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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by 꿈꾸는 곰돌이

존 버거,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열화당, 2008, 김우룡역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존 버거를 위하여






오후의 벽돌이 여행의 장밋빛 열기를 품을 때




장미는 숨 쉴 푸른 공간을 싹 틔우고


바람처럼 꽃 피울 때




듬성한 자작나무들이 트럭 안의 급한 마음들에게


바람의 은빛 얘기를 속삭일 때




울타리 나뭇잎들이 한순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던


빛을 간직할 때




그녀의 손목 맥박이 공중을 맴도는 굴뚝새의 가슴처럼 고동칠 때




대지의 합창단이 하늘에서 자신들의 눈을 발견하고


밀밀한 어둠 속에 서로의 눈을 뜨게 할 때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아침을 가로질러 나는 새들의 서예


도끼를 쥔 백만의 손, 대지의 부드러운 손


한발 앞의 시간


부족들의 부러진 이와 그들의 오랜 터전


초원 널리 흩어져 또 함께


남겨진 작은 진흙으로 빚은 손잡이, 물병의 유령 같은 흔적


흙을 통해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제공된 무기의 맹세, 우리의 통상적 발걸음인 종이 한 장


끈으로 묶인


손바닥의 지도


하지만 횃불로 주어진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우리를 향한 그들의 통로들에 우리는 얼마나 열려 있는지




왕궁을 와해하나 탐구의 노래를 깃들게 하는 한 포기 풀의 정의




나날로 채워져, 사랑하는 것이 되기 위해 가라앉으며,


물결에게 이름을 붙이는 배, 이 삶의 물병




나무가 늘 씨앗으로 알고 있었던 한 형상으로


자라 가는 기억




단어들





문 저 너머의 진리에 손을 뻗는 아이




다시 함께하기 시작하는 열망


세계의 공간 속에 통곡하는 동물들




방 안의 사람들 거리의 사람들 사람들







말에도 이런 잔해가 있다. 아무런 뜻을 갖지 못하는 말의 잔해, 그 의미가 파괴되어 버린 말의 파편을 말한다. 잘 알려진 고약한 예가 바로 이스라엘군의 공식 명칭인 ‘이스라엘 방위군(IDF)’이란 말로, 실상 이스라엘군은 방위군이 아니라 정복군이다. 용기있고 영감 넘치는 이스라엘의 병역 거부자 세르지오 야니(Sergio Yahni)의 말처럼, “이 군대는 이스라엘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도적질을 지속적으로 보장받기 위해 존재한다.”






“난민촌의 자궁으로부터 매일매일 하나씩 혁명이 태어나고 있다”



시인 모리드 바르구티(Mourid Barghouti)가 썼던 다음 문장에서 그 어떤 것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늙어 간다. 하지만 순교자는 늘 젊어진다.”







나는 다시 한번 모리드 바르구티를 인용한다.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올리브기름은 세기와 세기를 넘어, 여행자에게는 선물이요 신부에게는 위안이며, 가을의 결실이고 곳간의 자랑이며 가족에게는 재산이다.”



-존 버거,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중에서




이런 사실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이 처한 일상적 상황의 극단성에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은 거의 육십 년간 지속되어 왔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군사적 점령 기간—역사상 가장 긴 시간인데-사십 년이 되어 간다. 이 점령이 야기한 온갖 일들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이미 국제적으로 확인되고 정죄(定罪)된 것이기 때문이다.



존 버거는 분명 작가의 정점에 오른 인물이다. 소설-시-에세이, 심지어 사진까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사유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그의 텍스트는 늘 경이롭다. 다른 그의 소설에 비해 조금 덜 알려져있지만, 그의 에세이집 혹은 사회 비평집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는 오늘날에도 깊은 감동과 교훈을 주는 책이다. 특히 가자 지구의 야만이 계속되는 상횡에서, 폭력적인 제국주의가 우리의 일상을 파국으로 치닿게 하려는 상황에서 말이다.


존 버거가 쓴 책은 형식을 가리지 않고 친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다. 몇 편의 보고서로 묶인 이 책은 르포적인 성격도, 사회비평적인 성격도, 문학적인 성격도 모두 포함되어 있는 총체적인 글이다. '생존과 저항에 관한 긴급보고서'라는 부제처럼, 2000년대 초중반 미국의 이라크 침공, 팔레스타인 제2차 인티파다, 테러와의 전쟁 등 미국의 제국주의적 만행과 야만을 폭로한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존 버거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소중히 여겼던 죽어간 사람들과 그들의 생전 투쟁을 절절히 지켜내기 위한 책이기도 합니다." 글로 사람을 구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을 폭로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에 대한 대답을 존 버거는 가장 중요하게,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존 버거의 글이 매력적인 이유는 하나는, 사람과 사랑의 힘을 믿는 공동체의 선지자라는 점이다. 그의 모든 글은 사람에 대한 애정과 사랑에 대한 숭고함이 들어나는데, 이 책은 전자에 비중을 맞춘다. 평범한 민중들이 제국의 폭력으로부터 희생당해왔던 역사를, 희생시켰던 이들에 대한 분노를 담아낸다. 그래서 이라크의 비극을, 팔레스타인의 억압의 울분을 그들의 편에서 담아낸다. 특히 하마스가 집권 하기 이전, 제2차 인티파다와 2006년 하마스 집권 이전을 다룬 글에서는 어째서 팔레스타인들이 무슬림 전사가 되었는지를 추적하기도 하고, 다른 글에서는 추적자로 불리는 베두인 이스라엘군을 찍는 사진사에 대해 다루기도 한다. 작가의 창의성이, 인류애를 만나 쓰여진 이 글은 비팔레스타인 사람이 팔레스타인의 대의에 대해 가장 문학적으로 표현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팔레스타인의 비극이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시금 이 글이 읽혀 부디금 저 중동의 비극을 우리의 비극으로, '모든 것을 소중히 하'길 바란다.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존 버거를 위하여






오후의 벽돌이 여행의 장밋빛 열기를 품을 때




장미는 숨 쉴 푸른 공간을 싹 틔우고


바람처럼 꽃 피울 때




듬성한 자작나무들이 트럭 안의 급한 마음들에게


바람의 은빛 얘기를 속삭일 때




울타리 나뭇잎들이 한순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던


빛을 간직할 때




그녀의 손목 맥박이 공중을 맴도는 굴뚝새의 가슴처럼 고동칠 때




대지의 합창단이 하늘에서 자신들의 눈을 발견하고


밀밀한 어둠 속에 서로의 눈을 뜨게 할 때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아침을 가로질러 나는 새들의 서예


도끼를 쥔 백만의 손, 대지의 부드러운 손


한발 앞의 시간


부족들의 부러진 이와 그들의 오랜 터전


초원 널리 흩어져 또 함께


남겨진 작은 진흙으로 빚은 손잡이, 물병의 유령 같은 흔적


흙을 통해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제공된 무기의 맹세, 우리의 통상적 발걸음인 종이 한 장


끈으로 묶인


손바닥의 지도


하지만 횃불로 주어진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우리를 향한 그들의 통로들에 우리는 얼마나 열려 있는지




왕궁을 와해하나 탐구의 노래를 깃들게 하는 한 포기 풀의 정의




나날로 채워져, 사랑하는 것이 되기 위해 가라앉으며,


물결에게 이름을 붙이는 배, 이 삶의 물병




나무가 늘 씨앗으로 알고 있었던 한 형상으로


자라 가는 기억




단어들





문 저 너머의 진리에 손을 뻗는 아이




다시 함께하기 시작하는 열망


세계의 공간 속에 통곡하는 동물들




방 안의 사람들 거리의 사람들 사람들







말에도 이런 잔해가 있다. 아무런 뜻을 갖지 못하는 말의 잔해, 그 의미가 파괴되어 버린 말의 파편을 말한다. 잘 알려진 고약한 예가 바로 이스라엘군의 공식 명칭인 ‘이스라엘 방위군(IDF)’이란 말로, 실상 이스라엘군은 방위군이 아니라 정복군이다. 용기있고 영감 넘치는 이스라엘의 병역 거부자 세르지오 야니(Sergio Yahni)의 말처럼, “이 군대는 이스라엘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도적질을 지속적으로 보장받기 위해 존재한다.”






“난민촌의 자궁으로부터 매일매일 하나씩 혁명이 태어나고 있다”



시인 모리드 바르구티(Mourid Barghouti)가 썼던 다음 문장에서 그 어떤 것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늙어 간다. 하지만 순교자는 늘 젊어진다.”







나는 다시 한번 모리드 바르구티를 인용한다.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올리브기름은 세기와 세기를 넘어, 여행자에게는 선물이요 신부에게는 위안이며, 가을의 결실이고 곳간의 자랑이며 가족에게는 재산이다.”



-존 버거,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중에서




이런 사실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이 처한 일상적 상황의 극단성에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은 거의 육십 년간 지속되어 왔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군사적 점령 기간—역사상 가장 긴 시간인데-사십 년이 되어 간다. 이 점령이 야기한 온갖 일들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이미 국제적으로 확인되고 정죄(定罪)된 것이기 때문이다.



존 버거는 분명 작가의 정점에 오른 인물이다. 소설-시-에세이, 심지어 사진까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사유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그의 텍스트는 늘 경이롭다. 다른 그의 소설에 비해 조금 덜 알려져있지만, 그의 에세이집 혹은 사회 비평집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는 오늘날에도 깊은 감동과 교훈을 주는 책이다. 특히 가자 지구의 야만이 계속되는 상횡에서, 폭력적인 제국주의가 우리의 일상을 파국으로 치닿게 하려는 상황에서 말이다.


존 버거가 쓴 책은 형식을 가리지 않고 친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다. 몇 편의 보고서로 묶인 이 책은 르포적인 성격도, 사회비평적인 성격도, 문학적인 성격도 모두 포함되어 있는 총체적인 글이다. '생존과 저항에 관한 긴급보고서'라는 부제처럼, 2000년대 초중반 미국의 이라크 침공, 팔레스타인 제2차 인티파다, 테러와의 전쟁 등 미국의 제국주의적 만행과 야만을 폭로한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존 버거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소중히 여겼던 죽어간 사람들과 그들의 생전 투쟁을 절절히 지켜내기 위한 책이기도 합니다." 글로 사람을 구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을 폭로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에 대한 대답을 존 버거는 가장 중요하게,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존 버거의 글이 매력적인 이유는 하나는, 사람과 사랑의 힘을 믿는 공동체의 선지자라는 점이다. 그의 모든 글은 사람에 대한 애정과 사랑에 대한 숭고함이 들어나는데, 이 책은 전자에 비중을 맞춘다. 평범한 민중들이 제국의 폭력으로부터 희생당해왔던 역사를, 희생시켰던 이들에 대한 분노를 담아낸다. 그래서 이라크의 비극을, 팔레스타인의 억압의 울분을 그들의 편에서 담아낸다. 특히 하마스가 집권 하기 이전, 제2차 인티파다와 2006년 하마스 집권 이전을 다룬 글에서는 어째서 팔레스타인들이 무슬림 전사가 되었는지를 추적하기도 하고, 다른 글에서는 추적자로 불리는 베두인 이스라엘군을 찍는 사진사에 대해 다루기도 한다. 작가의 창의성이, 인류애를 만나 쓰여진 이 글은 비팔레스타인 사람이 팔레스타인의 대의에 대해 가장 문학적으로 표현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팔레스타인의 비극이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시금 이 글이 읽혀 부디금 저 중동의 비극을 우리의 비극으로, '모든 것을 소중히 하'길 바란다.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존 버거를 위하여






오후의 벽돌이 여행의 장밋빛 열기를 품을 때




장미는 숨 쉴 푸른 공간을 싹 틔우고


바람처럼 꽃 피울 때




듬성한 자작나무들이 트럭 안의 급한 마음들에게


바람의 은빛 얘기를 속삭일 때




울타리 나뭇잎들이 한순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던


빛을 간직할 때




그녀의 손목 맥박이 공중을 맴도는 굴뚝새의 가슴처럼 고동칠 때




대지의 합창단이 하늘에서 자신들의 눈을 발견하고


밀밀한 어둠 속에 서로의 눈을 뜨게 할 때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아침을 가로질러 나는 새들의 서예


도끼를 쥔 백만의 손, 대지의 부드러운 손


한발 앞의 시간


부족들의 부러진 이와 그들의 오랜 터전


초원 널리 흩어져 또 함께


남겨진 작은 진흙으로 빚은 손잡이, 물병의 유령 같은 흔적


흙을 통해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제공된 무기의 맹세, 우리의 통상적 발걸음인 종이 한 장


끈으로 묶인


손바닥의 지도


하지만 횃불로 주어진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우리를 향한 그들의 통로들에 우리는 얼마나 열려 있는지




왕궁을 와해하나 탐구의 노래를 깃들게 하는 한 포기 풀의 정의




나날로 채워져, 사랑하는 것이 되기 위해 가라앉으며,


물결에게 이름을 붙이는 배, 이 삶의 물병




나무가 늘 씨앗으로 알고 있었던 한 형상으로


자라 가는 기억




단어들





문 저 너머의 진리에 손을 뻗는 아이




다시 함께하기 시작하는 열망


세계의 공간 속에 통곡하는 동물들




방 안의 사람들 거리의 사람들 사람들







말에도 이런 잔해가 있다. 아무런 뜻을 갖지 못하는 말의 잔해, 그 의미가 파괴되어 버린 말의 파편을 말한다. 잘 알려진 고약한 예가 바로 이스라엘군의 공식 명칭인 ‘이스라엘 방위군(IDF)’이란 말로, 실상 이스라엘군은 방위군이 아니라 정복군이다. 용기있고 영감 넘치는 이스라엘의 병역 거부자 세르지오 야니(Sergio Yahni)의 말처럼, “이 군대는 이스라엘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도적질을 지속적으로 보장받기 위해 존재한다.”






“난민촌의 자궁으로부터 매일매일 하나씩 혁명이 태어나고 있다”



시인 모리드 바르구티(Mourid Barghouti)가 썼던 다음 문장에서 그 어떤 것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늙어 간다. 하지만 순교자는 늘 젊어진다.”







나는 다시 한번 모리드 바르구티를 인용한다.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올리브기름은 세기와 세기를 넘어, 여행자에게는 선물이요 신부에게는 위안이며, 가을의 결실이고 곳간의 자랑이며 가족에게는 재산이다.”



-존 버거,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중에서




이런 사실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이 처한 일상적 상황의 극단성에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은 거의 육십 년간 지속되어 왔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군사적 점령 기간—역사상 가장 긴 시간인데-사십 년이 되어 간다. 이 점령이 야기한 온갖 일들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이미 국제적으로 확인되고 정죄(定罪)된 것이기 때문이다.



존 버거는 분명 작가의 정점에 오른 인물이다. 소설-시-에세이, 심지어 사진까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사유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그의 텍스트는 늘 경이롭다. 다른 그의 소설에 비해 조금 덜 알려져있지만, 그의 에세이집 혹은 사회 비평집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는 오늘날에도 깊은 감동과 교훈을 주는 책이다. 특히 가자 지구의 야만이 계속되는 상횡에서, 폭력적인 제국주의가 우리의 일상을 파국으로 치닿게 하려는 상황에서 말이다.


존 버거가 쓴 책은 형식을 가리지 않고 친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다. 몇 편의 보고서로 묶인 이 책은 르포적인 성격도, 사회비평적인 성격도, 문학적인 성격도 모두 포함되어 있는 총체적인 글이다. '생존과 저항에 관한 긴급보고서'라는 부제처럼, 2000년대 초중반 미국의 이라크 침공, 팔레스타인 제2차 인티파다, 테러와의 전쟁 등 미국의 제국주의적 만행과 야만을 폭로한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존 버거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소중히 여겼던 죽어간 사람들과 그들의 생전 투쟁을 절절히 지켜내기 위한 책이기도 합니다." 글로 사람을 구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을 폭로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에 대한 대답을 존 버거는 가장 중요하게,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존 버거의 글이 매력적인 이유는 하나는, 사람과 사랑의 힘을 믿는 공동체의 선지자라는 점이다. 그의 모든 글은 사람에 대한 애정과 사랑에 대한 숭고함이 들어나는데, 이 책은 전자에 비중을 맞춘다. 평범한 민중들이 제국의 폭력으로부터 희생당해왔던 역사를, 희생시켰던 이들에 대한 분노를 담아낸다. 그래서 이라크의 비극을, 팔레스타인의 억압의 울분을 그들의 편에서 담아낸다. 특히 하마스가 집권 하기 이전, 제2차 인티파다와 2006년 하마스 집권 이전을 다룬 글에서는 어째서 팔레스타인들이 무슬림 전사가 되었는지를 추적하기도 하고, 다른 글에서는 추적자로 불리는 베두인 이스라엘군을 찍는 사진사에 대해 다루기도 한다. 작가의 창의성이, 인류애를 만나 쓰여진 이 글은 비팔레스타인 사람이 팔레스타인의 대의에 대해 가장 문학적으로 표현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팔레스타인의 비극이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시금 이 글이 읽혀 부디금 저 중동의 비극을 우리의 비극으로, '모든 것을 소중히 하'길 바란다.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존 버거를 위하여






오후의 벽돌이 여행의 장밋빛 열기를 품을 때




장미는 숨 쉴 푸른 공간을 싹 틔우고


바람처럼 꽃 피울 때




듬성한 자작나무들이 트럭 안의 급한 마음들에게


바람의 은빛 얘기를 속삭일 때




울타리 나뭇잎들이 한순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던


빛을 간직할 때




그녀의 손목 맥박이 공중을 맴도는 굴뚝새의 가슴처럼 고동칠 때




대지의 합창단이 하늘에서 자신들의 눈을 발견하고


밀밀한 어둠 속에 서로의 눈을 뜨게 할 때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아침을 가로질러 나는 새들의 서예


도끼를 쥔 백만의 손, 대지의 부드러운 손


한발 앞의 시간


부족들의 부러진 이와 그들의 오랜 터전


초원 널리 흩어져 또 함께


남겨진 작은 진흙으로 빚은 손잡이, 물병의 유령 같은 흔적


흙을 통해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제공된 무기의 맹세, 우리의 통상적 발걸음인 종이 한 장


끈으로 묶인


손바닥의 지도


하지만 횃불로 주어진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우리를 향한 그들의 통로들에 우리는 얼마나 열려 있는지




왕궁을 와해하나 탐구의 노래를 깃들게 하는 한 포기 풀의 정의




나날로 채워져, 사랑하는 것이 되기 위해 가라앉으며,


물결에게 이름을 붙이는 배, 이 삶의 물병




나무가 늘 씨앗으로 알고 있었던 한 형상으로


자라 가는 기억




단어들





문 저 너머의 진리에 손을 뻗는 아이




다시 함께하기 시작하는 열망


세계의 공간 속에 통곡하는 동물들




방 안의 사람들 거리의 사람들 사람들







말에도 이런 잔해가 있다. 아무런 뜻을 갖지 못하는 말의 잔해, 그 의미가 파괴되어 버린 말의 파편을 말한다. 잘 알려진 고약한 예가 바로 이스라엘군의 공식 명칭인 ‘이스라엘 방위군(IDF)’이란 말로, 실상 이스라엘군은 방위군이 아니라 정복군이다. 용기있고 영감 넘치는 이스라엘의 병역 거부자 세르지오 야니(Sergio Yahni)의 말처럼, “이 군대는 이스라엘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도적질을 지속적으로 보장받기 위해 존재한다.”






“난민촌의 자궁으로부터 매일매일 하나씩 혁명이 태어나고 있다”



시인 모리드 바르구티(Mourid Barghouti)가 썼던 다음 문장에서 그 어떤 것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늙어 간다. 하지만 순교자는 늘 젊어진다.”







나는 다시 한번 모리드 바르구티를 인용한다.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올리브기름은 세기와 세기를 넘어, 여행자에게는 선물이요 신부에게는 위안이며, 가을의 결실이고 곳간의 자랑이며 가족에게는 재산이다.”



-존 버거,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중에서




이런 사실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이 처한 일상적 상황의 극단성에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은 거의 육십 년간 지속되어 왔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군사적 점령 기간—역사상 가장 긴 시간인데-사십 년이 되어 간다. 이 점령이 야기한 온갖 일들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이미 국제적으로 확인되고 정죄(定罪)된 것이기 때문이다.



존 버거는 분명 작가의 정점에 오른 인물이다. 소설-시-에세이, 심지어 사진까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사유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그의 텍스트는 늘 경이롭다. 다른 그의 소설에 비해 조금 덜 알려져있지만, 그의 에세이집 혹은 사회 비평집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는 오늘날에도 깊은 감동과 교훈을 주는 책이다. 특히 가자 지구의 야만이 계속되는 상횡에서, 폭력적인 제국주의가 우리의 일상을 파국으로 치닿게 하려는 상황에서 말이다.


존 버거가 쓴 책은 형식을 가리지 않고 친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다. 몇 편의 보고서로 묶인 이 책은 르포적인 성격도, 사회비평적인 성격도, 문학적인 성격도 모두 포함되어 있는 총체적인 글이다. '생존과 저항에 관한 긴급보고서'라는 부제처럼, 2000년대 초중반 미국의 이라크 침공, 팔레스타인 제2차 인티파다, 테러와의 전쟁 등 미국의 제국주의적 만행과 야만을 폭로한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존 버거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소중히 여겼던 죽어간 사람들과 그들의 생전 투쟁을 절절히 지켜내기 위한 책이기도 합니다." 글로 사람을 구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을 폭로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에 대한 대답을 존 버거는 가장 중요하게,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존 버거의 글이 매력적인 이유는 하나는, 사람과 사랑의 힘을 믿는 공동체의 선지자라는 점이다. 그의 모든 글은 사람에 대한 애정과 사랑에 대한 숭고함이 들어나는데, 이 책은 전자에 비중을 맞춘다. 평범한 민중들이 제국의 폭력으로부터 희생당해왔던 역사를, 희생시켰던 이들에 대한 분노를 담아낸다. 그래서 이라크의 비극을, 팔레스타인의 억압의 울분을 그들의 편에서 담아낸다. 특히 하마스가 집권 하기 이전, 제2차 인티파다와 2006년 하마스 집권 이전을 다룬 글에서는 어째서 팔레스타인들이 무슬림 전사가 되었는지를 추적하기도 하고, 다른 글에서는 추적자로 불리는 베두인 이스라엘군을 찍는 사진사에 대해 다루기도 한다. 작가의 창의성이, 인류애를 만나 쓰여진 이 글은 비팔레스타인 사람이 팔레스타인의 대의에 대해 가장 문학적으로 표현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팔레스타인의 비극이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시금 이 글이 읽혀 부디금 저 중동의 비극을 우리의 비극으로, '모든 것을 소중히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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