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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을 여는 문화비평의 걸작

이택광 『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 , 연두, 2023 프로필

by 꿈꾸는 곰돌이

세 번째 출간된 문화비평의 걸작, 『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

한국 사회에 진보, 아니 정확히 말해 좌파 지식인이라 할 만한 사람은 누가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에 있던 ‘노유진’이 생각난다. 당시 정의당 팟캐스트로 모인 노회찬, 유시민, 진중권은 한국을 대표하는 진보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들을 진보 지식인이라고 부르기에는 힘들 것 같다. 진중권은 조국 사태 이후 종편이 사랑하고, 한동훈과 소통하는 어용 진보 지식인이 되었다. 진중권과 결별한 유시민 역시 정의당을 떠나 사실상 민주당 관제 지식인 같은 행보를 보인다. 애초에 좋게 봐도 진보라고 봐도, 개혁을 배반한 친노의 패잔병이라 좌파는 아니었다. 다들 알겠지만 노회찬은 세상을 떴다. 그 외에도 강준만처럼 전향한 이도 있고, 조용히 독서일기와 칼럼으로 독자와 소통하는 장정일 같은 수도승 같은 지식인도 있다. 그리고 비교적 대중에게는 덜 알려져있지만 학술적으로 한국에 슬라예보 지젝의 이론을 들여오고, 보수주의에 맞선 급진적인 문화비평을 널리 알린 인문 좌파가 있다면, 바로 이택광 교수를 말할 수 있다.

이택광은 노유진만큼의 대중적 인지도를 자랑하지 않지만, 책을 통해 대중에게 서구의 좌파 이론을 소개하고, 이 방법론을 토대로 본인의 독창적인 문화 비평을 진행한다. 그의 글은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프로이트-라캉-지젝을 큰 두 축으로 하여 이론적으로도 방대하고도, 사회에 대해 발본적인 시선으로 문화를 비평한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학술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사회이론의 주요 개념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하고, 특히 마르크스와라캉에 대해서는 보다 깊은 이해를 요구한다. 이런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나처럼 세계 지성사의 변방에서 급진적 사상과 이론에 갈증을 느끼는 지식인 유망주에게는 고마운 스승이다.

『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는 그의 대표적인 저작이자, 두 번이나 개정되어 나온 문화 비평서이다. 2002년에 초반이 나왔지만, 이론서도 아닌 비평서가 계속 재간되어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텍스트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증거이다. 개정2판 서문에서 밝히듯, ‘이 세계의 야만성을 무기력하게 관망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 책에서 도모하고자 했던 글쓰기를 통한 참여라는 내 기획은 실패로 귀결한 것’이라고 털어놓는다. 2012년, 2002년에 쓰여진 서문에 비해 전체적으로 비관적이고, 노쇠한 느낌이 든다. (온건과는 또 다르다) 지금 와서 보면 90년대 말과 21세기 초반의 담론들과 현상이 위주로 다루어 다소 시의성은 부족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20여년 후에 저자의 시선은 정확했으며, 여전히 그가 파악했던 한국 문화의 음란함-전반의 보수주의 이데올로기는 잔존한다. 오히려 저자 말대로 자유주의가 정점에 달한 2002년보다 보수 세력이 단단해진 것 같다. 새로운 보수 이데올로기가 등장했고, 전체적으로 우경화된 것 같다. 그러니 다소 비관주의에 빠진 것이 아닐까? 이는 저자와 같은 좌파 지식인들의 공통적인 문제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서문에서 밝힌 문화비평의 시선은 여전히 유효하고, 견고하기에 이 책으로 사유의 깊이를 넓혔으면 하는 바람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진정한 문화비평의 몫으로 ‘문화 형식의 보수성을 구성하는 구조를 적절하게 드러내는 것’(p.20)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담론을 창출하거나 마르크스의 부활을 시도하기보다 ‘한국 문화를 구성하는 담론들을 징후적으로 읽어냄으로써 이 담론의 섬들을 떠받치는 대륙붕의 지형도를 미력하나마 그려내 새로운 문화정치학의 가능성을 탐색해보려 했을 뿐(p.21)’이라고 한다. 프롤로그와 1장에서 다루는 핵심은 그간 스탈린주의자로, 혹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이론가로 알려진 루카치에 대한 변호라 할 수 있다. 소비사회가 노동과 기계를 은폐하는 방식으로 서사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저자는 긍정, 혹은 부정으로만 판단된 문화적 현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한국 문화의 지도를 그리려고 한다. 그렇기 위해 리얼리즘에 대한 정의부터 다시 시작한다. 저자와 저자가 주로 인용한 루카치 연구가 김경식은 루카치를 스탈린주의와 유사 리얼리즘으로부터 구해내려고 한다. 루카치의 총체성은 헤겔에서 비롯했지만, ‘단일한 그 자체의 매끄러움으로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라캉이 말했던 것처럼 일종의 부분 부분에 대한 인식들이 울퉁불퉁한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어지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단지 리얼리티를 현실에 대한 반영이라고 보지 않으며, (이것은 자연주의와 모더니즘에 가깝다) 오히려 리얼리즘론에서 사물을 사물 그대로 인식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p.86) 물화되지 않은 인식이 자본주의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근대성이 낳은 재현의 위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날 리얼리즘의 문제는 그 개념 자체의 오류가 아니라, 리얼리즘 자체가 진정한 적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택광의 문화비평 역시 물화를 키워드로 하여 본다. 그의 주요 문화산업은 문화 생산의 주체가 아니라, 이윤을 추구한다고 본다. 이를 통해 문화를 통해 경제를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은 포스트마르크스주의자들이 지껄이는 기계론적 마르크스주의의 ‘일차적 경제환원론’과는 다르면서도, 지나친 경제와 문화의 단절을 피한다. 이것이 문화비평에서 유물론의 유용함인 것 같다. 양극을 피해 마르크스 시대와는 조금 다른 시대, 특히 후기 자본주의라고 불리는 시대의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관점을 토대로 오우삼의 할리웃 진출과 90년대 이후 조금 변한 제임스 본드의 흥행을 읽어내기도 하고, 인연이나 숙명을 강조하는 멜로드라마에서 보수성을 찾기도 한다. 이렇게 장르의 구조를 통해 ‘현실 모순이 어떻게 봉합되고 은폐되는지를 살피는 심각한 흥미진진함에 빠져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문화비평의 마력이자, 문화비평만이 갖는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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