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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민중 문학의 최정점, 《최후의 고백》

by 꿈꾸는 곰돌이

최후의 고백



나의 몸, 나의 피를 그대에게 줍니다

나의 살, 나의 뼈를

그대에게 줍니다

흐트러진 내 눈물의 시야를

갈기갈기 찢어진 내 꿈의 잔해를

나는 그대에게 보여줍니다

그대는 나의 혁명이어야 합니다

나의 절망이 그대의 몸 속에서

피가 되고살이 되고

내가 그대의 혁명이었듯이

그대 또한 나의 혁명이어야 합니다

한번쯤 이루어버린 사랑의 업적을

업적의 시든 시체를 나는 그대에게 줍니다 몸부림과 불끈불끈 솟아오른 핏줄 근육의 한많은 몸뚱아리를 그대에게 줍니다 일용의 양식으로 걱정거리로 나는 항상 그대의 곁, 그대의 속에서 용솟음칠 것입니다. 차마 이루지 못한 꿈 그대의 가슴도 갈가리 젖길 것입니다

나는 그대의 가슴에 못을 박습니다

지워지지 않는

지울 수 없는

그날의 그 아픔 그대로 나는 그대 곁에 있을 것입니다. 아주 초라한 모습으로

그대가 너무 춥지나 않게

그대가 너무 지치지나 않게

그대가 너무

초라하지나 않게

나는 항상 그대의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을 것입니다



민중 신학의 관점에서 본 김정환의 「최후의 고백」



김정환의 시 「최후의 고백」은 1980년대 한국 사회의 격동 속에서 태어난, 민중의 고통과 그들의 갈망을 담은 깊은 서사시라고 할 수 있다. 시대적 맥락을 먼저 살펴보면, 1980년대는 군사독재와 억압의 구조 아래 한국 민중이 신음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 민중의 삶은 고난과 희생으로 점철되어 있었으며, 신학도 이러한 삶에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동시에 사회 운동의 시대였다. 당시 민중 신학은 억압받는 자, 고통받는 자와 연대하며 신학을 정치적·사회적 해방의 도구로 삼으려는 시도를 담고 있었다. 이런 면에서 김정환의 「최후의 고백」은 민중 신학적인 사유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 자기희생과 연대: 민중의 고난과 예수의 형상화 ​

시의 화자는 자신의 "몸, 피, 살, 뼈" 등 스스로의 모든 것을 누군가(민중에게? 혹은 사랑하는 이에게?)에게 기꺼이 내어주겠다고 고백한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서 속 예수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예수는 자신의 몸과 피를 떼어 제자들에게 내어주며 세상의 죄를 구하고, 민중의 해방을 위하여 기꺼이 십자가를 짊어진 존재이다. 화자 역시 자신의 온 삶과 존재를 ‘그대’에게 주겠다는 선언과 함께 자신을 희생의 제단 위로 올리고 있다.



"흐트러진 내 눈물의 시야를", "갈기갈기 찢어진 내 꿈의 잔해를"이라는 구절은 개인적인 차원의 상처처럼 보이지만, 이는 더 큰 맥락에서 민중의 고통과 좌절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민중 신학은 민중을 하나의 추상적 개념이 아닌, 살아있는 고난과 좌절의 현존으로 본다. 따라서 이 구절은 당시 억압의 현실 속에서 갈기갈기 찢겼던 한국 민중의 삶을 그린 동시에, 그 고난을 껴안는 예수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마찬가지로, "나의 절망이 그대의 몸 속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고"라는 구절은 민중의 고난이 단순히 고난으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변화를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는 민중 신학의 핵심적인 사유인 희망의 신학, 곧 고난을 통해 구원과 해방을 포착하는 변증법적 사유를 시로 표현한다.



2. 혁명과 사랑: 민중 신학적 실천의 요청 ​

시의 반복되는 명제는 그대를 “나의 혁명이어야” 한다고 역설한다는 점에 있다. 이 혁명은 단순한 정치·사회적 변화를 넘어 민중 신학에서 강조된 '사랑의 실천으로서의 혁명'을 의미한다. 민중 신학은 단지 제도적 변혁을 요청하는 신학이 아니라 이 땅에서의 사랑과 정의를 구현하는 데 초점을 둔다. 김정환은 이를 "사랑의 업적" 혹은 "사랑의 시체"라는 역설적 표현으로 나타낸다.



화자는 이미 이룬 사랑의 흔적(업적)을 상대방(민중이라 해도 좋다)에게 “시든 시체”로 내어주겠다고 한다. 이것은 사랑이나 혁명이 단번에 완료될 수 없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민중 신학도 예수의 고난을 단번의 업적이 아니라 끊임없이 지속되는 희생과 사랑, 그리고 반복적 실천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김정환의 시에서 말하는 '혁명'은 한순간의 폭발적 변화를 뜻하기보다, 삶 전체를 송두리째 던져 반복적으로 민중과 함께하는 사랑의 실천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3. 고난과 영속적 연대: 부활의 약속 ​

그대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지울 수 없는" 못을 박겠다는 장면은 고난의 흔적을 남기겠다는 선언이다. 이는 화자가 선언하는 사랑과 혁명이 단순히 희생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그 흔적이 남아 이후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것을 암시한다. 민중 신학에서 십자가를 바라보는 관점과도 연관된다. 십자가는 단순한 고난의 상징이 아니라, 부활과 해방의 약속을 내포한다.



시에서 화자는 "항상 그대의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을 것"이라는 다짐을 남긴다. 이 다짐은 화자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지속적인 존재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민중 신학은 민중의 희생이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끝없이 이어져 새로운 부활과 변혁으로 이어질 것을 강조한다. 김정환의 시에서 드러난 ‘내재적 존재로서의 고난’은 민중 신학에서 미래를 향한 희망과 영원한 해방의 약속을 포착하는 핵심이다.



4. 민중의 초라한 사랑과 자긍심 ​

화자는 마지막으로 그대가 "너무 초라하지 않게" 자신이 곁에 있겠다고 말한다. 이는 억압받고 상처받은 민중들의 정서를 어루만지며, 희생 속에서도 결코 스스로를 버리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김정환의 민중적 사랑은 처절한 자기희생이지만, 동시에 초라한 민중의 삶 속에서도 혁명적 의지와 연대를 끊임없이 요청하는 따뜻한 목소리이다.



사랑과 혁명을 잇는 고백​

김정환의 「최후의 고백」은 개인적 희생과 사회적 혁명,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민중이 함께하는 사랑으로의 부활을 염원하는 예언서와도 같다. 이 시는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그 고통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삶의 혁명적 실천을 부추긴다. 민중 신학은 예수의 고난과 삶이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민중의 삶 속에서 부활하며 실천되기를 요구한다.

윤석열의 계엄이라는 시대, 예수의 재림은 전광훈과 손현보의 광장이 아닌 투쟁하는 민중의 편에서 설 것이다. 민중의 동지, 예수는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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