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독서일기
문학평론에 대한 독서는 생각 외로 고된 일이다. 시를 탐닉하는데 필요한 고도의 집중력과 상상력에, 서구 문학과 철학의 경전에 대한 기본적 이해 및 한국 문학에 대한 조감 능력이 갖춰졌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글이 쓰였기 때문에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특히 비평에서 다루는 원저작을 읽지 않고 비평을 수용하기란 오로직 반딧불에 의존해 깜깜한 하늘을 걷는 것과 같다. 인문학 전반에 대한 이해, 사회 전반에 대한 이해, 문단 전반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 후 비평에서 다루는 텍스트에 대한 다독을 한 후에야 그 문학비평 안에 실린 심연에 와닿을 수 있다. 그러니 사실 '문학평론'보다 '문학비평가'가 쓴 산문을 오히려 선호하게 된다. 비평으로서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 고된 사유의 편린을 산문으로나마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비평 공부에 왕도를 걷는 것이 아닌 전선이탈적 행위이나, 그렇다고 하여 왕도로 일반통행하다가는 그 낙관에 좌절을 맛보기 쉽다. 내가 생각하는 비평 공부의 정석은 그 평론가의 대표작, 혹은 초기작에 실린 평론의 정석에 도전한 다음 산문을 읽고 다시 비평의 산맥을 오르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런 비평 학습관대로, 최근 함돈균 평론가의 글을 접했다. 함돈균의 글 중 처음 접한 글은 박상수 시인의 시집 <숙녀의 기분>에 실린 평론이다. 평론가로서 능수능란하게, 어려운 문학 작품을 해설하면서도 그 깊이를 놓치지 않는 정석적인 평론이면서도 비교적 젊은 작가의 문체가 살아있어 여러 번 읽은 적 있다. 본격적으로 비평 공부를 하며 처음 읽었던 책은 <사랑은 잠들지 못한다>였지만 역시나 함돈균이란 이름으로 된 산맥을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문과 제1장 정도만 읽은 후 인문학 에세이인 <사물의 철학>을 읽었고, 비평가의 사유를 일상 사물에 접목해 그것으로 철학을 하는 비평가의 탁월한 능력에 깊은 감동을 느꼈다. 마치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재림을 본 듯하였고, 그렇게 다시 첫 번째 평론집 <얼굴 없는 노래>에 도전하다가 다시 에세이 <순간의 철학>을 집게 되었다.
서론이 길었지만, 사물의 철학에서 느낄 수 있었던 사유의 깊이와 문장의 아름다움을, 찰나의 순간에 적용해 영원으로 향하는 함돈균의 산문가로서의 자질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되었다. <사물의 철학>과 비슷한 시기에 연재된 글을 묶어, 찰나로 시작해 영원으로 연결되는 인문학적 성찰을 풀어내는 글이다. 정점에 오른 산문가의 산문에서만 맡을 수 있는 '산문의 향기'에 취해 반나절 만에 금새 읽게 되었다. 이 책에 실린 복학접인 시간 감각이 단층처럼 혼재되어 있지만, 그 쓰여진 모든 시간에 취했다. 매혹적인 산문의 취기에 잔뜩 취한 것은 김현, 김훈, 롤랑 바르트, 게오르크 루카치 등 산문의 정점에 오른 사람들의 글에서만 느낄 수 있는데 함돈균의 글에서 그런 취기를 느낄 수 있었으니, 적어도 내게 함돈균이란 작가의 위치는 이들에 준한다고 말하고 싶다.
차례는 제3부로 나뉘어져 있지만, 산문집에는 순서와 차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를 깊게 찔러온 제목에 끌려 읽다보면 어느샌가 다 읽게 된다. 내게 가장 끌린 제목은 <연인들의 새벽: 불면이라는 사랑의 형식>이다. 평론집 <사랑은 잠들지 못한다>의 서문과 비슷한데, 연인의 존재를 통해 우주적 사건으로 사랑을 승화시켜 어디서든 그 연인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던 함돈균의 정갈한 문장이 주는 감동에 깊게 젖게 된다. 연인들의 새벽을 두고, "의사도 진단할 수 없는 미확인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잠들지 못하는 이 새벽, 연인들의 시간이다"는 마지막 문장(p.21)은 나의 삶으로 향해, 내가 경험했던 연애가 결코 사랑으로 충만되지 못한, 사이비 연애였음을 사살시켜주었다.
<첫 눈 내리는 날> 역시 <사물의 철학>에서 느낄 수 있던 깊은 사유를,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담아 잘 녹여냈다. "사랑의 약속도, 인간의 역사도, 존재의 부활도 눈 덮인 무덤들 속에서 마침내 그의 것을 찾아내어 그 존재를 망각하지 않는 의지적 행위이다."라고 선언한 함돈균의 문장은 이미 첫 눈의 약속을 스스로 져 버린 내게 더욱 아프게 찔러왔다.
그 존재의 본질이 사랑과 자유에 있는 인문학 에세이기 때문에, 많은 글에서 사랑의 애증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죽음에 대해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염병이 창궐할 때>라는 글에는 코로나라는 용어가 드러나지 않지만, 코로나로 전세계가 신음하던 그 찰나의 순간에서 공감할 법한 사유가 담겨져있다. 인간 문명의 위대함보다는 허약하고 보잘 것 없는 것에 주목하여, 새가 앓는 독감, 쥐의 똥, 가벼운 호흡기 질환을 통해서도 순신각에 절멸할 수 있는 인간 문명의 취약함을 지적한다. 우리가 문명의 이름으로, 진보와 계몽의 이름으로 저질렀던 폭풍의 그림자를 경고하는 글로 읽혔다. 인간이라는 현존재를 예찬할 때 문명의 휘양찬란한 빛에 찬사를 보냈다면, 전염병의 창궐로 그 문명이 몰락할 수 있음을 늘 견지해야 한다.
이전에 나온 책 <사물의 철학>에서 느낄 수 있던 벤야민스러움은 이 책에서도 이어졌다. <도시의 거리에 비가 내릴 때>는 현대라는 상처라는 부제에 알맞게, 너무나도 벤야민적인 느낌을 받았다. 현대도시의 정치적으로 진보적이고 문화적으로 다양한 얼굴을 조명함과 동시에, 심리 층위의 복잡함과 정체성의 분열, 개인의 의지가 타인의 의지와 충돌하며 분할되는 도시의 어두운 측면에 (문학을 입에 올리는 사람이라면 당연하지만) 주목한다. 특히 도시에 비가 오는 순간에 주목해, 도시인의 가슴 위로 울컥을컥 솟아오르는 예민한 상처를 도시의 비가 내릴 때 불러일으킨다고 본다. 도시 자체가 상처라며, 이 까닭 없는 슬픔을 통해 비의 시간이 이제 도시적 시간의 일부임에 주목해, "도시의 시간이란 이 복잡한 공간의 거주자들이 숨겨진 상처들을 과잉 억압하고 기워냄으로써 유지되는 복합적인 것이다."라는 도시 분석은 날카롭게 아프다.
현대적 사유의 연장으로서 흡연의 순간을 사유한 <담배 피우는 시간> 또한 아득하게 내 사유에 퍼진 듯 하다. 담배 연기가 허무로 체험되면서도 작가에게 유용한 시간 체험을 선사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신의 입김을 뿜는 순간을 흡연의 순간으로 규정하며, "많은 시인에게 담배일상의 몸을 벗는 고독하고 매마른 길의 동행자가 되곤 한다."고 말한다. 글을 쓰며 늘 떠나간 신에 대한 한탄을 배설했는데, 담배를 피며 감히 신의 시간을 조우하고 싶어졌다.
찰나의 순간을, 영원이란 형이상학적 인문학과 조우시킨 작가의 초월적 사유에 한 번, 그런 초월적 사유를 너무나 일반적 문장으로 녹여낸 작가의 필력에 한 번, 총 두 번 감동을 느낀다. 빠르게 몰락하고 있는 문학비평이지만, 발터 벤야민이 말한 우리의 순간에 끼여들어 메시아가 들어올 좁은 문을 개척하는 일 또한 비평가의 임무가 아닐까 싶다. 아, 술 한잔에 기대여 함돈균의 <순간의 철학>을 음미한 이 심야의 순간이여! 내게 영원히 각인되어 비평가의 눈과 문장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