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마초는 가능한가?
-페미니스트가 혐오하는 남성성의 구원을 위하여
마초라는 단어는 흔히 전통적 남성성의 극치, 즉 호전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때로는 거칠고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이미지와 연결된다. 그러니 진보적 마초라는 단어 자체가 페미니즘이 진보를 자처하는 오늘날의 현상과는 괴리되어 있다. 물론, 전통적으로 마초 캐릭터는 종종 영화나 문학에서 폭력과 가부장제, 때로는 소유적 사랑을 표현하는 상징으로 사용돼 왔다. 하지만 우리가 마초라는 개념을 "진보적으로" 변주한다면 어떨까? 이는 불가능한 모순이 아니라, 오히려 진취적 성질과 결합해 새로운 형태의 정의와 연대를 나눌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진보적 마초는 고립된 개인의 힘에만 몰입하지 않고, 도리어 약자의 편에서 함께 싸우며 연대를 이끄는 존재다. 이는 '영웅본색'의 마크(주윤발역)를 통해 가장 잘 드러난다.
마초의 껍질 속 기사도
영화 '영웅본색'의 마크는 전형적인 "상남자"다. 그는 파렴치한 깡패같은 해로운 남성이 아니라, 중세 기사도를 원형으로 한다. 친구를 위해 자신의 삶을 내던지고, 무리를 위해 자기 희생을 마다하지 않으며, 때로는 폭력적이고 무모한 선택을 감행한다. 하지만 전통적인 마초와 다르게, 마크는 동료와 공동체에 대한 강한 충성을 품고 있으며, 그의 폭력은 강자를 향한다. 마크는 단지 자신의 힘을 뽐내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가치를 옹호하기 위해 거칠고 날선 행동을 선택한다.
마크의 행동에는 여전히 마초적 요소가 있지만, 그 속에는 기사도가 내재해 있다. 그는 자신의 친구를 위해 희생과 헌신을 택하는 만큼, 약자들에게도 따뜻한 손을 내민다. 그의 강인함은 다른 이들을 지배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로 작동한다. 마크의 "상남자" 기질은 단순히 남성성을 과시하거나, 전투의 쾌락에 탐닉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의와 연대를 지향하는 태도인 것이다.
진보적 마초의 조건
그렇다면 전통적인 마초와 진보적 마초의 차이는 무엇일까? 핵심은 개인주의적 힘의 과시와 공동체적 배려의 차이에 있다. 전통적인 마초가 남성성을 자기 지휘권으로서 확립하려 든다면, 진보적 마초는 자신이 속한 사회와 공동체, 억압받는 이들의 편에서 자신을 증명한다. 그는 운동의 동력이 되고자 하며, 자아실현을 넘어서 함께 구축하는 세상을 꿈꾼다.
진보적 마초는 또한 젠더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그는 전통적인 남성성의 껍질 안에 틀어박혀 있지 않으며, 여성을 보호의 대상이나 약자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는 동등한 시민으로서 여성을 존중하며, 폭력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관계와 신뢰 속에서 연대를 형성한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이상이 아니라, 폭력과 불의에 대항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구축된다.
기사도의 부활: 약자를 위한 강인함
진보적 마초는 결코 연약하지 않다. 오히려 그는 세상과 부당함에 저항할 수 있는 용기와 강인함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그 힘은 남을 짓밟기 위해 사용되지 않는다. 그는 강자에게 맞서고, 약자 곁에 선다. 그가 진보적인 이유는 단순히 이념적 좌파에 머물지 않고, 현실 속에서 타자를 위해 자신을 내던질 수 있는 결단력을 갖추기 때문이다. 이는 무력한 도덕적 성찰에 머무는 관념적 이상주의와는 다르다. 진보적 마초는 움직임과 행동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한다.
이를테면, 마크의 총은 단지 폭력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그의 정의감이 육화된 형태다. 물론 이런 형태의 표현은 여전히 격렬하고 파괴적이며 현대적 기준에서 낭만화되기 쉬운 위험이 있다. 하지만 진보적 마초는 폭력을 미화하지 않는 대신, 사회적 정의를 위해 그것이 사용되어야 할 때와 방향성을 통찰한다. 마크의 힘은 원칙적이고, 그의 행동은 대의를 위한 것이다.
결론: 진보적 마초는 필요하다
조심스럽게 선언해본다. 진보적 마초는 단순히 가능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대 사회에서 필요하다. 진보적 마초는 정의와 배려를 겸비한 새로운 상남자라는 모델을 제시한다. 그것을 기사도라고 부르자. 고전적인 마초가 개인의 힘과 정복의 서사로 정의되었다면, 진보적 마초-기사도는 사회적 강인함과 연대의 서사로 대체된다.
마크는 불의를 외면하지 않으며, 동료와 약자의 곁에 서며, 정의와 헌신을 위해 자신을 헌사한다. 그들은 단순히 타인의 존경을 구걸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행동을 통해 타인의 삶을 변화시키고, 진정한 영웅적 상남자가 무엇인지 증명한다. 진보적 마초는 "남성성"이라는 틀을 넘어선 존재다. 진보적 마초는 차별과 억압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투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