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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적 논리학의 역사적 이해

예발트 일리옌코프, 《인간의 사고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책갈피, 2

by 꿈꾸는 곰돌이

예발트 일리옌코프, 《인간의 사고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책갈피, 2019, 우기동역


예발트 일리옌코프는 구 소련의 철학자로 당시 스탈린주의로 인해 오염된 (자칭) 마르크스주의 국가인 소련에서 진정한 변증법적 유물론의 부활을 꿈꾸었다. 물론, 그의 시도는 유사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에서 용납될 리 없었고 당연히 소련 학계에서 사실상 파문을 당한 후 자살하게 되는 비참한 최후를 마주한다. 그럼에도 그가 복기하려고 하던 '논리학’(Logic: 첫글짜를 대문자로)으로 이해됨과 동시에 현대 유물론의 인식론으로 이해되는 변증법은 분명 다른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이론적 무기가 될 것이다. 변증법적 논리학이 ‘사고’에 관한 과학일 뿐 아니라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모든 것들의 발전에 관한 과학이기에, 마르크스주의자에게 변증법적 논리학은 정치경제학, 제국주의론, 당이론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주제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논리학

"어떤 문제를 과학으로 해결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그 문제에 대해 역사적 접근하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에도 이런 역사적인 접근방법이 본질적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오늘날 소위 논리학이라는 학문 내에는 논리학의 영역을 상당히 다르게 이해하는 이론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 이론들은 저마다 논리적 사고의 발전과정에서 유일한 현대적 단계라고 주장하고, 단순히 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논리학의 역사를 고찰해야만 한다" (P.26)

일리옌코프는 역사적으로 변증법적 논리학 추적한다. 논리학은 초기 스토아 철학자들에 의해 개념화되었고, 중세에는 형식적인 논쟁 도구로 변형되었다. 이후 근대 철학자들은 이 형식적인 논리학을 비판하며, 사고와 실재의 관계를 새롭게 탐구했다. 근대적 인식과 사교의 역사에 있어 한 획을 그은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는 '보편수학'의 개념을 제안하며, 사고와 존재의 문제를 분석하려 했다. 이 문제는 사고와 존재가 서로 전혀 다른 두 개의 실체임을 드러내며, 서로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질문하는 것이다. 데카르트주의자들은 이 문제를 신에 의해 설명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는 데카르트가 사유와 연장(연장된 사물)이 본질적으로 상호작용한다고 인식했지만, 그 설명을 신의 영역으로 남겨둔 점에서, 철학이 이론적 난점을 해결하는 데 있어 신학에 의존했던 것을 보여준다. (당시 교회의 위상과 신에 대한 한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원형으로서의 스피노자

당대 철저한 아웃사이더이자 파문은 물론, 모든 저작이 금서로 지정된 스피노자였지만, 그의 철학은 마르크스-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있어서 상당한 토대를 마련했다. 후대 헤겔도 신학과 철학을 구분하여, 모든 철학은 스피노자의 후예라고 보았을 정도로, 후대에 갈수록 높게 재평가되고 있다. 헤겔마저도 스피노자식 일원론에 갔다가 다시 데카르트식 신에 대한 개념으로 빠져버리는데, 그의 철학은 사고와 육체를 하나의 실체로 보며, 사고를 자연의 속성으로 이해하는 철학적 관점을 제시한다는 점이 획기적이다.

스피노자는 사고가 신체와 분리된 특별한 정신이 아니라, 신체의 속성이자 존재 방식이라는 점에서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반박했다. 사고는 자연의 활동이자 인간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며, 이는 공간적인 활동으로 나타나며, 사고의 원인을 사고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 내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자연 역시 필연적으로 사고하며 인간은 이를 통해 자연을 이해하고, 사고는 단순히 인간의 육체적 활동을 넘어서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자연의 속성임을 주장했다. 이러한 사고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고하는 육체와 외부 사물 간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탐구해야 하며, 이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 자연의 본질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일리옌코프에 따르면 당대 자연과학의 한계로 후대로 넘겼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 철학과 과학에 중요한 기초를 제공하는 유물론적 사고의 한 형태로 평가된다는 점에서, 스피노자의 사상의 위상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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