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마르크스, 『경제학철학수고』, 필로소픽, 2024, 김태희역
청년 마르크스의 학습 노트이자 사상의 샘물
-칼 마르크스, 『경제학철학수고』, 필로소픽, 2024, 김태희역
1844년에 쓰인 마르크스의 《경제학 철학 수고》는 구성부터 복잡하다. 철학적이고 경제학적인 논의가 각주와 단상처럼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저작은 의미심장하다. 마르크스 사상의 전개 과정에서 초기 마르크스 사상의 원형이며, 그의 이름과 긴밀하게 연결된 핵심 주제들, 즉 노동, 소외, 국민경제학 비판 등이 처음으로 선명히 드러난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두에서 몇 가지 조심스러운 점을 짚어야 한다. 알튀세르와 같이 강단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초기 마르크스와 후기 마르크스가 단절되어 있다고 말하며, 『공산당 선언』 이후 마르크스야 말로 진정한 마르크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초기 마르크스의 핵심주제인 인간 소외와 같은 휴머니즘적인 사유들을 폐기하려고 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과학적인 동시에, 위대한 휴머니즘 사상이다. 마르크스를 전기와 후기로 분리하려는 시도에 맞서 마르크스 사상의 원형이 담긴 《경제학 철학 수고》는 마르크스 사상의 혁명적 씨앗을 엿볼 수 있는 초기작이며, 그 철학적 사유는 단절이 아니라 발전을 예고하는 뼈대다. 반드시 마르크스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읽어야 하는 저작이나, 읽기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다.
《경제학 철학 수고》는 마르크스의 저작 가운데서도 읽기가 쉽지 않다. 구조적으로 국민경제학자들과의 논쟁을 담은 각주와 메모 형식으로 쓰였기에, 문장이 끊어지고 논의가 비약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어 번역본들 또한 독자들에게 다소 불친절했다는 평이 많았다. 그러나 2024년 12월 필로소픽에서 출간된 김태희 역의 새 번역본은 기존의 한계를 극복했다. 특히 번역의 정확성을 높이고, 어려운 문장을 독자가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가다듬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양장본으로 출간된 가독성 높은 디자인은 단순히 텍스트의 전달력을 넘어 미학적으로도 독자와 접점을 마련했다. 특히 표지에 담긴 청년 마르크스의 초상은, 책을 펼치기도 전에 1844년의 열정적이고 실험적인 젊은 마르크스를 떠올리게 만든다.
노동과 인간소외: 인간 존재를 향한 질문
《경제학 철학 수고》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를 꼽으라면 단연 소외다. 헤겔에게 물려받은 이 개념을,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서 노동자가 자기 자신의 노동과 그 생산물, 그리고 동료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단절되는가를 날카롭게 분석한다. 여기에는 철학적, 경제학적 통찰이 교차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 체제는 인간의 노동을 외부화, 더 나아가 물화시켜, 노동자는 자신의 생산물에 대해 주체적 통제권을 상실한다. 일상적으로 체감되는 노동의 고통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사람은 일을 통해 자신의 본성을 실현하기는커녕, 노동이 자기 자신에게 적대적인 힘이 되는 소외에 빠지고 만다. 동시에 경쟁의 논리 속에서 동료와도 적대적 관계로 전락한다. 이러한 분석은 헤겔 철학과 청년 헤겔파인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적 사유를 재구성하려는 마르크스만의 철학적 시도와 연결된다. 그는 헤겔의 ‘정신적 소외’를 구체적이고도 물질적인 차원으로 끌어내려, 인간의 활동이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물질적 삶의 조건 위에서 이루어짐을 강조한다. 포이어바흐의 인간주의를 수용하면서도, ‘철학적으로 해석된 인간’을 넘어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실천적 입장을 드러낸다. 이때의 마르크스는 이미 철학적 사색과 실천적 변혁의 경계를 없애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쓰였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시키는 것이다.”라던 포이어바흐 테제외 비슷한 결에 있다고 볼 수 있따.
정치경제학을 넘어서 새로운 시선으로
《경제학 철학 수고》는 학습노트이지만 그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당대의 정치경제학, 특히 아담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고전 경제학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쓰였다. 마르크스는 노동 가치론을 출발점으로 삼았지만, 고전 경제학이 자본주의의 모순적 본질을 꿰뚫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마르크스 시대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 생산 체제를 자연스러운 법칙처럼 받아들였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그것을 인간 사회의 역사적 조건 속에서 분석했고,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가치를 자본가들이 착취하는 구조도 겨냥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그는 ‘물신화라는 낱말로, 자본주의의 물화를 철학화하는 동시에, 사회적 담론으로도 만든다. 이러한 사상적 토대는 이후 《자본론》으로 이어지며, 자본주의 비판과 계급 투쟁의 정교한 이론적 체계로 확장된다.
오늘날의 독자에게: 왜 마르크스를 다시 읽어야 하는가?
이 책은 인간의 노동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외에 대한 문제를 재조명함으로써, 여전히 첨예한 현실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저작이다. 그가 당대에 분석했던 자본주의는 오늘날 더 거대해지고 더 세련된 형태로 팽창했다. 기술의 발달과 생산성의 증대에도 불구하고 노동에서의 소외와 배제, 인간관계의 파괴적 경쟁 구도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이 책은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손을 뻗는 현재형 텍스트로, 마르크스의 메모는 자본주의 체제의 부조리함을 고발한다는 점에서 깊은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