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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영화의 두 축: 홍콩 느와르와 왕가위

by 꿈꾸는 곰돌이

홍콩 영화의 두 축: 홍콩 느와르와 왕가위

– 실존적 불안과 문제적 개인의 초상



홍콩 영화는 1980년대 성룡의 코믹 액션 시대 이후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며, 두 개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하나는 의리와 형제애를 중심으로 비극적인 영웅 서사를 그려낸 홍콩 느와르이고,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적 소외 속에서 방황하는 청춘을 미학적으로 연출한 왕가위 영화이다. 두 흐름 모두 홍콩의 중국 반환 전 사회가 지닌 불안을 서사적으로 담아내지만, 이 문제적 개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서사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크게 다르다.


1. 홍콩 느와르: 현대 협객, 의리와 비극의 미학


홍콩 느와르는 단순한 장르적 형식을 넘어 홍콩 영화의 정체성과 미학을 결정짓는 상징이 되었다. 그 중심에는 1986년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이 자리하고 있다. 이 영화는 전통 무협지의 정신을 현대 범죄 영화에 이식함으로써 홍콩 느와르 장르의 원형을 구축했다.

홍콩 느와르는 서구 느와르와는 분명히 다른 흐름을 보여준다. 서구 느와르는 문제적 개인을 통해 욕망과 복수, 사회적 윤리를 탐구하며 비극과 반성의 서사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홍콩 느와르는 자신의 목숨을 걸어 의리를 지키고 자본의 유혹에 맞서는 형제와 친구 간의 연대를 중심축으로 더 끈끈하고 인간적인 비극을 그려낸다. 형제애와 협객적 사랑은 홍콩 느와르 서사의 기둥이며, 고전적 영웅 서사의 현대적 변주로 자리 잡는다.

예컨대 <영웅본색>, <강호정>, <용호풍운> 같은 작품들은 친구와 형제를 위해 싸우고 비극적으로 퇴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홍콩 느와르 특유의 정서를 관객에게 던진다. 또한 <첩혈쌍웅>, <천장지구>, <열혈남아>는 의리와 사랑이라는 두 개의 가치를 모두 지키려는 인물들의 비극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한다.

그중에서도 오우삼의 <첩혈쌍웅>은 홍콩 느와르가 정점을 찍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영화는 기사도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며 돈과 폭력의 세계에서도 인간적 가치를 지켜내려는 킬러 소장(주윤발)의 영웅적 여정을 보여준다. 소장과 적이었던 경찰 이응은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며 연대에 도달하고, 이를 통해 관객은 도덕적 승리와 비극적 희생이 뒤엉킨 서사를 경험하게 된다. "돈에는 굴복하지 않는 남성적 의리"는 오우삼 영화의 핵심이자 홍콩 느와르를 관통하는 메시지이다.


2. 왕가위: 댄디한 청춘, 존재의 공허를 방황하다


왕가위의 첫 작품 <열혈남아>는 홍콩 느와르의 서사 구조를 따랐지만, 이후 그는 스스로 홍콩 느와르라는 틀을 깨며 새로운 미학적 문법을 만들어갔다. 왕가위 영화의 진정한 시작점은 두 번째 작품 <아비정전>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왕가위 영화 속 문제적 개인은 의리나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협객적 인물이 아니다. 그들은 자본주의적 소외 속에서 방황하고, 내면의 공허를 존재의 가벼움으로 덮으려 한다. <아비정전>의 아비(장국영)는 느와르 캐릭터의 단면을 갖추고 있지만, 전통적 협객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의리에 목숨을 걸지도,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희생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는 퇴폐적 매력을 지닌 카사노바로서 순간의 쾌락과 자유를 추구한다. 그의 존재는 의리를 강요하는 사회와의 불화 속에서 개인의 고독과 허무를 대변한다.

왕가위 영화의 세계는 이러한 방황을 기반으로 확장된다. <중경삼림>, <타락천사>, <해피투게더> 등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내면의 상실감을 끌어안으며 조용히 떠돌아다닌다. 장소는 좁은 공간과 복잡한 거리로 한정되고, 인물들은 흐릿한 조명과 몽환적인 음악 속에 서 있다. 왕가위 영화의 서사와 미학은 이처럼 라틴풍 재즈, 강렬한 색채, 초점이 흐릿한 신비로운 카메라 워크 속에서 완성된다. 물론, 왕가위의 영화는 단순히 방황하는 청춘만을 그린 것이 아니다. 그의 문제적 개인들은 물화되는 자본주의 속에서 스스로를 규정하려는 존재들이다. 사랑, 관계, 자유 같은 가벼운 가치는 그 자체로 진지한 의미를 품고 있으며, 이는 오늘날의 관객들에게 더없이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3. 첩혈쌍웅과 아비정전: 장르적 정점과 미학적 원형


홍콩 느와르와 왕가위 영화의 정점을 각각 상징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첩혈쌍웅>과 <아비정전>이다. 홍콩 느와르는 <첩혈쌍웅>에서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장과 이응의 관계는 전통적 협객 서사의 현대적 구현이며, 돈에 물들지 않는 인간적 순수는 비극적 서사와 함께 홍콩 느와르의 절정을 이룬다. 왕가위 영화의 정점으로는 여러 작품이 거론되지만, 가장 중요한 원형은 <아비정전>이다. 이 작품은 서사적으로 미완에 가까우며, 2부 제작이 무산되며 급작스럽게 종료되었지만, 이후 왕가위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변주되는 미학과 서사적 주제가 이 영화에서 이미 제시되었다. 아울러 장국영은 왕가위의 페르소나로 자리 잡으며 왕가위 영화가 예술적으로 완성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4. 시대와 개인의 서사를 넘어선 홍콩 영화


홍콩 느와르와 왕가위 영화는 단순한 장르적 형식이 아니라, 1980~90년대 홍콩이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발생한 실존적 문제를 담아낸 독특한 텍스트이다. 오우삼은 의리와 형제애라는 핵심 가치를 통해 비극적 협객의 서사를 완성했고, 왕가위는 방황하는 현대인의 초상을 통해 개인적 서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두 세계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홍콩 반환 전의 불안과 고독을 반영하면서도, 시대를 뛰어넘는 미학적 감동을 남기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홍콩 영화는 홍콩이라는 지리적 한계를 넘어서,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고유한 작품군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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