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언희, 《보고 싶은 오빠에게》
9.19 독서일기
김언희 시집을 이루는 키워드 두 가지는 성행위와 죽음이다. 거의 모든 시에 직설적 성기 묘사, 성행위 묘사가 담겨있고 때로는 그로테스크하거나 더럽게 느껴진다. 시인은 금기된 것을 직설적으로, 초월적으로 재현함으로써 금기를 정면으로 위반한다. 이 지점에서 이 시집을 감싸는 철학자를 한 명 연상해볼 수 있겠다. 바로 조르주 바타유로, 특히 에로티즘 철학이 깊게 시집 전역에 분포해있다.
수록된 시는 인간의 육체를 구석 구석 묘사한다. 서시인 <회전축>에서부터 독자에게 금기라는 베일을 벗기고 음경을 이야기하며 파격적 에로티즘의 세계로 초대한다. 또한 시집에 동물 개를 등장시키는데, <말년의 사중주>에서는 금기된 수간을 연상하게도 한다. 금기된 행위에 도전했을 때, 엄청난 쾌감을 느끼는 인간의 본성을 시로 불편하게 담아냈다.
시인은 시에는 성행위 대신 교미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는 에로티즘이 동물성을 잘 드러내준다. 이러한 원초적 묘사는 때로 조르주 바타유나 사드의 소설처럼 포르노그래피적 상상력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성적 대상화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포르노그래피가 아닌 에로티즘에 가깝기 때문아닐까?
가장 인상 깊은 시는 <말년의 사중주>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말년의 시적 화자는 과감히 성적 묘사를 한다. 화자는 고독도, 구원도 아닌 돼지발정제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에로티즘을 지향한다. 노년의 성적 욕망이 추하다고 간주되는 사회적 금기를 정면으로 도전한다. 또한 배설물이라 할 수 있는 가래를 등장시키며 '내 몸이 살인현장이었던'이라는 표현을 묘사하는데, 한편으로는 똥(배설물)에 대한 절대적 부정을 이야기하는 키치적 태도도 느껴진다.
또한 이 시를 감싸고 있는 금기 위반, 디오니소스적 축제에 대한 묘사 역시 흥미롭다. 제 집에 불을 지르고, 수간에 대한 암시, 돼지발정제라는 금기된 약품을 통한 금기위반 등 디오니소스 축제의 묘사는 더럽게 느껴지나 한편 더욱 시를 매력적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