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에 박혀버린 문장들, 《A가 X에게》
-존 버거 소설 속 두 명의 연인을 위하여
요즘 시대에 이 책을 읽다 보면, 이 편지가 현실의 껍질을 벗고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편지는 단지 한 사람과 또 다른 사람 사이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세상 속 모든 X(사비에르)에게, 모든 A(아이다)에게 던져진다. 존 버거는 등장인물들의 삶, 그들의 작은 움직임, 그리고 침묵 속에서 살아가는 간절함을 통해 우리가 흔히 잊고 지나가는 인간다움의 심연을 보여준다. A의 사랑은 단순히 한 사람을 향한 헌신이 아니라, 고통스럽고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 관계를 통해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사랑에 대한 총체적 증언이다.
이 책에서 사랑이란 단순한 감정적 유희가 아니다. 사랑은 싸움이다. 사랑은 추락이다. 사랑은 정의와 자유라는 이름 아래 억압받는 이들을 위한 손짓이다. A는 편지에서 X에게 무수한 말과 침묵을 남기지만, 그 침묵의 뒤에는 꼭 필요한 생의 울림이 있다. 사랑은, 어쩌면, 가장 급진적인 저항이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 자체가 정치적 행위이며, 불가능한 세상을 바꾸려는 치열한 열망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존 버거를, 가산 카나파니를 기억하며 몇 가지 문장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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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요. 지금 당신을 만져 보고 싶어하는 내 손을 내려다보고 있어요. 너무 오래 당신을 만져 보지 못해 이젠 쓸모없이 되어 버린 손처럼 보이네요
밤의 마지막 어둠이 남아 있어요. 나는 아직 잠들지 못했네요.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어디에나 있는 그런 미래가 아니에요. 우리가 함께 있는 미래도 아니죠. 그들이 막으려 하는 여기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그들은 성공할 수 없어요. 미래, 그들이 두려워하는 그 미래는 올 거예요. 그리고 그 안에, 그때 우리에게 남아 있을 것 안에, 우리가 어둠 속에서 지켰던 확신이 있어요.
기다리는 법을 아는 피는 또한 돌이 되는 법도 알고 있다. 세상 속에 있다는 것은 고통이다. 이것이 내가 배운 것이다.
세상 속에 있다는 건 고통이겠죠. 그 시가 맞아요. 그리고 오늘 밤 나의 손은 당신을 위로해 주고 싶어해요.
밤이 됐네요, 전기가 나가고, 하늘에서 우리를 감시하는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가 들려요, 촛불을 들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내 손을 당신의 두 손 사이에 밀어 넣어요.
지금 우리의 삶은 끝없는 불규칙성에 빠져 버렸어요. 그런 삶을 강요한 자들이 오히려 우리의 불규칙성을 두려워하고 있죠. 그래서 그들은 우리를 몰아내기 위해 담장을 세워요. 하지만 모든 걸 막을 수 있을 만큼 긴 담장은 불가능하고, 어떻게든 돌아가는 길은 있기 마련이죠, 위로든 아래로든.
-《A가 X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