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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에 대한 단상

by 꿈꾸는 곰돌이

어느 비운의 야구 선수가 남긴 유언을 마음 속에 깊게 세기고 있다. "지는 낙엽은 바람을 탓하지 않는다." 낙엽을 떨어뜨린 가을 바람은 분명 냉혹하지만 몽상의 마력을 불러오고, 그 이전에 음주의 마력을 불러온다. 가을 바람을 맞으니, 더욱 더 술을 많이 마신다. 애주가라는 변명보다 알콜 중독자라는 표현이 적당한 듯 싶다.

서울에서의 고된 하루를 보내고 오면 집에 들어와 냉장고에 들어있던 시원한 맥주를 마시거나 밥을 안 먹었다면 안주와 함께 막거리를 곁들어 마신다. 혹은 서울에 가지 않고 집근처에서 하루를 보낸 날이면 아파트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집에 들어와 맥주를 마신다. 먹는 안주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드라마나 책에 기대어 술을 마신다. 시집은 피하는데, 시집의 감성이 들어가면 과음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무거운 학술서를 읽지도 않는다. 김훈, 김현, 남진우 등 한국 명필가들의 산문을 읽는다. 산문과 추풍, 이 둘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고 나는 그럴 수록 맥주캔은 빨리 비워진다.

술을 마시며 한 번도 포기 하지 않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거나 인류 해방의 전망을 생각하기도 한다. 분명 건강하지 않은 음주이고, 타락한 한국 사회의 편린일 것이다. 타인과의 교류를 단절한, 자폐적 혼술.알콜에 의존하지 않으면 살아갈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괴로움은 시대의 병폐라는 유물론에 기대어, 마음껏 방종을 즐긴다. 몽상으로 역동적인 상상을 한다. 마치 바람에 기대어 당나귀를 타고 흰 눈 푹푹내리는 마가리로 나타냐와 함께 가서 서로의 세계를 탐닉하는 것, 혹은 금지된 일을 마음껏 소망해 억압하는 자들을 모조리 찢어갈기는 것. 마광수나 바타유가 그랬던 것 처럼, 성윤리를 완전히 전복시켜 사회를 공격하는 것과 같은 일들을 몽상한다.

음주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타인과 함께 하는 음주와 혼자 자폐적으로 마시는 혼술. 타인과 함께 마시는 음주가 억압이 아닌 향락의 현상이라고만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혼술은 자폐적인 사회의 병폐인 듯 하다. 기쁜 일이 있다면,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타인과 그 기쁨을 공유하지 밀실에서 술을 들이키지 않는다. 나쁜 일이 있다해도,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타인과 그 고통을 나누지 혼자 마시지는 않는다. 기쁜 상황을 축하하기 위해 타인과 함께 하는 음주는 디오니소스의 제의와 닮아있다.그러나 내가 행하는 습관적인 음주는 분명 영혼이 신음하고 있는 아픈 징후이자 타락한 시대의 표상이다. 공허를 달래는 음주, 그것은 정통 인문주의 비평가 리비스가 지적했던 것 처럼 삶의 의미를 상실한 근대의 고치기 어려운 병폐이다. 분명 문제와 원인도 인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끊을 수 없다. 그러면 너무나 가벼워져 바람에 날라갈 수 있기에.

시인처럼 마무리 지어볼까? 바람이 분다, 마셔야겠다. 바람이 분다, 마셔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마셔야겠다.

고독한 밀실에서 추풍을 맞으며,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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