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으로 예술의 경지에 오른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는 경이롭다. 지브리로 철학을 조각하는 하야오의 작품은 예술이자, 더 나아가 철학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지브리 세계의 시원이라 할 수 있는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에서 여성 메시아의 재림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숭고한 화해를 보여준 이후, 하야오의 세계관은 한결같다. 그것은 에코페미니즘 경향의 반자본주의 사상으로, 물질 문명 중심적 세계관을 혐오하고, 인간과 자연의 화해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전복적인 세계관이다. 이런 세계관은 그의 심오한 영화로 간주되는 「원령공주」와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외에도 동화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이웃집 토토로」에서도 적용된다. 단지 어린이의 동심을 예찬하는 영화 정도로 이해된 이 영화에는 에코페미니즘 세계관이 우화적으로 표현되었다.
1. 동심적 상상력의 근원 동심적 상상력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바로 에코페미니즘에 있다. 에코페미니즘은 자연과 여성의 관계를 생태적 위기와 억압의 관점에서 조망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여성과 자연 모두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사회 구조 내에서 종종 '착취'의 대상이 되어 왔다고 본다. 이들은 대개 생산성보다는 재생산의 측면에서 간주되며, 이는 자연 자원 착취와 여성의 역할 축소와도 연결된다. 에코페미니즘은 이런 인식을 통해 환경 운동과 여성운동이 상호 보완적이며 동시에 추진되어야 하는 과제임을 강조한다. 사츠키와 메이는 어머니의 투병 생활로 시골로 낙향한다. 그곳에서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는데, 아버지와 함께할 때는 초월적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것은 대타자를 상징하는 아버지의 현존이 상징계의 질서를 강요하기 때문에, 상상계의 방종은 허락되지 않는다. (물론, 기본적으로 동화적 색채가 강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남성성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둘은 어머니로 대표되는 생태주의적 여성성과의 재회를 갈망하며, 상징계의 질서를 벗어나기 위해 동심적 상상력을 발휘한다. 즉, 동심의 근원은 에코페미니즘에 대한 지향이다. 그래서 숯 검댕이, 토토로와의 조우, 고양이 버스, 토토로와의 나무를 미메시스하며 춤추는 행위 모두 아버지가 부재한 상태에서 행해진다. 이 신비한 체험을 상징계의 용어로 풀어내자면, 상징계의 질서에서 벗어난 동심적 ‘정신착란’이다. 이는 일종의 정신 이상으로, 성스러운 광기이다. 미셸 푸코의 그 유명한 저서 『광기의 역사』에서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광기를 나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광기를 이상한 것으로 구분하여 억압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화가 몰고 온 폭력이다. 아버지의 질서를 위반하는 이러한 상상력은 억압되었고, 아버지가 부재한 상황에서만 펼쳐진다. 하야오는 그 동심적 정신착란을 통해 아버지 질서의 전복, 더 나아가 물질 문명이 아닌 생태주의적 대지의 상상력을 그려낸다.
2. 숲으로 된 성벽 에코페미니즘에서 말하는 여성성은 대체로 자연 속 숲의 이미지와 조응한다. 자연과 인간의 대립이 아닌 인간을 포용하는 자연을 말하는 여성성과 연결하는데, 숲을 정복하는 인간이 아닌 숲이 인간을 포용하는 구조야말로 에코페미니즘적 서사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근대 이후 인간은 숲을 정복해왔다. 근대적 인간은 숲을 밀어 도시를 만들고, 나무를 무자비하게 벌목함으로써 인간의 집이나 도구로 사용했다. 숲은 늘 정복의 대상이었지만, 에코페미니즘 관점에서 자연은 인간의 도구가 아니다. 어울려 조화가 되어야 할 시원적 공간으로 이해된다. 에코페미니즘에서 가장 돋보이는 반자본주의 요소는 이 부분이다. 자연에 대한 사물화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급진적이다. 다시 작품으로 들어가 아버지가 잠든 시간에 토토로와 함께 추는 춤은 자연을 정복하고 소유하는 문명에서 벗어나 생태 지향적 제의이다. 나무를 베기보다 나무를 따라하는 춤을 추며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추구한다. 이러한 제의는 사츠키와 메이가 숲으로 된 성벽 속 존재로서, 대지의 세례를 받은 계기가 된다. 이러한 계기는 나중에 숲의 정령인 토토로만이 이용할 수 있는 고양이 버스를 탈 수 있게 된다. 특히 고양이 버스는 비행하는 초월적 버스인데, 이것은 물질 문명 위에 놓인 동심적, 생태학적 상상력의 우위를 보여주는 알레고리로 다가온다.
3. 영화 「이웃집 토토로」는 에코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자연과 여성의 역할을 새롭게 조명하는 작품으로 해석될 수 있다. 영화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과 여성의 주체적 역할을 강조하며, 현대 사회가 직면한 생태적, 사회적 문제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메시지는 자연과 여성 모두의 고유한 가치를 인식하고, 그 관계의 회복을 추구하는 에코페미니즘의 핵심 사상을 잘 담고 있다. 「이웃집 토토로」는 미학적으로 수려할 뿐만 아니라, 에코페미니즘의 정치적 급진성을 보여준 하야오의 세계를 드러내는 수작이다. 작중 숲의 미메시적 제의를 풍요롭게 해준 OST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듣는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숲의 세계로 회귀를 몽상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