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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상실의 시대, 도시의 고독한 목가

by 꿈꾸는 곰돌이

고향 상실의 시대, 도시의 고독한 목가

-조용필 <꿈>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 곳은 춥고도 험한 곳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사람들은 저마다 고향을 찾아가네

나는 지금 홀로 남아서

빌딩 속을 헤매다 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저기 저 별은 나의 마음 알까

나의 꿈을 알까

괴로울 땐 슬픈 노래를 부른다

슬퍼질 땐 차라리 나 홀로

눈을 감고 싶어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저기 저 별은 나의 마음 알까

나의 꿈을 알까

괴로울 땐 슬픈 노래를 부른다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슬퍼질 땐 차라리 나 홀로

눈을 감고 싶어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꿈


산업화도, 민주화도 모두 역사로 배운 새천년 세대인 나에게 조용필의 음악은 사실 친숙하지 않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전설의 반열에 오른 그의 노래를 사실 접할 기회 자체가 적었다. 그렇지만 우연히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에서 듣게 된 <꿈>은 조용필이라는 가왕의 세계에 매료되는 계기가 되었다. 황정민이 연기한 사기꾼 목사 전요한이 수리남에서 마약으로 번 돈으로 인공낙원을 구축하려는 세속적인 인물이지만, 한편으로는 욕망에 물들어 느끼는 허무함과 범죄로 인해 돌아갈 수 없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이 노래를 계속 흥얼거린다.

드라마 이야기는 이쯤하고 노래 이야기를 해보자. 이 노래는 전체적으로 도시의 목가라 할 만하다. 도시의 목가답게, 소외된 도시에 사는 현대인으로서 느낀 환멸감과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향수를, 시적인 가사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고향 상실에 대한 담론은 사실 현대 인문학을 관통하는 거대 담론이기도 하다. 신들이 떠나간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은 근원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포착은 독일 낭만주의자들의 작품에서도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독일 낭만주의 시인 횔덜린은 그의 시 <고향>에서 긍정적인 고향의 이미지와 그리움, 장소로서 존재하더라도 도달할 수 없는 고향에 대한 향수로 인한 슬픔이 드러난다. 동시대 또 다른 낭만주의 시인인 노발리스 역시 고향에 대한 향수와 관련된 많은 작품들을 남겼으며, 철학이란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라고도 말한다. 소설의 교과서로 불리는 게오르크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에서 소설을 두고 ‘선험적 고향 상실’이라고 할 정도 이니, 근대 인문학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고향이다. (고향에 대한 향수와 귀향 열망은 그 유명한 <오뒷세이아>의 오디세우스의 행보에서 볼 수 있듯, 편안함에 대한 갈망은 인류 전체를 가로지르는 보편적 특징이기도 하다.)

인문학에서 말하는 고향이란 단지 자신이 태어난 곳이나, 유년 시절을 보낸 지리적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영혼의 고향, 존재가 태어나고 머물러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을 말한다. 앞서 언급한 횔덜린 예찬자인 하이데거는 현대를 고향 상실의 시대로 불렀다. 근대 문명에 대한 인간 소외를, 고향 상실이라는 다소 시적인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고향 상실은 한국 문학에서도 단골 손님으로 등장한다. 백석과 윤동주처럼 일제시대 시인들은 식민 지배로 인해 고향을 떠나온 슬픔을 서정적으로 표현했으며, 신석정처럼 고향 상실의 시대, 목가적 풍경을 이상향으로 그려낸 시인도 있었다. 소설에서도 산업화로 피폐해진 시대에 등장한 황석영의 <삼포가는 길>에서 볼 수 있듯이, 고향은 국가자본주의적 산업화로 인해 급성장할 수 있었던 한국 사회가 잃어버린 장소이다.

가요에서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는 많았고, 특히 산업화 시대를 거친 가수들이 많이 그런 노래를 불렀다. 그중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한 곡은 가왕의 <꿈>을 들고 싶다. 다소 몽환적인 멜로디와 쉬운 박자에, 시적인 문장을 통해 구슬픈 소외된 현대인의 한탄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했다. 처음에는 도시인으로서 느껴지는 고독과 소외를 이야기한다. 아무리 화려할 지라도 안락함을 느낄 수 없는 곳으로, 마치 벤야민이 말하는 도시 현대인의 병인 멜랑꼴리를 느낀다, 멜랑꼴리는 무기력이기도 하면서, 천재적인 징표인데 그래서 마치 시인처럼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는 시적인 가사로 나타난다. 한편으로는 허무함을 느낀다. 길을 잃은 시대에, 어떻게든 길을 걸어왔는데, 이곳이 과연 숲인지 늪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고 하는 화자의 말은 방황하는 현대의 영혼의 발화이다. 그렇기에 폐허 같은 도시에서 더 이상 안락함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눈을 감고 몽상한다. 몽상을 통해 시인이 된 화자는 고향의 향기를 듣는다. 전문적인 용어를 빌리자면 공감각적 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노래하는 음유시인이 된 조용필이 부른 고향은 단지 대중가요가 아닌 고향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들의 목가이다. 처절하게 돌아가고 싶은 고향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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