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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연가의 애정 어린 산문

존 버거 『스모크』 열화당, 2016, 김현우역

by 꿈꾸는 곰돌이

애연가의 애정 어린 산문

-존 버거 『스모크』 열화당, 2016, 김현우역

스무 살 때 아무런 철학 없이 친구를 따라 흡연을 시작했다. 영화 <영웅본색> 속 마크가 지폐에 불을 붙여 말보루 레드를 폈던 것처럼, 첫 흡연은 홍대입구에서 말보루에 천원짜리 지폐를 태워 담배를 폈다. 별로 멋은 없었지만 스무 살 때 그것이 낭만이요, 멋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너무 독해 흔히 말하는 ‘겉담’으로 했다. 이후 보헴 시가 시리즈를 피었다. 리브레와 카리브를 번갈아서 피었다. 그렇다고 매일 피거나 없으면 안 될 정도로 피지는 않았다. 같이 담배 피는 사람이 있으면 뺏어서 피거나, 아주 가끔 담배를 샀다. 일 년에 두 갑 정도 피었을까? 피고 싶다는 생각이 거의 안 들었다. 그러다 11월 다시 담배를 피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들었다. 한 분의 영향이었다. 그분은 말보루 레드를 사랑하는 애연가였다. 그 당시에는 피지 않았다. 그러다 계엄 전날 그분이 추천한 <존 버거의 사계>를 봤다. 거기서 존 버거는 90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맛있게 담배를 폈다. 류승범, 최민식, 장국영, 주윤발 등 담배를 맛있게 피기로 유명한 배우들의 행위가 스투디움이라면, 존 버거의 담배는 푼크툽이다. 형용할 수 없는 숭고함이 넘쳤다. 그리고 다음 날 계엄 정국이 시작되었고, 다시 흡연을 재개했다. 계엄 당일 불안함에 편의점에 가서 담배를 사서 흡연하며 뉴스를 지켜보았다. 가장 약한 보햄 쿠바나 샷으로 기억하는데, 거의 반 갑은 핀 것 같다. 어느덧 지금 보니 그 이후로 10갑은 핀 것 같다. 일종의 약이다. 안 피었으면 정신과에 가지 않았을까? 내게 카페인은 영양제고, 알콜과 니코틴은 아편인 것 같다. 몸에야 나쁘겠지만 인민의 아편을 믿지 않는 내게는, 타락한 저 두 성분이 세속의 아편인 것 같다. 근데 이 사회에서는 담배를 악의 축으로 보는 것 같다. 담배야 육체의 측면에서 백해무익하다 해도 정말 나쁜 것만 가득한 것일까?

서론이 길었다. 존 버거의 단문에, 셀축 데미렐의 그림으로 그려진 『스모크』는 악마화 되는 담배를 옹호하는 한편의 동화 같은 산문이다. 글이 적고 그림에 의존하는 책이라 동화 같다고 하지만 존 버거의 짤막한 잡문에 가깝다. 옛날에는 심지어 어린아이까지도, 남녀노소 즐겼던 담배가 어느 순간부터 악마화되었다. 이에 한탄하는 애연가의 글에는 담배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임을 보여준다. 담배가 있는 곳에는 대화가 있고, 거기에는 또 정치적인 대화가 있었다. 계급에 대한 대화가 그렇다. 일산화탄소를 내뿜는다고 하나, 훨씬 더 많은 일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폭스바겐의 일산화탄소 배출에는 별 다른 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존 버거는 노동 계급을 애정하는 작가로서, 애연가로서 담배를 혐오하지 않는다. 단지 담배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며, 추방자가 된 애연가들의 서러움을 기술한다.

책을 덮으며 담배를 다시 문다. 깊게 한 번 빨아들이고, 존 버거의 흡연을 생각해본다. 꿈에서라도 그와 함께 맞담을 하고 싶다. 본 적도 없지만, 그가 너무 보고 싶다. 담배 연기를 타고 하늘에 올라가는 꿈을 꾸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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