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볼프강 괴테 ≪친화력≫: 낭만적 사랑에 대한 대답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말년작 ≪친화력≫은 인간 감정과 사회적 관계의 복잡함을 깊이 있게 조명하는 작품이다. 괴테는 화학적 친화력을 인간 관계에 대한 은유로 활용해 사랑과 결혼의 본질을 탐구한다. 이야기는 에두아르트와 샤를로테의 안정적인 결혼 생활로 시작된다. 이 둘은 각자 원치 않은 사람과 결혼하지만, 나중에 먼저 죽은 배우자의 유산을 물려받아 풍요로운 저택에서 정원을 가꾸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간다. 하지만 에두아르트의 친구 오토 대위와 샤를로테의 조카(수양 딸) 오틸리에가 그들의 영지에 머무르게 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에두아르트는 오틸리에에게 강한 매력을 느끼고, 오틸리도 금지된 사랑의 감정에 휩싸인다. 샤를로테 역시 오토와의 관계에서 감정적 위안을 찾게 된다. 이런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는 인물들 사이의 갈등을 증폭시킨다. 결국 낭만적 사랑과 불륜으로 인해 가정이 무너지고, 죄책감으로 오틸리에가 단식해 죽음을 선택하고, 에두아르트 역시 그녀의 죽음을 따라간다. 이건 낭만적 사랑이 죽음으로 완성되는 베르테르의 선택을 반복하는 것이다.
괴테는 ≪친화력≫을 통해 낭만주의와 고전주의 사이의 대립을 흥미롭게 탐구한다. 낭만주의는 자유로운 감정 표현과 개인의 주관적 경험을 중시하는 반면, 고전주의는 이성과 질서를 강조한다. 에두아르트의 두 갈래 사랑은 이 두 사조의 갈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오틸리에에 대한 감정적 열정과 샤를로테와의 안정적 관계 사이에서 고민한다. 열정에 흔들리는 그의 마음은 낭만주의적 사랑을, 안정된 결혼 생활에 대한 의무감은 고전주의적 사랑을 상징한다.
나중에 발터 벤야민은 ≪친화력의 친화력≫에서 괴테가 자연 법칙을 인간 관계에 적용해 사회적 비판을 드러냈다고 평가한다. (물론, 이 글은 괴테를 무비판적으로 숭배하는 기존 사조에 반대한다) 자연법칙이 인간 감정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 보여주며, 이는 인간의 행동과 사회 구조 간의 본질적 모순을 드러낸다. 벤야민의 해석은 작품이 단순한 개인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 사회적 메시지까지도 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친화력≫은 매우 선구적인 작품이다. 독일 철학이나 문학 전공자들은 근대 초기 낭만주의자들이 프로이트가 무의식으로 호명한 것을 미리 알고 있으며, 작품 속에 반영했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괴테이다. 이 소설 역시 사랑에 대한 의식과 무의식의 갈등을 다룬다. 결혼은 의식적이고, 불륜의 친화력 결합은 무의식적인 마력의 끌림이다. 에두아르트와 오틸리에의 관계는 무의식적 욕망과 사회적 도덕 간의 충돌을 보여준다. 이 금지된 사랑은 결국 인물들을 비극으로 몰아넣는다. 괴테는 이러한 관계를 통해 인간 내면의 복잡성을 탐구하며, 억압된 감정이 표면화될 때 나타나는 혼란을 그려낸다. 계몽주의 시대, 이성의 빛이 강할 때 괴테는 문학으로 이성의 완결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고, 그것은 말년의 소설에서 두드러진다.
또한, 사랑과 결혼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작품 전체에 깔려 있다. 에두아르트와 샤를로테의 결혼은 안정성과 사회적 질서를 대표하지만, 오틸리와의 사랑은 열정적이고 파괴적이다. 괴테는 이 대조를 통해 사랑의 본질과 그로 인한 필연적 고통을 탐구한다. 낭만주의적 사랑이 삶을 혼란스럽게 하면서도 인간 존재의 깊이를 더한다고 본다면, 고전주의적 사랑은 삶의 안정성을 제공하지만 진정한 열정의 결여를 초래한다. 이 지점에서 박찬욱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 대한 원형 서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낭만적 사랑이 가진 파멸성을 원형적으로 제시한다. 이런 점에서, 자본주의와 일부일처제가 태동할 때 나온 이 소설은 오늘날 통속 문학, 또는 불륜 막장 드라마의 원형이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근대 초기부터 일부일처제에 대한 반감과 참을 수 없는 사랑의 매혹을 선구적으로 그려낸 괴테의 선견지명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친화력≫은 죽음으로 완성되는 낭만적 사랑의 아름다움, 동시에 파괴력을 보여준다. 사랑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형성하고 파괴하는지를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사랑을 부정하거나 일부일처제를 옹호하지는 않는다. 담담한 일상 속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사랑과 결혼의 진정한 의미를 성찰하게 만들며, 독자들에게 인간 존재와 감정의 본질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는 낭만주의와 고전주의를 아우르는 괴테의 지적 깊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결국, 사랑의 본질을 탐구하며 인간 내면의 복잡함을 재발견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초기 '소설'이라 할 수 있는 작품 중, 반드시 거쳐가야 할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