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우, <사랑의 어두운 저편>
9.6 독서일기
사랑으로 이뤄진 요새
-남진우, <사랑의 어두운 저편>
신은 인간이 문명을 갖추자 자연스레 그 자취를 감추었고, 신이 떠나간 자리에는 시인이 대신했다. 하이데거는 “시 예술이 모든 예술 가운데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시와 시인을 논할 때 이들의 초월성에 우선 주목해야 한다. 그 초월성에 한 가지 허구적 서사를 부여해, 시인은 신이 떠나간 자리에 남겨진 신의 언어와 영혼의 편린을 주웠고, 그 편린을 인간의 언어로 가공한 것을 시라고 부르겠다. 시인은 총체성의 합일을 이룬 존재인 신에 영혼을 일부 계승했기 때문에, 존재의 시원을 볼 수 있는 비범한 능력을 지녔다. 그러나 이런 능력은 아무리 풍요로운 시대도 궁핍한 시대로 인식하는, 인식할 수밖에 없는 저주, 혹은 은총을 받았다. 제아무리 풍요로운 시대라도 부유하여 자신이 원래 머무던 지상낙원으로 회귀하고 싶은 충동 때문인지 찬란한 문명의 세계를 폐허로 인식하며 너무 밝은 빛을 피해 어두운 그림자로 숨는다. 마치 그리스의 은자 <휘페리온>의 ‘휘페리온’과 그 작품을 남긴 ‘횔덜린’처럼. 사랑의 층위에서도 시인은 마찬가지이다. 사랑의 밖에서 아름다움과 쾌락을 예찬하기보다 그 빛이 저문 어두운 저편을 본다. 문학의 영원한 벗인 멜랑콜리는 사랑보다 상실을 선호하고, 시인은 그 상실을 찬란하게 예찬한다. ‘사랑예찬’은 철학자들의 몫이라면, ‘사랑상실’은 문인들, 그중에서도 시인들의 몫이다. 사랑의 기쁨으로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심연은 오직 상실한 사랑의 슬픔만이 도달할 수 있고, 그 슬픔을 신이 물려준 언어로 노래하는 것이 신이 떠나간 시대의 시의 주요 임무가 아닌가 싶다. 남진우의 시집 <사랑의 어두운 저편>은 신이 떠나간 자리를 배회하며 그 편린을 모으는 시인의 경험과 몽상의 소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