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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사유의 향연

제프 다이어 엮음, 『존 버거 사진의 이해』, 열화당, 2008, 김현우

by 꿈꾸는 곰돌이

제프 다이어 엮음, 『존 버거 사진의 이해』, 열화당, 2008, 김현우역


이 책의 제목을 달리 말하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존 버거 무기의 이해’. 다소 과격해보이겠지만, 존 버거는 표제에도 들어간 <사진의 이해>라는 자신의 사진론에 대한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따라서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사진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에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무기, 그리고 우리를 향하고 있는 무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글은 존 버가 기획한 책이 아니다. 제프 다이어라는 편집자가 존 버거의 글들을 엮어 쓴 책이다. 어떤 글들은 신문 칼럼으로, 이미 출간된 책의 일부도 있지만, 대략 사진에 대한 존 버거의 글이다. 시기도 60년대부터 2000년대 까지 다양하고, 주제도 베트남전부터, 숲, 수전 손택, 앙리 카르티에 베르그송, 팔레스타인의 비극까지 다양하다. 그렇지만 모든 글이 써진 원칙은, 제프 다이어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이 작품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사회적 권리를 알고, 주장할 수 있게 도움 혹은 용기를 주는가?" 라고 할 수 있다. 즉, 사진 이미지의 급진적, 민중적 정치화에 대한 사유이다.

외곽에서 머물지만 정확한 기술

존 버거는 미술평론가이고, 화가이자 사회비평가, 소설가이기도 하다. 이를 모두 묶어주는 말은 작가이다. 『 다른 방식으로 보기』 , 『초상들』처럼 탁월한 미술 및 그림에 대한 글을 남긴 존 버거이지만, 이 글이 그렇다고 해서 사진에 대한 학술적 논의를 다루고 있지 않다. 한 마디로, 사진가나 사진학의 관점이 아닌 미학자로, 작가로서의 시선으로 쓴 사진이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존 버거의 다른 글들에 비해 한 단계 정도 쉽고, 크게 무리 없이 읽을만 하다. 다소 아쉬운 점은 편집의 구성이다. 기사에 기고한 대중적인 글과 존 버거 특유의 창의력이 돋보인 에세이, 심지어 편지글과 비평까지 섞여 있어 책으로 보기에는 전체적인 유기성이 떨어진다.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을 불러낸다.

존 버거는 말한다. “사진은 상황에서 실행되는 인간의 선택에 대한 증거다. 사진은 이 특정한 사건, 혹은 보이는 이 특정한 대상이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사진가의 선택의 결과다. ” 이러한 입장은 그의 미학적, 사진론에 대한 시원은 발터 벤야민의 사진론이기도 하다. 사건에 대한 메시지를, 사진가의 능력으로 담아내는 사진이야말로 새로운 예술이자, 급진적 잠재성이 담겨있는 매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잠재력의 기능 중 하나가 바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을 불러내는 것에 있다. 존 버거는 한 장의 사진은 보이는 것을 보여주는 한편 보이지 않는 것을 불러낸다고 말한다. 이것은 마치 윌리엄 블레이크의 한 시구를 떠올리게 하는데, 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말로 존 버거는 사진가의 특권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기술복제시대는 사진가도 그 고귀한 시인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얼음에서 태양을 떠올리고, 슬픔에서 비극을 떠올리고, 미소에서 즐거움을 떠올리고, 어떤 몸에서 사랑을 떠올리고, 우승한 경주마에서 그 말이 달려온 경주를 떠올린다.”라던 그의 통찰은 사진의 시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철저한 반제국주의자 존 버거

첫 번째 수록된 글은 체 게바라의 최후를 담은 사진에 대한 글이다. 제목부터가 ‘제국주의의 이미지’인 이 글은 투사 체 게바라를 보여주면서 제국주의에 굴복하지 않는 그의 최후를 조명한다. 그 외에도 <고통의 이해>라는 글에서는 어떻게 주류 언론이 고통이 사진을 포르노화, 혹은 개인의 도덕 죄책감으로 환원시키는지를 다룬다. 특히 이 글은 오늘날에도 시의성 있는 글이라 꼭 일독을 권한다. 마지막에 실린 글인 <아흘람 시블린의 정찰병> 역시 충분히 흥미롭다.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배신자라고 할 수 있는 베두인 출신 이스라엘군 추격병을 다룬 사진가에 대한 글로, 복잡한 팔레스타인 및 베두인 문제를 다루면서도 원치적으로 팔레스타인 대의에 대한 명확한 지지가 돋보인다. 사실 이 글은 『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에도 실린 글인데, 프란츠 파농의 글로 마무리하며 이 글은 다시금 봐도 명작이다. 오직 존 버거만이 할 수 있는 기술인 것 같다.

이 외에도 애정이 가는 글이 있다면, 존 버거 스스로 자신이 쓴 최고의 책으로 뽑은 『제7의 인간』을 함께 작업한 사진가 장 모르에 대한 글 「 장 모르: 초상화를 위한 스케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존 버거가 장 모르의 초상화를 그리고, 장 모르는 수시로 존 버거를 찍는다. 두 사람의 우정이 느껴지며, 초상화에 대한 사유가 드러난다. “오해를 받은 것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무릅쓰고 말하자면, 초상화를 그리는 일은 섹스와 비슷하다.” (p.172)라는 기교 넘치는 문장이 인상 깊다.

여기에 실린 모든 글을 이해하기란 나 정도의 교양 수준으로는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건질 글들이 많다. 조금 더 미학과 사진에 대한 이론이 풍부했다면 이 글들을 조금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스스로가 참 아쉽다. ‘사진의 이해’라는 제목에 매혹되어 학술적인 사진론을 기대했다면 아쉬울 수는 있지만, 존 버거를 추종하는( 물론 그는 이 표현을 싫어할 것 같다) 모두에게 멋진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존 버거도, 사진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25.01.21 재즈가 흐르던 재즈바와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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