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읽은 책, 산 책, 버린 책>/ 9.21 독서일기
애서광과 동거하고 싶다
-장정일 <읽은 책, 산 책, 버린 책>
대중들에게서는 거의 회자되지 않는 글이지만 요즘 내가 가장 꽂혀있는 글은 소설가 장정일의 독서일기 1편에 수록된 글이다. 한 번 읽어보자.
어린시절의 내 꿈은 이런 것이있다. 동사무소의 하급 공무원이나 하면서 아침 아흡시에 출근하고 오후 다섯시에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발 씻고 침 대에 드러누워 새벽 두시까지 책을 읽는 것 누가 이것을 소박한 꿈이라고 조종할 수 있으라. 결혼은 물론 아이를 낳아 기를 생각도 없이, 다만 딱딱한 침대 옆자리에 책을 쌓아놓고 원없이 읽는다는 건 원대한 꿈이다. 그러나 나는 재수 없게도 공무원이 되지도 못 했을 뿐더러, 행복한 저자' 역을 맡지도 못했다. 시인, 소설가라는 꿈에도 원치 않았던 개똥 같은 광대짓과 함께 또 한 권의 책을 출간하고자 머리말 을 짜내고 있는 나는 '불행한 저자'이다. 내가 읽지 않은 책은 이 세상에 없는 책이다. 예를 들어 내가 아직까지 읽어보지 못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내가 읽어보지 못했으므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톨스토이도 다른 누구 도 아닌 바로 내가 그 책을 읽어야 한다. 내가 한 권의 낯선 책을 읽는 행 위는 곧 한 권의 새로운 책을 쓰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내가 읽는 모든 책의 양부가 되고 의사(paudo) 저자가 된다. 막연하나마 어린시절부터 지극한 마음으로 꿈꾼 것이 바로 이것이다.
사실 <독서일기>에 수록된 글들이 모두 와닿은 것도 아니고, 일부 글은 읽지 않고 생략한 채 넘어가기도 했지만, 서문만큼은 간만에 건강하게 음미했다. 다만 독서일기라는 형식은 읽어도 읽은 것 같지 않은 찝찝함이 들어 그래도 독후감으로 수록된 책을 읽고 싶다 생각들었고, 6편까지 있는 독서일기 시리즈의 부록으로 수록된 글이 바로 이 책이다.
최근 발간된 한국 작가들의 소설을 주로 다룬 독서일기와 다르게, 이 책에는 사회과학으로 분류되는 책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2010년에 나온 책인만큼 이 당시 베스트셀러와 이외에도 작가에게 간택된 책들이 많이 있다. 코로나 팬더믹 이후에 대학을 입학한 나에게는 베스트셀러보단 시대를 풍미했던 사회평론 성격의 글로 읽힌 <88만원 세대>, <삼성을 생각한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등 익히 들어본 이름이지만 제대로 읽은 적 없는 책들에 대한 산문은 그 책을 한 번 떠먹어보며 괜찮은 시식을 제공한다.
관점 역시 큰 틀에서 괜찮다. 이 책들은 내용 자체도 괜찮지만, 베스트셀러가 된 가장 강력한 계기는 당시 MB정부가 추진한 신자유주의의 통증 덕분이다. 작가는 신자유주의, 더 나아가 자본주의가 잉태한 고통과 폭력을 비판하는 입자에서 책을 평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치적 입장을 견지하는지 드러나지는 않지만, 적어도 인문학적 정신에서 독서를 한다.
MB자서전인 <신화는 없다>를 호평하며, 현 청와대 주인(당시 이명박)이 읽어야 할 책으로 말하거나 <88만원 세대>에서 청춘의 고민을 느껴보려고 노력한다. 한편 작가는 나에게는 내용이 어려워 읽어보지 않았던, 정확히 말해 엄두를 내지 못한 책도 읽어 나름의 견해를 밝힌다. <제국의 미래>에 대한 요약이 그렇고, 언젠가 꼭 읽겠다는 다짐 하에 비평 이론을 공부하고 읽을 예정인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에 대해서 깔끔하게 요약하고 담백하게 평한다. 김종철 선생의 녹생평론외에 문학을 더난 비평가는 없지만, 문학이 녹생평론을 능가하는 사회적 의제를 만들지 못했다는 점도 지적한다.
한편 작가가 아니면 평생을 몰랐을 법한 책도 소개하고 있다. 인도 안의 불가촉천민 문제에 집중한 <암베드카르>와 <신도 벌린 사람들>이라는 책이다. 인간 차별과 억압 철폐를 사명으로 삼았지만 반쯤 남아있는 인도의 신분제에 무지했던 나에게 신분제 문제를 되새기게 한 책들이다. 인도에서 인간 취급조차 받지 못한 불가촉천민들이 1억 6천만이나 된다는 사실에 놀라 노트에 책 제목을 옮겨적었다. 또한 작가가 헌책방에서 구한, 저자의 나이도 적혀있지 않은 <사막의 꽃>이라는 책 또한 주목할 만하다. 여성할례라는 부조리한 관슴을 겪은 소말리아 출신의 여성의 경험을 다룬 이 책은 내가 공감할 시도조차 하지 않은 어둠을 소개해줬다는 점에서 감사하게 느껴진다. 자꾸 헌책방을 찾는 이유로, 일반 서점에서 보지 못하는 책을 보았다고 말하는 작가의 말이 나 역시 인상 깊게 느껴진다.
소설가는 소설책만 읽겠지라는 고정관념 따위 뒤엎은 장정일의 독서일기지만, 소설가인만큼 소설을 평하는 시선 역시 놀랍다. 베스트셀러로 인정받고 더 나아가 2000년대 들어 가장 주목하는 소설인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혹평하며, 잘 쓴 소설이 아니라고 한다. <엄마를 부탁해>는 잘 씌어진 소설이나 어디까지 통속소설로만 그렇다고 라고 이야기하는 조영일 평론가의 평을 두고, ‘병신 인증’이라는 과감한 언어로 비판하며 <엄마를 부탁해>에는 아이러니가 없고, 수준 높은 문학작품인양 현혹하는 위조술이라고 평한다. 역시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옥살이를 하던 작가답게, 문체에서 살기가 느껴진다. 그런데 그 살기가 매혹스럽고, 이러한 뜬금없는 당돌함은 애서광을로서 작가의 매력이다.
언젠가 누군가와 동거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다. 동거의 대상이 성적 매력은 없더라도 지적 매력만 발산하는 존재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물론 차이는 있지만 장정일 작가는 내게 매력적인 지적 존재이다. 물론,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책을 평한 대목에서 작가는 정독만이 그에게 독서라고 이야기핬지만, 나는 정독, 발췌독, 훑어읽기로 책을 나누어 읽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이처럼 숨막히는 책을 읽는 다독가이자, 애서광인 장정일과 함께 살고 싶다. 물론, 성애를 나누지 않고 하루 종일 책 이야기를 하며 논쟁하고 싶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 대립되는 것을 대고 마찰하는 것, 이것이 섹스 아닌가? 장정일과 함께 살며 책을 읽고 밥을 먹고 다시 책을 읽고 논쟁하며 술잔을 기울이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기에 또 다른 그의 독서 편력을 관음할 수밖에. 그리고 그의 다독의 소산이라 할 수 있는 저서도 읽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