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리영희 <전환시대 논리> 1장 읽기

9.15 독서일기

by 꿈꾸는 곰돌이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 논리> 1장 '강요된 권위와 언론의 자유'에 대해여


발가벗은 임금님 우화를 통해, 당시 군사정권 시절 어용 언론에 대한 비판과 언론의 윤리에 대한 글이다.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폭로한 베트남전 기밀문서 공개 사건을 통해 미국 정부와 관료들의 기만을 비판한다. 국가권력의 이성 상실을 보여준 월남전쟁 문서 폭로 사건의 결은 다행히도 해피 엔딩으로 보이지만, 결국 해피 엔딩과는 관계 없이 당시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점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그러기에 이 전쟁에서는 관객이 모두 슬픈 관객이라는 분석 또한 깊게 다가온다. <뉴욕타임즈>의 용기를 두고 우리 언론에 두 가지 유형을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하나는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제는 비밀을 말할수 있다.'는 유명이다. 이중 닉슨의 중공 방문에 우왕좌왕하던 타락한 한국 언론의 초상은 전자였다. 반공 이외의 가치를 말하지 못 한다는 처참했던 당시 언론의 존재 가치를 잘 드러낸다.

리영희 선생은 여기서 더 나아가 지성인에 대해서도 다룬다. 진실과 이성이 작용하지 않는 매머드화한 관료기구 속에서 자신의 임무와 정부의 정책이 부정이며 불의임을 깨달았을 때 진정한 국가이익을 위해 진실을 밝힌 용기는 고민하는 지성인의 최고의 자세라고 말한다. 이는 사르트르의 강연집을 출판한 <지식인의 변명>이 생각나는 부분이다. 지식인이란 본래 고정되어있는 보수적 관료가 아닌 늘 진실에 헌사하는 존재임을 깨달을 수 있다. 한편 지식인을 규정할 때 사용되는 용어나 방법이 딱히 좌파적이지 않다. 선생에게 다소 송구하지만 전형적인 유시민 등이 주장할 법한 리버럴의 논리인데, 리버럴 저서마저 금서에 처해진 당시 박정희 정권의 가혹한 반공주의를 실감케 한다. (다만, 야인으로서 자유주의적 시선에 가깝다고 느꼈다. 촉새나 기회주의적 리버럴, 권력의 진보적 벗인 리버럴과는 다른 날카로운 리버럴이라고 하고 싶다)

또한 냉전인식의 자기기만성과 냉전용어의 반지성성을 지적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세계사적 방향은 식민지 인민의 해방과 독립이었음에도 미국이 베트남 인민의 독립을 분쇄하고 재식민지 한 것을 비판하며, 이를 두고 냉전인식의 자기기만성일라고 말한다. 이는 정부지도자들이나 미국의 지배층을 구성하는 군부, 경제, 재계, 극우 등뿐 아니라, 대부분의 지성인들의 가치관을 좀먹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연장선에서 냉전용어의 반지성성을 말한다. 지성인들이 아무런 비판 없이 사용되는 정치성을 띈 용어들-피로 맺은 관계, 혈맹, 영원한 맹방-과 같은 미국과의 관게를 묘사하는 용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모든 용어가 기성관념, 고정관념, 감성적 친화감 또는 저항감 같은 심리적 작용이 병행할 때 세계의 모든 사상은 흑과 백, 천사와 악마, 죽일 놈 살릴 놈 등의 양가치적 사고형태를 결과로 한다. 이런 양가치적 사고방식은 사회와 국가의 기본 목적인 진리를 구현하는 끊임없는 노력을 방해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선생의 국가관을 통찰할 수 있었는데, 국가란 본래 중립적이지만 독재 정권에서 타락했다는 인식이다. 아직 고쳐쓸 수 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월남전쟁 비밀분서 보도를 두고 미국국민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나라의 통치자들과 국민, 특히 지식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효과를 주었다고 분석한다.

첫째, 정부의 독선과 비밀주의는 국민 전반의 성격과 지식을 변칙적일 만큼 약화시켰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둘째, 소수의 권력자나 정책수립자들의 비밀주의의 결과는 또 그 세력자 내지 지배계급과 국민대중과의 대립을 초래하고 만다.

셋째, 소수 권력자들의 자유 억압정책은 국민에게 운명적인 열등감을 갖게 하는 위험을 내포한다.

끝으로 이와같은 통치세력과 피치 대중 사이의 모순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산속 굴에 들어가서 왕의 귀는 당나귀귀라고 외치는 소리가 모이면, 언젠가는 '임금은 벗어다'고 말하는 많은 소년이 나오는 법이라고 일망의 희망을 열어둔다. 즉, 지식인이란 단순히 말해 국민을 위해, 국가와 맞서더라도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인으로서의 각오는 이 책으로 불의한 세상에 대한 리영희 선생의 대답이다. 지금의 관점에서야 너무 당연하고 어쩌면 온건한 면도 있지만, 시대적 배경을 고려했을 때 무척 파격적인 선언으로 읽힌다. 총칼이 난무한 반공의 시대에서 자유의 시대로의 이행을 꿈꾼 선생은 국민을, 인류를 생각하고 있음을 느낀다.


한편으로 이 글은 오늘날 한국 언론의 치부도 적나라하게 비춘다는 점에서 살아있는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대놓고 지배계급의 나팔수 조중동과 민주당과 은밀한 동거를 꿈꾸는 한경오, 존재할 가치가 의문인 우파 유튜버와 친민주당 성향에 묻혀 진보적 의제를 망각한 민주당계 유튜버까지... 모든 형태의 한국 언론에게 이 글은 날카롭게 다가올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조르주 바타유 《눈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