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도시의 사랑법>과 원작 단편소설 <재희에게>
멜랑콜리가 부족했던 영화, 그럼에도 빛났던 순간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과 원작 단편소설 <재희에게>
게이 흥수와 헤녀(이성애 여성) 재희. 우리는 헤남(이성애 남성) 없다면 우리는 한결 신명이 났다. 그래, 헤남만 없다면 말이다. 그동안 한국 상업영화에서 퀴어가 설 자리는 좀처럼 없었다. 퀴어 영화로 적극적으로 마케팅되지는 않았지만 퀴어적 요소가 담긴 영화로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김대승 감독의 <번지 점프를 하다> 등이 있었지만, 퀴어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지는 못했다. 한국 상업 영화계에서는 여전히 퀴어 서사가 설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탓인지, 퀴어적 요소가 들어간 영화를 찾아볼 수는 있어도 이를 퀴어 영화로 명명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문학계는 상대적으로 조금 더 열린 태도를 보여왔다. 2000년대부터 퀴어 문학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문학장에서 퀴어 서사가 어느 정도 주류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영화계는 여전히 보수적이다. 그나마 반가운 사실은, 박상영 작가의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의 단편 「재희에게」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제작되어 도시적이고 세련된 톤으로 퀴어 서사를 그려냈다는 것이다.
소설의 감정을 스크린에 옮기기란
소설이 가진 감정적 깊이를 스크린 위에 온전히 새기는 작업은 언제나 도전적인 과업이다. 영화를 통해 원작의 본질적 정서가 어떻게 옮겨지고 새롭게 해석되었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흥미롭다. 그러나 소설을 읽고 난 뒤 남는 먹먹한 여운과 영화가 남긴 감각의 차이는 분명했다.
영화는 정교하게 재현된 도시의 풍경과 등장인물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시각적으로 풍부한 세계를 구현한다. 하지만 원작의 가장 큰 매력이었던 멜랑콜리한 감정의 밀도는 어딘가에서 누락된 듯한 아쉬움이 있었다.
멜랑콜리의 공간, 도시와 인간의 내면
원작 「재희에게」는 게이와 방탕하다고 표현될 법한 시헤녀의 연대를 중심에 둔다. 서울이라는 자본주의적 도시 속에서 취업난과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압박에 지쳐가면서도, 사랑—그것이 가벼운 원나잇이든 깊은 연애이든—만이 유일한 실존적 해답이 된다. 내부와 외부에서 끊임없이 고립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게이의 삶, 성소수자로서의 차별, 그리고 그 안에서의 사랑은 격렬한 고독과 함께 그려진다.
결말에서는 희망보다는 깊은 슬픔과 허탈감이 남는다. 결혼한 재희를 바라보는 주인공의 병든 사랑은 애초에 치유될 가능성이 없었음을 예감하게 한다. 이처럼 원작은 명료한 탈출구 없이 내밀한 고독의 질감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영화에서 이러한 멜랑콜리는 상당 부분 희석된다. 재희와 ‘나’의 관계는 원작보다 긍정적이고 경쾌하게 그려지며, 중심에 놓인 감정은 묵직한 체념 감보다는 아름다운 낭만으로 편집된다. 이러한 경쾌함은 대중적 호소력을 더하는 데는 기여했겠지만, 원작의 아련하고 묵직한 여운은 그만큼 잃어버리게 했다. 진정한 사랑과 삶—아름답지만 동시에 참을 수 없을 만큼 쓸쓸한 다층적 정서—은 비교적 단선적인 방식으로 축소되었다.
특히 영화는 원작에서 언급된 왕가위 감독의 <해피투게더> 같은 예술적 연출의 길을 좀 더 탐색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본다. 전반적으로, 예술적인 퀴어 영화 대신 상업적 로맨스 영화, 다시 말해 <너의 결혼식>의 '게이 버전'을 본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 연출이었다.
영화의 장점과 한계 사이
영화는 활자를 영상이라는 매체로 옮기며 제한과 동시에 가능성을 모두 끌어안는다. 시각적 요소는 분명 화려했다. 도시적 배경으로서의 이태원의 야경, 스르르 지나치는 엉킨 골목들, 그 속에서 방황해가는 인물들의 모습은 도시가 사랑과 고독의 무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렬하게 담아냈다.
하지만 문제는 원작의 캐릭터 심리와 복합적인 감정선이 영화에서 대폭 축소되었다는 데 있다. 영화 속 재희는 미스터리하고 매력적이지만, 그의 존재가 남긴 감정의 여운은 원작에서처럼 날카롭지 않다. 소설 속 재희는 단순히 사랑의 대상이라기보다, 현대적 고독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 같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이를 희석시키고, 관계를 로맨스 중심으로 단일화하며 결과적으로 비극성을 약화시켰다.
또한 원작에서 캐릭터 내면의 긴 독백을 통해 전달되던 다층적 정서가 영화에서는 배우의 대사와 표정으로만 제한되면서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다. 영화는 관객에게 아릿한 여운을 남기기보다는 순간순간의 감각적 즐거움을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느껴진다.
멜랑콜리와 대중성 사이에서
소설과 영화가 정서를 전달하는 방식의 차이는 어쩌면 매체 자체의 특성에서 출발한 필연적인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멀티플렉스 관객을 겨냥한 사랑 이야기에 머무르며 원작이 가진 고유의 정서를 일부 놓친 감이 있다.
멜랑콜리는 보통 번역되는 우울감이 아니다. 이는 말 그대로 검은 담즙이 나올 듯한, 고향을 상실한 기분이다. 멜랑콜리라는 그 이루어질 수 없음 때문에 더 명확했던 사랑의 본질을 담고 있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원작이 가진 멜랑콜리의 심도가 축소된 버전이었지만, 그럼에도 재희와 주인공의 연대가 도시라는 무대에서 빛을 발하는 순간들은 관객에게 나름의 여운을 남긴다.
특히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돈 없는 게이"라는 주인공 흥수의 말에서는, 퀴어로서 겪는 차별과 노동계급으로서 겪는 소외가 강렬하게 드러난다. 이는 영화가 원작에서 가져온 메시지 중 가장 현실적으로 깊은 울림을 준 부분이었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원작이 선사한 멜랑콜리를 충분히 재현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만들어낸 빛나는 순간들은 분명히 존재하며, 덕분에 관객은 도시의 고독 속에서 사랑을 갈망하고 이루지 못한 감정을 짊어진 주인공의 모습에서 자신을 투영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영화와 원작이 서로 다른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지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