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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의 빛과 어둠의 변증법

by 꿈꾸는 곰돌이

낭만주의의 빛과 어둠의 변증법: 노발리스와 횔덜린, 그리고 하이데거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두 시인, 노발리스와 횔덜린은 "빛"이라는 소제를 단순히 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와 신비로운 세계 사이의 연결을 탐구하는 상징으로 사용했다. 이들의 시에서 빛은 계몽적 이성이 상징하는 명확성과 단순함을 넘어, 인간과 세계를 초월적인 차원으로 열어주는 매개물로 등장한다. 이에 더해,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그의 말, "지나친 밝음이 시인들을 어둠으로 몰아냈다"라는 통찰을 통해, 과도한 명료성이 오히려 존재의 본질적 신비를 해체하며 인간을 내면적 사유로 물러나게 만든다고 진단한다. 하이데거의 성찰은 노발리스와 횔덜린의 시적 세계와 밀접하게 연결되며, 이들 시인의 작품에서 어둠과 빛은 대립이 아닌 상호보완적 존재로 그려진다.

노발리스라는 필명을 알린 대표작〈밤의 찬가〉에서 밤, 즉 어둠은 단순한 부정적 개념으로서의 대비물이 아니라, 초월적 깨달음과 평화의 장으로 묘사된다.


"우리 영원한 밤을 찬양하세/ 영원한 잠을 찬양하세/ 대낮은 우리 몸을 따뜻하게 데웠으나/ 긴 근심은 마음을 시들게 했도다./낯선 것을 향한 욕망은 꺼져버렸으니, 이제 우리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밤의 찬가> 증


한편 "빛"은 단순히 밝고 명료한 낮의 이성이 아니라 인간의 내적 통찰과 신비를 상징하며, 역설적으로 어둠이라는 배경 속에서 더 깊고 본질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낭만주의자에게 밤은 존재의 신비가 드러나는 시적 공간으로, 노발리스에게 진정한 깨달음은 모든 것을 과도하게 해명하려는 밝음이 아니라, 은밀하고 감춰진 어둠 속에서 이루어진다. 하이데거의 지적처럼, 지나친 밝음은 존재의 근본을 외면하게 하며, 시인은 이를 거부하고 어둠으로 걸어들어간다.


그래, 밤에게 노래와 화환을 바치는 일은 어울릴 거야,

방황하는 자 그리고 죽은 자들에게 신성함이 주어져 있으나,

밤 자체는 가장 자유로운 정신 속에서 영원히 존속하니.

-<빵과 포도주> 중



이와 비슷하게, 횔덜린에게도 빛은 단순히 긍정적 계몽의 상징으로 머물지 않는다. 그의 시에서 빛은 종종 신성의 발현으로 나타나지만, 이 빛은 인간 존재와 신적 영역의 간극을 드러내는 역할도 한다. 횔덜린의 시 세계는 빛이 지나치게 강렬할 때 인간 삶의 유한성이 비극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에 주목한다. 빛이 너무 명료하여 모든 것을 드러내는 순간, 인간은 그 빛의 압도적 힘 속에서 자신과 세계의 조화를 잃어버린다. 그러나 횔덜린은 그 강렬한 빛이 어둠 속으로 숨겨질 때, 인간이 비로소 신성한 세계와 조화롭게 연결될 수 있음을 노래한다.


동시대를 살던 천재적인 두 낭만주의 시인의 작품에서 빛과 어둠은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성립시키는 변증법적 긴장 속에 있다. 하이데거의 철학적 시각처럼, 지나친 드러남은 오히려 본질적 진리를 상실하게 하고, 어둠은 그 진리를 새롭게 드러낼 가능성을 열어주는 공간으로 작용한다. 한마디로, 지나친 밝음이 존재를 상실케 한다느 것이다. 노발리스의 밤의 신비와 횔덜린의 신성한 빛은 모두 인간에게 온전히 닿을 수 없는 경험을 시적으로 표현한다. 노발리스와 횔덜린은 시인이란 지나친 밝음의 세계에서 물러나 어둠 속에서 진정한 빛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빛은 단지 모든 것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며, 오히려 어둠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더 깊은 진실을 비춘다. 이처럼 빛과 어둠은 모든 존재와 세계의 비밀을 열어주는 두 축으로 작용하며, 그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유한성과 초월적 세계의 무한성을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노발리스와 횔덜린의 시에서 빛은 어둠을 통해 빛나고, 어둠은 빛을 통해 깊어진다. 빛과 어둠에서 포착되는 독일 낭만주의의 정신은 이성과 계몽에 대한 회의이며, 후대 신카트주의의 우파 지식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으로 소설의 이론 시절 루카치의 세계관이 이 둘의 문명 인식과 비슷하다.) 또한 횔덜린을 연구한 하이데거에게로 계승되며, 이러한 밝음에 대한 경고는 오늘날 이성과 문명에 대한 전반적인 성찰과 회읠르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흐름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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