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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일상에 대한 잡문>

by 꿈꾸는 곰돌이

<독서와 일상에 대한 잡문>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아직 가을이 무르익지도 않았는데 조심씩 불어오는 바람은 독서의 미를 돋운다. 책이 맛있게 느껴지고 활자의 심연으로 들어가진다. 서울에 나가는 날이면 일어나 씻고 정신 없이 탄 경의중앙선에 기대어 책을 읽는다. 30분 정도의 짤막한 독서 시간이다. 보통 소설이나 가벼운 산문을 든다.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에서도 5분 정도 책을 읽는다. 강박적으로 시간의 잉여를 허용하지 않는다. 5분 이하의 시간이 남을 때, 보통 걸으며 이동할 때나 잠시 시간이 날 때는 핸드폰 노트를 키고 메모한다. 감상이든, 비평이든, 구절이든 우선 적고 본다. 공강 시간이나 모임 시간 전에는 대부분 도서관에서 보낸다. 사람은 쌍방통행인데, 독서는 일반통행이다. 도서관에서 일반통행로를 뚫어줄 마음의 굴착기를 찾는다. 보통 이때는 집중할 시간이기에 인문학 원전과 평론에 도전한다. 오늘로 완독했던 책은 조르주 바타유의 《에로티즘》이다. 가벼운 산문이나 시집은 하루에 한 권도 읽지만 무거운 인문사회과학 저서는 일주일에 나눠읽는다. 거의 세 번의 반나절 동안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었으니 그 정도 속도인 것 같다.(선생의 쉬운 문장 덕에 동일 분량에 비해 쉽게 읽혔다) 그외 서울에서 일정을 마치면 다시금 경의중앙선을 타고 집으로 향한다. 오후 다섯 시 이후에 타면 막차 때까지 매우 혼잡하기 때문에 종이책을 독서하기에는 다소 무리이다. 이때에는 전차책이나 기사를 살펴본다. 창비 연간 구독을 신청했기 때문에, 전자책으로 창비 문서를 읽을 수 있어서 요즘은 창비에 실렸던 글들을 훑는다.

집에 와서 밥을 먹고, 밍기적 거리다가 아파트에서 운영하는 독서실에 간다. 2시간 정도 책을 읽을 수 있는데, 오전에 읽었던 책을 정리하거나, 마져 다 못 읽었던 책을 다 읽는다. 이때 집중이 유독 잘 되는 편이라 어려운 책, 벽돌책들을 읽는다. 그리고 나서 집에서 운동을 하고 다시 돌아와 밤에 1시간 정도 또 책을 읽는다.

정치 활동에 관한 일이 아니면 굳이 사람을 만나는 일을 피한다. 친구들은 대부분 군대에 가서 술친구도 없다. 번화가에 가기보다 집에서 책을 읽으며하루키 재즈 음악과 시티팝을 틀어놓고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며 글을 쓰고, 취기가 퍼지면 유튜브를 조금 탐닉하다가 잠에 든다. 대략 새벽2시쯤 잠드는 편이다. 때로 하루키처럼 새벽형 인간의 삶을 갈망한 적도 있으나, 지금은 아무도 없는 풀벌레 소리로 덮힌 심야가 좋다. 간단히 맥주와 가벼운 술 안주를 먹는편이다.

요즘 읽는 작가는 사상가로서는 조르주 바타유이다. 김현 선생의 마지막 평론집 <시칠리아 암소>에 실린 바타유에 대한 짤막한 글을 읽고 그의 이름에 매료되어 바타유의 책들을 빌렸다. 포르노그래피적 소설인 <눈 이야기>, 끝끝내 다 읽어낸 <에로티즘>을 읽었다. 물론, 해설서에 의존한 면이 크다. 다음은 바타유의 <저주의 몫>을 읽어볼 생각이다.

작가 중 사상가가 아닌 산문가로서는 장정일을 뽑고 싶다. 그의 제대로 된 소설집이나 시집을 읽어본 적은 없는데 각종 진보 언론에 실린 독서일기를 가끔가다 봤을 때, 필력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절판된 범우사에서 나온 <장정일의 독서일기1,2>를 다 읽었다. 6편까지 있는데, 일기로 된 글보다 제대로된 독후감 형식의 산문으로된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을 읽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제대로 된 비평보다 책에 대한 산문이 더 끌린다. 로쟈 이현우의 책도 그렇고, 남진우 평론가의 <올페는 죽을 때 나의 직업은 시라고 말했다>도 그렇다. 어쩌면 내가 쓰고 싶은 것은 비평이 아니라, 그냥 비평가의 명함을 단 서평이나 그보다 못한 청춘시절의 낙서가 아니었나 싶다.

최근들어 근 1년간 적었던 서평, 비평, 독후감, 청춘낙서를 모아 독서일기로 편집하고 있다. 어딘가 내기보다 내면의 저장소에 완성된 형식으로 모셔두고 싶다. 가제이지만 책 제목은 <바람이 분다, 읽어야겠다> 으로 생각하고 있다. 폴 발레리가 노하지 않았으면 한다.

참, 책은 방학 중에는 집 근처 도서관에서 빌렸고, 학기중에는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다. 아주 가끔 새책을 사고, 보름에 한 번 꼴로 헌책방에 가서 1만원 내외의 알뜰할 소비를 한다. 책을 소유해야 영혼이 고프지 않다. 다만, 나는 에로티스트가 아니라 그런지 책을 더럽히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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