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 <시민문학론>에 대하여

9.8 독서일기

by 꿈꾸는 곰돌이

『창작과비평』 1969년 여름호에 실린 백낙청의 평론 <시민문학론>을 읽다. 원래 창비 초창기인 계간지에 실렸다가 첫 평론집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에 실렸다. 내가 읽은 판본은 2011년에 <인간 해방의 논리를 찾아서>와 합쳐진 합본에 실린 글이다. 할아버지뻘 되는 백낙청 선생, 아버지뻘 되는 글 그리고 그걸 읽는 내가 이 글을 통해 무엇을 생각하느냐보다 느끼냐를 서술하는 것이 적합할 듯 하다. 오늘날 '시민운동', '시민언론' , '시민참여' 등 시민이란 용어가 남용되는 만큼 자주 사용되는데, 오늘날 시민이란 용어의 정립에 있어 이 글이 어느 정도 기여를 한지 모르지만, 적어도 오늘날의 시민 개념과 유사하게, 선구적으로 정립된 시민 개념이 담겨있다.

백낙청이 분석한시민계급은 봉건제도의 해체 과정에서 등장해 프랑스혁명에 있어서 정점에 도달했다. 그러나 여기서 소외된 산물이 바로 소시민이다. "소시민이란 그 자신이 잘살겠다는 집념이 강한 만큼이나 살아 있을 이유가 희박한 인강형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는 선생의 말이 무척 날카롭다. 그렇지만 소시민이 다 죽어도 된다는 극단적 생각 역시 반대하며, 우리가 쟁취하고 창조하여 할 미지와 미완의 인간상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당시 문학 논의에 있어 뜨거운 감자인 ‘소시민’과 ‘시민’이라는 용어를 분석함으로써 시민문학론을 정립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만큼, 한국 문학에서의 시민문학론을 도입하려는 시도 역시 돋보인다. 백낙청 선생이야 원래 자신의 로렌스를 비롯한 영문학 전공자이지만, 세계문학의 관점에서 우리의 한국 문학현실을 살펴보려고 했고 그 결과물이 훗날 평론집인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이다.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을 여는 첫 글인 <시민문학론>에서는 우선 시민이란 개념에 대해 정립하고자 했다.

백낙청 선생은 한국 사회의 시민이 가져야 할 의식으로 ‘자유’와 ‘사랑’을 말한다. 이는 한용운과 김수영 시에 있어서 '시민의식'의 문학적 표현으로 쓰였다고 보았다. 다음으로 서구 시민문학의 전개와 우리의 시민문학의 전개과정을 비교한다. 서구 문학의 시초는 프랑스 혁명 무렵의 계몽주의로 보며, 독일의 대문호 괴테와 쉴러를 통한 계몽주의의 발전적 계승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이후 19세기 리얼리스트의 대가인 발자크와 톨스토이의 리얼리즘, 디킨스와 로렌스 등 19세기 영국의 소설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이러한 시민문학의 특징은 특히 로렌스를 강조한다. 로렌스의 문학이야말로 ‘건전한 시민적 양식’이라고 말하며 훗날 사르트르보다도 시민문학의 핵심적 문제에 근접했다고 말한다.

한국 시민문학의 경우, 조선후기 실학과 동학운동에서 싹튼 시민의식을 계승한 3‧1운동을 시초로 보았다. 이 당시 시인으로 한용운을 들며, 그의 시는 혁명가와 승려와 시인의 일체화를 이루었음에 주목한다. 백낙청은 바로 이러한 일체화가 시민의식의 본질이라고 강조하였다. 다음으로 염상섭과 이상을 주목하여, 전자는 지식인층의 소시민화를 보여주고 후자는 건전한 양식인으로서 면모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한편 백낙청이 가장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준 시인으로는 김수영을 들었다. 김수영의 <사랑의 변주곡> 등의 시에서 ‘사랑’이라는 용어로 시민의식을 표현한 시인으로 보았다.

이제까지 한국문학이 머뭇거림을 떨쳐버리고 사랑을 시민의식의 정확한 동의어로 쓸 수 있는 날을 우리는 적어도 내다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 글은 서구 시민문학과의 비교를 통해 한국의 시민문학이 가진 특징을 비교하며, 한국문학이 나아갈 방향-훗날 말하는 민족문학론-을 고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분기점이 되는 글이라 할 수 있다. 풍부한 서구 문학에 대한 지식과 한국 문학에 대한 애정을 모두 느낄 수 있던 글이라 오늘날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일독할 가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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