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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 영화의 원형이자 끝과 시작 <아비정전>

by 꿈꾸는 곰돌이

발 없는 새가 있지. 날아가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평생 딱 한 번 땅에 내려앉을 때가 있는데 그건 죽을 때지. 새가 한 마리 있었다. 죽을 때까지 날아다니던... 하지만 새는 그 어느 곳에도 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새는 죽어있었기 때문이다.

-작중 '아비'의 말

<중경삼림>, <타락천사>, <해피투게더>... 이름만 들어도 다채로운 감각적 풍경의 꽃이 피어난다. 이 영화들로 대표되는 90년대 왕가위 영화는 홍콩 뿐 아니라 한국의 90년대 마저도 잠식시켰다. '상실의 흔적과 다채로운 극복'이라는 일관된 서사임에도, 언어와 문화라는 초월한 감성적 층위의 매력을 충분히 발휘했기 때문이다. 홍콩 영화의, 아시아 영화의 이정표가 되는 왕가위 세계를 개척한 영화가 있다면, 단연코 <아비정전>을 들 수 있다. 장성일 평론가의 말을 조금 변주하자면, 모든 왕가위 영화는 <아비정전>에 대한 각주에 불과하다. 물론 왕가위의 첫 작품은 <열혈남아>이지만, 첫연애와 첫사랑이 다르듯이, <아비정전>은 현실적 조건에 타협하지 않고 진정으로 왕가위의 애정이 들어간 영화로 느껴지진다.

댄디한, 너무나 댄디한

지금은 하늘이 별이 된 이름, 장국영이 연기한 아비는 90년대 한국 소설에서 자주 등장한 전형적인 댄디한 주인공이다. 90년대 말에 쓰여진 남진우 평론가의 탁월한 비평인 <견딜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는 한국 댄디즘의 형성에 있어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왕가위의 상륙에 주목한다. 하루키를 무뇌아적으로 계승한 작품부터 창조적, 비판적으로 계승한 작품까지 분석하며 한국 문학에 나타난 댄디즘을 분석하는 이 글에서 댄디의 특징으로 '쾌락적인 예술가형 주인공' , '물질적 성공에 대한 냉담', 여유와 자유' 등을 예로 든다. 그렇다고 하여 무비판적으로 댄디를 옹호하지도 않는다. 이들 삶의 여유가 정직한 노동으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니라 물질적 기생으로부터 왔음을 지적한다. 왕가위 영화 속 주인공의 계급은 룸펜, 프레카리아트, 노동자 등 다양하나 전부 댄디한 면이 있다. 이윤 논리에 종속되기보다 낭만적, 비논리적 선택을 하는 댄디한 영혼의 편린이 저마다 박혀있다. 그중 가장 많은 댄디의 편린을 지닌 인물은 단연코 <아비정전>의 아비이다. 아비는 변변찮은 직업은 없는 것처럼 보이나, 월세가 40불에 달하는 괜찮은 집에서 산다. (연인 루루는 자신 가족이 월세 32불 짜리 집에 산다며 부러워한다.) 아마 추정컨데 (양)어머니의 재산 덕분에 한량과 카사노바를 반반 섞은 탕아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혼자살며 그럭저럭 동경받는 집에, 매력적인 춤 사위를 보이며 수많은 여인과 애정을 나누고 담배를 피며 머리 손질과 옷을 입는데 진심을 다한다. 전형적인 댄디의 초상이다. 거기다가 독신주의자이니 얼마나 댄디한가! 아비는 충족되지 못한 사랑으로 인한 청춘의 방황을 댄디로 살아가며 극복하려고 하나, 여전히 공허할 뿐이다.

카사노바, 충족되지 못한 모성의 상실

왕가위 영화의 주인공은 대게 연인과의 사랑 상실을 주제로 한다. <중경상림>의 두 청춘 경찰의 멜랑꼴리와 <타락천사>의 살인 중개업자가 그렇다. 물론, <해피투게더>처럼 동성 연인이나, <화양연화>처럼 불륜의 관계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던 대상이 떠나가그 흔적에 괴로워하는 인물의 방황을 보여준다. 아비와 아비의 연인이던 소려진과 루루도, 심지어 썸과 짝사랑의 관계에 있던 경관과 아비의 친구도 마찬가지이다. 그중 아비는 여성 편력이 많은 카사노바형 인물인데, 그의 방황은 어렸을 때 모성애의 결핍으로 추정된다. 양어머니에게 자랐으나, 나중에 크고 나서야 자신이 입양된 사실을 알게된 아비는 실존적 고민을 하며 방황한다. 그 방황의 결과는 수많은 연애 편력이다. 작중 묘사되는 아비는 이성을 유혹하는 기술이 뛰어나 자신의 집에 여성들을 많이 데려온 듯 하다. 장국영이 연기한 아비는 탁월한 댄디한 존재로, 여성 앞에서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상대를 유혹하나 어렸을 때 입양아임을 안 이후 실존적 방황을 한다. 게다가 아비는 양어머니에게서 마저 모성애의 결핍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 후반, 아비의 죽음을 앞두고 나온 장면에서 아비가 입양된 이유는 양어머니가 매달 양육비를 지원받는 조건이 나온다. 즉, 양어머니가 아비를 키운 이유 역시 애정이 아닌 물질적 조건 때문이다. 나중에는 정이 들어 진심으로 아비에게 애정을 갖지만, 아비는 출생의 비밀을 안 이후 계속 친모를 만나기를 갈망하고 현실에서는 결핍된 연애를 통해 방황의 갈증을 해소하려 한다. 이는 정신분석학에서 카사노바를 분석할 때, 카사노바의 수많은 연애편력을 모성애의 결핍으로부터 찾는다. 제대로 모친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유아는 어머니와의 결별을 두려워하며, 이는 상처가 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그 흔적이 남아 연인과의 애정관계를 통해 극복하려는 것이다. 즉, 모친의 애정 결핍으로 인한 남근적 열등감에 대한 남근적 공격 행위가 바로 카사노바의 수많은 연애 편력이다. 아비 역시 1960년대 홍콩을 배경으로 한 카사노바이고, 댄디한 생활 양식을 갖추면서도 영혼은 늘 방황하고 있다. 친모에게서 버림받았다고 간주하여 여성들과의 가벼운 연애를 즐기며 독신주의를 주장하는 아비의 배회와 허무한 죽음은 소외로 인해 고통받는 쓸쓸한 청춘의 괴로움의 표상이다.

상실의 시대, 왕가위와 하루키를 가로지르는 시대적 인식

왕가위라는 90년대 홍콩을, 아시아를 상징하는 거인의 시선과 하루키라는 전공투 이후 찬란한 버블경제의 정점과 그 몰락을 담은 두 작가의 사회에 대한 인식은 상실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급진적인 대중운동이 전무했던 자본주의가 만든 인간의 폐허화된 내면을 다룬 왕가위, 전공투의 몰락 이후 급진적 변혁 열망의, 상실의 시대를 다룬 하루키의 작품은 공허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들의 주인공은 공통적으로 연애 편력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고 하나, 오히려 섹스를 하면 할 수록 더욱 갈증을 느낀다. 실존의 의미는 연인과의, 혹은 성적 파트너와의 육체적 교감으로 해소될 수 없음을 안 인물들이 숭고한 방식으로 성장한다. (왕가위는 사랑의 유효기간을 만 년으로 가져가는 플라토닉 러브로, 하루키는 우화적인 내면의 성장으로) 이 둘은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으로 댄디즘을 택한다. (하루키는 거기에다가 대부분의 소설에서 오컬티즘을 가미했다. ) 또한 그 근원적 갈증이 해소될 수 없다는 공허한 시대 인식 역시 마찬가지이다. 물론, 차이 역시 있다. 하루키가 거의 모든 소설에 술을 등장시켜 술을 마시는 인물을 통한 갈증 해소 시도와 그 좌절을 다룬다면, 왕가위는 흡연이 그 트레이트 마크이다. 영화에서 담배 냄새가 그윽하게 나면서도, 거부할 수 없을 매혹적 향기로 담배 냄새를 승화시키는 것이 왕가위의 영화적 미학이다. 또한 잡문집에서 밝히듯 하루키가 재즈를 선호했다면, 왕가위는 외국 밴드곡 "California Dreamin' 과 'María Elena' 등 밴드 음악, 그중에서도 경쾌한 록에 의존한다.

하루키와 왕가위, 방황하는 청춘의 영혼에 대한 소설적 초상과 영화적 재현을 재현했다는 점에서 모두 불멸의 경지에 올랐으나, 개인적으로 홍콩의 감성에 보다 선호하기에 지친 하루를 끝내면 보통 왕가위 영화의 음악을 듣는다. 언젠가 갈증을 해소하겠다는 의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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