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이야기
조르주 바타유의 《눈 이야기》를 읽다.
문학이란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해 김현 선생의 전설적인 명문을 하나 빌려 답해본다.
"사춘기 때에, 나는 나와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있는 여자란 모조리 마음속으로 간음하였다. 그녀들은 그때의 나에게 단순한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사랑을 이해하게 되자, 고깃덩어리이기를 그치고, 장미꽃 핀 화원을 드나드는 천사 들이 되었다. 문학은 그 고깃덩어리와 천사 사이를 왔다갔다하게 만드는 매개체이다."
선생이 말한 양극 중 한 축이 중세의 종교적 사랑을 담은 단테의 《신곡》이었다면, 바타유는 《눈 이야기》는 정확하게 정반대의 축을 구축한다. 문학의 기저에 있는 문학인 포르노그래피 문학에 있어 가장 모범적인 사례일 것이다. 물론, 맨 밑에 있다고 하여 가장 저질이라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어디까지 숭고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모범 답안이 중세 기사도 문학이었다면, "인간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학적 대답은 《눈 이야기》이다.
서사라는 것이 무색하게 느껴지는 충격적 성애 장면들로 가득하다. 포르노그래피적 상상력의 모범적, 충격적 묘사를 통해 금지된 것들에 대해 전력으로 맞선다. 사춘기 소년인 서술자와 소녀 시몬, 그리고 마르셀이 벌이는 육체적 결합은 동물적으로 느껴진다. 난교는 물론, 계란을 이용한 성관계, 신부 능욕과 신성 모독, 살해, 안구를 이용한 성관계 등 사드 후작에 버금가는 배설하는 서사가 돋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묘사에 있어 단지 포르노적인 것은 아니다. 《소돔의 120일》에서 보인 생생한 포르노그래피적 성기 묘사와 달리, 《눈 이야기》는 성적 대상화보다 성애적 행위 자체에 집중해 포르노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변태가 아닌 문학적 지식인을 위한 포르노로 읽힌다.
금지된 것에 대한 도전을 담은 소설이라는 점에서 지극히 문학적이다. 그렇다고 하여 포르노그래피적 특징을 묵인할 수도 없다. 포르노그래피소설의 경전이자 훗날 성경과도 같은 《에로티즘》의 원형이 담긴 소설이라는 점을 가져가며 죽음으로서 느낄 수 있는 쾌락을 발견한 바타유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