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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가 쓴 마르크스의 시간관

by 꿈꾸는 곰돌이

시간을 하나의 상태가 아니라 하나의 힘으로 인식하는 근대적 변환은 헤겔에게서 비롯한다. 하지만 헤겔은 역사의 힘에 대해 낙관적이었다. 그보다 더 낙관적인 철학자를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그 뒤, 마르크스는 이 역사의 힘이 인간의 행동과 선택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따. 시간이 지고의 힘으로 바뀌어 버린 근대적 변환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이런 지고의 힘을 인간의 손에 돌려주겠다고 희망한 점에, 마르크 사상의 항존하는 극적 요소와 마르크스 변증법의 원초적 상충 요소가 자리한다. 그의 사상이 문자 그대로 거대한 이유 역시 이런 사실에 있다. 인간의 잠재력이나 인간에게 예상되는 힘 등, 다른 무엇이 아닌 인간의 역량이 영원성을 대체할 것으로 마르크스는 믿었다.



-존 버거,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 열화당, 2004, 김우룡역



존 버거가 말하는 마르크스의 시간관



존 버거는 그의 산문에서 마르크스의 철학적 시간관을 중요한 주제로 다룬다. 존 버거는 시간을 단순히 흐르고 사라지는 상태로 정의하는 대신, 시간 자체를 "역사적 힘"으로 바라보는 근대적 전환의 시작점을 헤겔에게서 찾는다. 이 전환은 시간이라는 개념을 단순히 관조적이거나 수동적인 것으로 규정짓던 전 근대적 시각에서 벗어나, 시간이 역동적으로 인간의 삶과 사회를 형성하는 결정적 요소로 기능하게 된 패러다임의 변화다. 하지만 헤겔의 시간관은 본질적으로 "낙관적"이며, 역사의 발전이 결국 합리적이고 긍정적인 결말로 귀결될 것이라는 신념에 기초한다. 여기에서 마르크스는 헤겔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며, 역사의 힘과 인간의 행위 사이의 관계에 새로운 차원을 부여한다.

마르크스에게 시간은 단순히 지고한 힘이 아니다. 존 버거는 마르크스를 통해 시간이 인간의 선택과 행동에 의해 계속적으로 형성되고 변화되는 내재적이고 유동적인 힘으로 전환된다고 지적한다. 이는, 곧 역사의 흐름이 운명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능동적 실천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관점에서 역사를 단지 관찰하거나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을 통해 역사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주체적인 가능성을 강조하며 철학적 재구성을 시도한다.



존 버거는 마르크스의 이러한 시간관을 "극적"이고 "상충적"인 사상으로 평가한다. 이는 역사의 주체로서의 인간, 즉 인간이 시간의 굴레에 지배당하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시간의 본질을 만들어가는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데서 비롯된다. 특히,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사고는 이러한 사상의 중심을 관통한다. 변증법은 대립된 요소들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과 발전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과정을 설명하는데, 이는 역사가 고정된 결과나 법칙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따라서 시간과 역사는 인간의 능동적 참여와 실천에서 의미를 찾으며, 이는 근대 이후 시간이 지닌 신적이고 초월적인 성격을 인간의 손으로 돌려주는 철학적 혁신으로 이어진다.



흥미로운 점은, 마르크스의 이러한 시간관이 인간의 잠재력과 미래에 대한 깊은 신뢰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버거는 "인간의 역량이 영원성을 대체할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믿음을 강조하며, 이를 마르크스 사상의 가장 거대한 특징으로 평가한다. 마르크스에게 영원성이란 초자연적이거나 추상적인 권위를 의미하지 않으며, 인간 내면에 잠재된 창조성과 변혁의 가능성으로 대체된다. 이는 단지 이론에 머물지 않고, 인간 사회와 삶의 구체적인 변화에서 실현될 수 있는 희망적 전망을 담고 있다.



따라서 존 버거가 설명하는 마르크스의 시간관은 인간의 실천적 행동과 역사의 주체로서의 역할에 대한 강렬한 강조를 중심으로 한다. 시간은 단지 흐르는 추상적 개념이 아닌, 인간에 의해 창조되고 변화하는 힘이다. 이는 인간이 역사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역사를 자신의 의지에 따라 능동적으로 재창조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천명한다. 이러한 관점은 마르크스 사상의 변증법적 상태와도 상통하며, 역사가 무한히 열려 있는 가능성의 장(場)임을 암시한다. 시간이 더 이상 신적 권력이나 초월적 힘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손에 맡겨졌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의 시간관은 단지 철학적 사유를 넘어서, 인간 존재 자체에 관한 도발적 질문을 던진다.



이렇듯 존 버거가 본 마르크스의 시간관은 단순히 학문적 관심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갈등과 가능성, 그리고 인간의 역할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현대적 사유의 틀을 제공한다. 마르크스가 강조한 "극적"이며 "상충적"인 시간관은 우리에게 역사를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이 아닌, 우리가 함께 창조해 나가야 할 공동의 장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는 마르크스가 단지 과거의 철학자로 머물지 않고, 여전히 "거대한" 영향력을 가진 사상가로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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