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팔레스타인 문학 읽기: 가자 전쟁의 불꽃 속 문학

by 꿈꾸는 곰돌이

팔레스타인 문학 읽기: 가자 전쟁의 불꽃 속 해방의 불꽃을 위하여



인류 역사 속에서 전쟁은 흔히 인간의 가장 극악한 본성을 드러내는 시기로 나타난다. 제2차 세계대전이 그랬고, 오늘날 제국주의가 잉태한 수많은 내전이 그것을 증명한다. 한편 역설적으로 그 속에서 우리는 인간다움, 연대, 그리고 희망이라는 깊은 가치를 재발견하기도 한다. 오늘날 가자 지구를 휘감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이러한 인간다움의 빛을 찾고자 할 때, 우리가 기댈 수 있는 한 줄기의 빛은 바로 팔레스타인 문학이다. 팔레스타인 문학은 단순한 예술적 표출을 넘어, 깊은 상처와 불굴의 정신이 교차하는 공간에서 피어난 이야기들이며, 이 시기에 더욱 절실히 읽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 팔레스타인 문학은 일찍부터 읽혀왔다. 한국 문단의 거인 백낙청 선생이 쓴 <인간 해방의 논리를 찾아서>에서는 팔레스타인 문학을 다룬다. 이 책이 박정희 유신 체제에서 나온 책이니, 거의 반세기전부터 문단에서 팔레스타인 문학에 관심을 갖은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오수연, 김남일, 방현석, 박노해 등 팔레스타인에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한국 작가들이 많다. 이들은 가자 전쟁 이후 팔레스타인 지지를 말하며, 집회에 나와 연대 발언을 하기도 했다. 팔레스타인 문학은 식민지배와 전쟁이라는 점에서 한국 문학과 공통분모가 많다. 한국 문학의 특징으로 여겨지는 ‘한의 정서’ 역시 팔레스타인 문학에서 느낄 수있으며, 역시 외세의 위협으로부터 형성된 민족의식과 저항 정신 역시 돋보인다.

한국 정치계, 특히 우익들은 팔레스타인보다 이스라엘에 한국을 많이 비교하기도 한다. 작은 나라이며 친미 국가라는 이유를 든다. 그러나 한국은 식민지배를 겪은 국가였지, 더러운 식민 통치를 한 국가가 아니었다. 팔레스타인 문학은 이처럼 한국인에게 이스라엘이냐, 팔레스타인이냐 이 화해할 수 없는 불가피한 양자택일에서, 어느 편이 진정으로 인간 해방의 길에 서 있는지 말한다. 팔레스타인 문학의 세계로 인도하는 팔레스타인 문인들과 그 작품을 소개한다.

먼저, 마흐무드 다르위쉬라는 이름은 팔레스타인 문학을 논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중심축이다. 그의 시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 그리고 자유에 대한 염원을 아름다운 언어로 풀어내는 힘이 있다. "초원의 장미"와 같은 그의 작품은 단순히 미적 감상의 대상을 넘어, 독자로 하여금 팔레스타인이라는 특별한 지리적, 정치적 맥락을 떠올리게 한다. 다르위쉬의 언어는 팔레스타인의 영혼을 담고 있으며, 우리는 그의 시를 통해 그들이 겪은 고난과 역경, 그리고 불멸의 희망을 함께 느낄 수 있다. 다르위쉬는 시를 통해 우리에게 물리적 국경을 넘어선 감정의 연대를 가르친다. 한국어로 옮겨진 시선집 <팔레스타인의 연인>은 아랍어의 운율을 느낄 수는 없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문장과 표현은 팔레스타인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한다.

둘째로, 가산 카타파니의 작품은 팔레스타인 문학의 힘을 또 다른 방식으로 드러낸다. 그의 작품 속 이야기는 이산과 망명의 서사를 통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복잡한 정체성을 탐구한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하이파에 돌아와서>와 같은 그의 소설은 현실주의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이야기의 밀도가 높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냄새, 느낌, 소리를 생생하게 재현한다. 카나파니는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인간과 그 사회를 이해하려는 심층적 접근을 통해 독자를 팔레스타인의 중심으로 끌어들인다. 그의 이야기는 현재의 전쟁 상황에서도 여전히 이산의 아픔을 경험하는 팔레스타인인들, 그들의 희망과 절망을 직시하는 데 탁월한 문학적 마력을 담고 있다.

위 문인들이 나크바라고 불리는 이스라엘 건국 및 팔레스타인의 재앙 이전 세대라면, 아다니아 쉬블리는 나크바 이후 태어나서 청소년 시절에 인티파다를 목격한 젊은 팔레스타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 갈리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쉬블리이지만, 역시 팔르세타인의 비극을 이야기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젊은 작가상’을 수상하며 한국에도 여러 차례 방한한 적이 있는 아다니아 쉬블리로, 국내에는 <사소한 일>이 대중에게 알려져 있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상을 받기로 예정된 책이었지만, 하마스 공격을 이유로 어처구니없게 시상식이 취소된 작품이기도 한다. 이스라엘군의 폭력과 여전한 점령 현실을 입체적으로 다룬 탁월한 작품이며, 근래 번역되었기 때문에 번역 역시 흘륭해 오늘날 팔레스타인을 이해하는 최고의 문학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팔레스타인 문학은 한 민족의 역사를 넘어 전 억압 받는 전세계 민중의 이야기가 된다. 우리가 팔레스타인 문학을 탐독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다채로운 인간에 대한 이해이다. 우리가 다르위쉬와 카타파니, 하미드의 작품을 통해 만나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인간애, 그리고 그 덕에 다시 피어나는 희망의 불꽃이다.

현재 가자 전쟁은 우리에게 이러한 문학과의 만남을 더욱 시급하게 만든다. 팔레스타인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그들의 분투와 애환을 공유하고, 그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며, 더 나아가 인류애를 되새기는 일이 된다. 전쟁은 인간을 분열시키지만, 문학은 다시금 우리를 하나로 묶는 힘이다. 그들이 문학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오랜 시간 동안 우리의 마음속에 잔잔히 울려 퍼질 것이며, 결국에는 평화를 향한 우리의 의지를 굳건히 하리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가자와 레바논 등지에서 타오르는 불꽃 앞에서 팔레스타인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이는 단지 한 시기의 기록을 넘어서, 억압받는 민중의 서사를 통해 우리가 어디 편에 서야 하는지 일러주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문학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마침내 해방되리라'라는 메시지를.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 시기에, 바로 지금.

keyword
작가의 이전글뿌리 깊은 비평의 이름, 문화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