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랑시에르, 『무지한 스승』 , 궁리, 2016, 양창렬역
지적 해방을 위하여
-자크 랑시에르, 『무지한 스승』 , 궁리, 2016, 양창렬역
먼저 말하자면, 나는 롤랑 바르트 이후 프랑스 철학자 중 와닿는 사람도, 이해한 사람도 거의 없다. 크리스하먼의 <철학과 혁명>의 영향을 받아 포스트구조주의뿐만 아니라 이것을 비판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 모두 비판적으로 본다. 그래서 알튀세르의 유산을 계승한 이들의 책을 굳이 읽어야 하나 싶었다. 알랭 바디우, 에티엔 발리바르, 그리고 자크 랑시에르 모두 철학사 책에서 잠깐 훑고 지나가는 것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알랭 바디우의 대중 강연록과 에세이는 좋아한다) 그로다 진은영 시인의 <감각적인 것의 재분배>를 읽고 랑시에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의 사상적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롤레타리아의 밤』을 읽었다. 읽기는 쉬웠지만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경험의 향연. 그래서 조금 더 대중적이고 쉬운 그의 다른 책인 『무지한 스승』을 읽고 그 책을 읽고자 우선 이 책을 펼쳤다.
자크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은 기존의 교육 체계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스승과 학생"의 관계를 정면으로 뒤집으며, 교육에서의 위계와 권위를 해체하려고 한다. 랑시에르가 제시하는 "무지한 스승"이라는 개념은 얼핏 듣기엔 모순처럼 보이지만, 책을 읽다 보면 그의 주장이 참으로 본질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책의 중심에는 18세기 교육 철학자 조제프 자코토의 일화가 자리 잡고 있다. 자코토는 프랑스 혁명 당시 평등의 영향을 받아 “지적 평등”을 믿는다. 그래서 프랑스어를 모르는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가르침 없이 프랑스어 텍스트를 읽게 하며, 스승이 없어도 학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했다. 그는 학생들이 지식 자체를 스스로 터득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고, 실제로 그들의 학습 결과는 이를 뒷받침했다. 이는 전통적인 스승의 역할에 의문을 던지며, 배움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인간의 보편적 능력임을 보여주려는 실험이었다.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랑시에르는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는 명제를 철학적으로 확장한다. 그가 말하는 평등이란 단순히 사회적 지위를 넘어, 인간의 지적 능력에 대한 평등이다. 그는 모든 인간이 사유하고 배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우리가 그러한 잠재력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현대 교육에서 학생은 종종 수동적인 존재로 자리 잡는다. 스승은 "알고 있는 사람"으로, 학생은 "모르기 때문에 채워져야 할 사람"으로 구분되며, 이 과정에서 지식은 스승의 권력을 유지하는 도구가 될 때가 많다. 랑시에르는 이 점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스승과 학생 사이의 기존 관계를 해체하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나는 얼마나 자주 누군가의 무지를 함부로 단정하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과시하려 했는가? 스승이 되어야 한다는 명목 아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일종의 권위를 휘둘렀던 적은 없었는가? 이 책은 단지 교육 현장에서의 태도를 넘어 내가 살아가는 방식과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까지 반성하게 만든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랑시에르가 "지적 해방"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할 때다. 그는 교육의 목적이 단순히 가르치는 행위가 아니라, 학습자가 스스로 사고하고 세상을 탐구하는 힘을 키우는 데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적 해방이란 더 많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다. 스승은 학생에게 답을 제공하는 주체가 아니라, 학생 스스로 답을 발견하도록 돕는 촉매제일 뿐이다.
현대의 교육 현실을 떠올리면, 이 철학이 얼마나 도전적인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시험과 점수로 지식의 정도를 평가하고, 교육이란 어떤 정해진 틀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랑시에르는 이러한 방식이 인간의 지적 능력을 억압한다고 본다. 교육은 지식을 주입하는 행위가 아니라, 배우는 이가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도록 돕는 여정이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교육이 본래 가지는 민주적 가능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덮고 난 뒤, 나는 내가 교육에 대해 얼마나 좁은 시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무언가를 가르치는 일은 내가 가졌던 지식과 권위를 전달하는 행위가 아니라, 상대방의 잠재력을 믿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식은 스승의 "소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접근 가능한 공공의 것이다. 거기에 담긴 민주성과 평등은 단지 배움을 넘어서 우리 사회 전반에 필요한 태도이기도 하다.
자크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은 단순히 교육 철학서로 분류되기엔 그 메시지가 너무나 넓고 깊다. 이 책은 우리가 당연시하는 권위와 위계, 그리고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특히 나처럼 "가르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 책은 불편하지만 그만큼 귀중한 도전을 던진다. 결국 교육이란 "이끄는" 일이 아니라, "함께 발견하는" 일이 아닐까? 랑시에르는 이를 통해 지식의 진정한 민주화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있다고 느끼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반드시 한 번쯤 읽혀야 할 필독서다.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며, 누구나 배울 수 있다. 그 평등에 대한 신뢰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교육과 삶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지적 평등으로부터 사회 평등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갖고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