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스트의 성채 앞 모세의 비평

함돈균, 『얼굴 없는 노래』, 문학과 지성사, 2009

by 꿈꾸는 곰돌이

함돈균, 『얼굴 없는 노래』, 문학과 지성사, 2009



오늘날 글쓰기와 비평의 산맥의 정상에 모두 안착한 사람 중 함돈균이라는 이름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처음 접한 그의 저작은 『사물의 철학』인데, 사유의 깊이와 풍부한 인문학 지식이 모두 갖춘 훌륭한 책이다.

그의 첫 평론집이자, 2000년대 문학 실제비평을 다룬 『얼굴 없는 노래』에 실린 몇 편의 글을 읽었다. 평론집에 실린 모든 글을 읽고, 이해한다면 얼마나 복될까? 비평집을 읽는데, 다루는 텍스트에 대한 이해와 상정하는 이론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다면, 텍스트와 의미가 따로 노는 괴로움을 느끼기 쉽다. 그래서 한 평론집을 읽고, 건질 수 있는 평론이 몇 개, 혹은 단 한 개라도 있다면 충분히 성공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서문의 지도하에 몇 개의 평론이라도 사유의 성좌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복된 독서일 것이다.

이 책의 서문은, 대다수의 첫 평론집에 실린 포부처럼, 함돈균 평론가 본인의 비평론을 밝힌다. 본인의 글을 다듬은 서문 <해석에 관하여>의 인상 깊은 문장으로 함돈균 비평의 세계로 초대한다.

“비평은 스스로가 기호가 되어 그 앞의 텍스트로서의 기호들과 대결한다. 그것은 해석 자체를 시간의 지평 위에 출현한 역사적 사건으로 만들기 위한 싸움이며, 텍스트의 잠재성을 밝힘으로써 아직 도래하지 않은 새로운 기호를 생산하기 위한 실천의 한 방식이 된다.”

-p.9

책에 실린 글 중 가장 깊게 남은 글은 「계급 의식, 리얼리즘의 깃발을 들고 일어서다」이다. 이 텍스트는 내가 그토록 사방을 헤매며 찾던 리얼리즘, 마르크스주의 비평의 정수가 담긴 오아시스처럼 느껴진다. 젊은 비평가로서의 날카로움과 마르크스를 곡해하지 않고 해석하며, 한국 리얼리즘 계보의 플로우차트를 완성한 명작이다. 이론으로 무장되어 단단하지만, 한국 현실에 맞게 맞춰 잘 구부려졌다. 신채호에서 시작해 카프를 거쳐 황석영과 조세희로 지나 방현석으로 이어지는 리얼리즘의 깃발의 붉음을 위해 내 한 몸 다 갖다 바치고 싶은 열의를 느꼈다. 비평에 실린 작품 모두 주옥 같다. 그동안 외면해 온 카프도, 황석영이 구축한 리얼리스트의 성벽을 이룬 정통 리얼리즘 작품들을 다시금 읽어야 겠다. 깃대가 흔들린다, 읽어야겠다. 리얼리즘 문학이란, 오래된 미래다. 그렇다고 해서 모더니즘 문학을 반동만으로 규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가장 빛나는 우리 위의 별은 리얼리즘이다.

평론을 다 읽고, 방현석의 첫 소설집 『내일을 여는 집』 에 실린 「새벽출정」을 다시 읽었다. 박노해에게서만 느꼈던 새벽의 아우라와 산문으로 느낄 수 있는 서사의 몰입감에 정점에 오른 작품이다. 도자기 공장에 있는 듯한 현장감, 젊은 여성들의 동지애, 노동자 간의 연대와 계급 적대의 울분을 통한 대자적 계급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나 역시 그 새벽에 대오에 들어가 팔뚝질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한국 노동 리얼리즘 문학의 최고점에 오른 소설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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