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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곰돌이 Sep 13. 2023

다중위기 시대에서 역사철학 테제

메시아는 프롤레탈리아트의 계급의식이다


1.2020년대는 다중 위기의 시대이다. 인류 전체를 공멸시킬 수도 있는 여러 위기가 복합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아직 끝났다고 할 수 없는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의 시대, 기후위기와 이에서 비롯되는 재난의 시대, 다시금 드리워지는 파시즘 위협의 시대, 그리고 미중갈등과 핵 위협의 시대이다. 코로나로 개시된 2020년대는 인류 전체가 전염병의 위기를 겪었다.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대표되는 제국주의 전쟁이 열렸고, 유럽에서는 파시스트 총리가 당선되었다. 슬프게도 아직 본격적인 위기는 시작되지 않았다. 인류에게 가장 현실적인 위기는 분명 기후 위기이다. 인류를 공멸시킬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있는 마지노선을 넘기 일보 직전이다. 이미 넘었을 수도 있고, 정말로 몇 년도 남지 않았다. 더 이상 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심화될 기후위기는 인류를 공멸시킬 것이다. 다중 위기의 시대는 고향상실의 시대이다. 세계는 황폐해지고 있고, 신들은 떠나버렸으며, 대지는 파괴되고, 인간들은 인격을 상실한 채 대중의 일원으로 전략해버린 시대이다. 다중 위기의 시대, 인류는 야만이냐 혁명이냐의 외나무 길에 놓여있다.       


2. 분명 역사가 시대정신을 통해 진보한다던 헤겔주의의 역사주의는 틀렸다. 그보다 역사는 과연 진보해왔는가라는 의심에도 도전해야만 한다. 역사는 계급투쟁을 통해 움직인다. 그러나 과연 움직이는 것을 진보라고 할 수 있나? 인류는 역사를 움직이는 대가로 수많은 희생,과 자연의 파괴를 야기했다. 생산력과 이성의 발전의 어두운 저편에는 다중위기가 드리워졌고, 이제는 움직이의 대가를 앞두고 있다. 19세기부터 분명 역사는 폭주했다. 체제로 보자면 자본주의는 역사를 폭주시켰다. 이전까지 폭주한 기관차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착각한다. 문제는 선로가 깔려있지 않거나, 마적때를 만나거나, 절벽으로 가고 있는 다중위기 속 열차 자체가 파괴될 위기라는 점이다.      


3. 다중 위기 시대의 유일한 해법은 혁명이다. 체제 자체를 바꿔야만 다중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혁명이 세계사의 기관차라고 봤다. 이 말은 다중위기의 시대에 도저히 성립될 수 없다. 벤야민의 역사철학 테제의 메모에 적힌 말대로, 혁명은 폭주하는 기관차에 비상 브레이크를 거는 일이다.      


4. 계급분화라는 동전을 넣고, 문명이라는 버튼을 누르며 시작된 인류의 문명사는 이제 1부 엔딩이 다가왔다. 엔딩은 오직 인류 해방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엔딩이 종말일 수도 있다. 인류사는 게임이 아니다. 공멸한다면 리플레이는 불가능하다. 다중 위기의 시대는 공멸 위기의 시대이다. 공멸을 피해 인류 문명사의 1부를 끝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 능동적으로 혁명에 참여해야만 한다. 능동성은 비관으로부터 시작된다. 미래에 대한 무조건적인 낙관-메시아가 내려온다는 거짓된 믿음은 능동적 참여에 걸리돌이 된다. 그러나 비관하더라도, 좌절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좌절하지 않도록, 이미 메시아가 내려왔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메시아는 과거에 이미 내려왔으며, 그 메시아의 이름은 프롤레탈리아트의 계급의식이다. 루카치가 말했듯, 프롤레탈리아트는 진정한 혁명 계급으로서,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계급 해방 과정에서 인류를 해방하게 된다. 프롤레탈리아에게 오래전 내려온 메시아는 바로 계급의식이다.  우리는 미래를 보기에 앞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야 한다. 시간은 구원의 기억이다. 과거를 분석해 이미 노동계급에게 잠재된 계급의식을 깨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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