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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삶의 매혹

by 꿈꾸는 곰돌이

장정일 소설가는 그의 독서편력기인 <독서일기1>의 서문에서 한 때 꿈꿨던 소박한 꿈을 말한다. 그 꿈이란 지방 하급 공무원이 되어 아침 정시에 출근하여 한가하게 일을 하다가 퇴근해 자기 전까지 책만 읽는 독서로 숲을 이루는 꿈이다. 그가 전업 소설가가 되어 포기한 꿈에 나는 온전히 매료되었다. 자본주의의 도시는 늘 괴롭고, 체제는 늘 로드맵을 제시한다. 몇 살때까지 어느 수준의 대학에 들어가 어느 경력을 쌓아 어느 정도의 기업에 들어가서 돈을 모아 언제쯤 차를 사고 언제쯤 어디에 몇 평 정도 되는 집을 사라고 가늠해준다. 자본주의 체제의 광기어린 정상-비정상 분류는 늘 사람을 지치게 한다. 가혹한 도시의 질서에 매일 같이 지치고, 그럴 때마다 집에 돌아와 화려한 숲을 펼친다.

숲으로 가기 위해 단지 책만 읽어서는 그곳에 도달할 수 없다. 종교적 제의를 거쳐야 몽상을 통해 그곳으로 향할 수 있다. 그러니 우선 적막한 방에 들어와 촛불을 킨다. 인류사의 천재들이 촛불의 희미한 불꽃에 의지해 글을 썼던 것처럼, 촛불은 몽상의 어머니이자, 창작의 원천이다. 고요히 촛불을 키고, 타들어가는 촛불을 응시한다음 집의 불을 끄고 창문을 연다. 밖에서는 아직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음악으로 덮는다. 화려한 도시 속 방황을 노래하는 시티팝, 왕가위 영화의 음악과 하루키의 재즈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고 술을 찾는다. 시원한 맥주나 막걸리가 자리잡고 있고, 간단히 안주를 만든다. 네 개 정도 달걀을 까서 계랸물을 만들고 파나 고추를 썰어 섞은 다음에 전자레인지에 놓고 돌리는 초간단 계란찜, 반공기 정도 되는 공기밥에 고추참치 캔을 까서 깨와 김을 뿌린 고추참치밥, 스팸을 썰고 그 위에 치즈를 올린 스팸구이 등 궁합이 좋은 안주를 만든다. 책을 넘기며 안주를 벗삼아 술을 마신다. 이때 어려운 사회과학나 철학책보단 가벼운 산문이나 시집이 궁합이 좋다. 책을 넘기며 펼쳐지는 몽상의 세계에 취하고, 술에 다시 한 번 취한다. 어느새 병은 금세 비우게 되고, 다른 병을 사러 집 앞 편의점으로 향한다. 아파트에 인위적으로 형성된 풀숲이라도 웅성거리는 풀벌레 소리는 마치 별들의 울음소리로 다가오고, 몽상은 신도시의 인위적 빛이 가린 별들의 웅성거림을 들을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그 웅성거림을 회상해보려면 망각하게 되고, 그 웅성거림을 헤아려보고자 다시 술을 마신다. 그러면 갈 수록 취기에 취해 더 풍상한 숲을 마주하게 되고, 존재의 근원적 고독감과도 마주하나 결코 두렵지 않다. 다시 술을 마시고, 다시 몽상을 이어가다 잠에 든다.

김현 선생의 생전 마지막 저서인 <시칠리아의 암소>에 실린 '억압없는 사회를 향한 노력'에는 신화 속 인물 중 억압과 소외로부터 벗어나고자 한 두 가지 원형을 제시한다. 하나는 쾌락 원칙을 상징하는 오르페우스와 나르키소스이다. 이들은 억압 없는 사회를 위해 예술, 노동, 삶을 융합시킨 존재들이다. 다른 하나는 현실 원칙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프로메테우스로, 현실 원칙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전자의 정치적 실천이 아나키즘이라면, 후자는 레닌주의이다. 레닌주의자로서 낮의 시간을 겪는다면, 목가적 아나키스트로서 밤의 시간을 갖는다. 요즘들어 더욱 목가적 삶에 매혹을 느낀다. 별이 그윽한 밤, 달빛과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책의 숲으로 향하는 길에 들어섰을 때, 오르페우스도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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