염세주의는 초기 니체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이후 하이데거로 이어지는 반헤겔 철학의 선구자가 된다.

2)쇼펜하우어 유행과 한국 사회
 쇼펜하우어의 인간관이 가장 큰 문제인 점은 인간을 총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동물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리처드 도킨슨의 저작 《이기적 유전자》의 요지와 비슷하다. 인간이 자유롭고, 호혜로운 존재가 아니라 동물적 존재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쓸데 없는 허영심이 아니라, 일종의 해탈을 말한다. 특히 그는 불교의 붓다에게 많은 모티브를 얻었는데, 중생구제와 해탈로서의 수행을 둘 다 강조하는 불교를 곡해해 마치 수도승 같은 삶을 말한다. 한 마디로 인간적 가치는 다 부질 없으므로 해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사상이 유행하는 이유는 긍정적이고 사회 기류가 아닌 염세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때문이다. 행복한 시대가 아닌 불행한 시대이기에, 슬프게도 불행한 삶을 통찰한 철학자가 인기를 끌고 있다. 보다 일찍 부흥한 니체의 유행은 쇼펜하우와 달리, '운명을 사랑하라'라며 새로운 이상을 지향하나 쇼펜하우어에게는 그런 이상조차 없다. 그렇다고 쇼펜하우어가 자살이나 극단적 비관론자는 아니지만, 그의 사상이 퍼진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그만큼 아프다는 비상경보이다.

3)《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의 비결
 이 책의 장점은 학술적인 이해가 없는 대중에게 쇼펜하우어의 세계세 초대하는데 있다. 그래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어려운 인식론을 풀기보다 일종의 삶의 지혜로서 쇼펜하우어를 풀어낸다. 특히 '마흔에 읽는'이라는 제목에 맞게 삶이 무료해지는 사십대의 초점에 맞춰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으로 중년의 행복을 고찰한다. 학술적으로 쇼펜하우어를 다루기보다 그의 아포리즘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인 에세이에 가깝다보니 논리적이기보다 감성적이다.  그래서 철학책으로서의 가치는 낮다. 즉, 학술적 의미로서의 완성도는 낮다고 하고 싶다. 쇼펜하우어 이야기는 사실 서문에 10페이지 정도가 끝이고, 쇼펜하우어의 말을 빌려 자신의 이야기만 적어낸다. 마치 쇼펜하우어의 사상서인지, 저자의 에세이인지 햇갈릴 정도이다.
그렇지만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200부나 찍어낸 데에는 그 이유가 있다. 앞서 언급했던 것 대로, 병약한 시대, 특히 이기주의적 개인주의가 팽배한 시대이기에 쇼펜하우어의 사상이 잘 맞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요인으로는 쉬운 난이도를 들 수 있다. 학술적 책이 아니 때문에 대중에게 쉽게 읽혀 쇼펜하우어의 어려운 철학 내용에 대한 이해 없이도 쇼펜하우어를 읽은 듯 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특징은 마흔에 읽는 서양 고전 시리즈의 특징이다)
 그리고 부가적으로 디자인에도 장점이 있다. 딱딱한 느낌이 나는 철학자의 느낌을 탈피하기 위해 쇼펜하우어의 초상을 그린 그림에, 모던한 느낌의 초록 표지는 대중의 취향에 부합한다. 다른 철학원저작들과 달리, 딱딱하지 않은 표지는 이 책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게 한다. 그리고 책 중간에 등장하는 일러스트 역시 가독성을 높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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