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20세기 문학의 거대한 양대 산맥: T.S. 엘리엇과 제임스 조이스
-아놀드 하우어、『문학과 예술의 사회사4』、 영화의 시대 중
문학과 예술의 역사에서 1922년은 의미있는 해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와 T.S. 엘리엇의 『황무지』가 세상에 나온 해였다。둘 다 20세기 초 혼란과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며 인간과 문명의 본질을 탐구했지만, 그들이 접근한 방식과 예술적 전통은 극명히 대비된다. 특히 TS 엘리엇은 말라르메로 대표되는 상징주의의 전통을 계승한 반면, 조이스는 기존 전통의 틀을 해체하면서 전례 없는 실험적 문학 형식을 통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이러한 차이는 그들의 대표작, 엘리엇의 『황무지(The Waste Land)』와 조이스의 『율리시스(Ulysses)』를 통해 더욱 명확히 드러나며, 이는 결국 문화사적 맥락에서 문학과 예술의 역할에 대한 상반된 비전을 보여준다.
19세기 말 보들레르와 랭보로 대표되는 프랑스 상징주의 운동은 예술을 언어의 물리적 제한을 넘어 정신적이고 초월적인 세계로 확장하고자 했다. 말라르메는 이 운동의 중심에 있었으며, 그의 시적 실험은 독자가 명확한 메시지를 단번에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의 단서와 암시를 통해 의미를 재구성하게 하는 구조를 추구했다. 말라르메에게 예술은 감각적 즐거움이나 현실의 묘사가 아닌 교양적 암시와 내적 비전을 탐구하는 매체였다. 이 전통을 이어받은 T.S. 엘리엇의 『황무지』는 다층적인 상징, 고전 인용, 종교 및 철학 사유가 깊게 반영되어 있다。반동적이면서도 반자본주의적인 엘리엇은 현대 문명의 정신적 황폐를 진단하면서 이를 치유할 수 있는 방안을 과거의 전통과 교양적 유산에서 찾고자 했다. 『황무지』에서 엘리엇은 고대와 중세의 텍스트, 신화, 성경을 끊임없이 불러내며, 분열된 현대 세계의 조각들을 응축된 교양의 토대 위에 재구성한다. 말라르메의 예술적 계보에서 보듯이 엘리엇의 작업은 고도로 지적이며, 수많은 상징과 인용으로 가득 차 있어 독자가 그 자체로 고도의 학문적 태도를 요구받는다.
엘리엇의 이러한 접근은 문화사를 통해 인간 사회가 분열과 혼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교양과 전통을 재발견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을 반영한다. 엘리엇이 주목한 것은 "의미의 상실"이었으며, 그는 이 문제를 과거의 지성을 통해 재연결하려 했다. 이로써 그의 문학은 개인적 경험을 뛰어넘어, 문화적 기억 속에서 현대의 길을 탐구하는 시도가 된다.
이에 반해, 조이스는 기존의 예술적 전통에 도전하며 말 그대로 새로운 언어와 구조를 창조했다. 그의 대표작 『율리시스』는 고도로 조직화된 서술 틀 속에서도 일상적인 삶과 인간의 본능적 경험이 강조되며, 이것이 곧 현대 사회의 새로운 이야기 형식을 만들어낸다. 조이스는 과거의 교양적 유산에 몰두하기보다는, 인간 내면의 혼란을 직접적으로 탐구하며 독자에게 원초적인 체험을 제시하는 데 주력했다. 조이스는 엘리엇처럼 고전에 의존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이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고 결합했다. 『율리시스』는 『오디세이아』의 전통을 현대인의 일상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예술이 특권층의 교양적 영역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조이스의 문학은 말 그대로 "원초적 인간성"의 체현이며, 문화사의 진화 속에서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려는 도전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접근은 문화사적으로 볼 때, 전통을 뛰어넘어 새로운 예술의 방향을 제시하려는 시도였다. TS엘리엇이 과거 문명과 전통을 통해 미래의 단서를 찾았다면, 조이스는 전통의 요소들을 현대의 맥락 안에서 재조립하고 이를 통해 현대인의 직접적 경험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려 했다.
이를 두고 괴테를 연구한 프리드리히 군돌프의 표현을 빌리자면、엘리엇은 ‘교양체험’을、제임스 조이스는 ‘원초체험’을 대표한다고 할 수 다。
이 둘의 문학에 대한 태도는 여러 가지 있는데、 크게 세 가지 부분으로 정리할 수 있다。
시간성에 대한 태도
TS 엘리엇은 시간 속에서 축적된 지적 전통, 과거의 유산을 소환하고 이에 기댐으로써 현대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반문명적이고、반동적인 당대 지성을 반영한다。 그의 시선에서 과거는 단순히 지나간 시대가 아닌, 여전히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반면 제임스 조이스는 과거를 포함하되 이를 재구성하고 해체함으로써, 시간의 연속선이 아닌 즉각적인 현재성 속에서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 냈다.
독자와 텍스트의 관계
엘리엇의 작품은 독자에게 주어진 텍스트의 상징과 지적 구조를 따라가야 하는 "교양적 경험"을 요구한다. 반면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독자와의 개인적이고 감각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각자 자신만의 해석을 만들어 내도록 유도한다. 이 차이는 텍스트의 공적 사용과 개인적 해체를 둘러싼 현대 문화사의 대립과도 연결되며、 훗날 저자의 죽음 및 신비평 등 해석학으로도 이어지는데、 한마디로 제임스 조이스는 엘리엇에 비해 텍스트를 개방했다고 할 수 있따。
대중성의 문제
제임스 조이스의 실험적이고 파편적인 문체는 독자에게 진입 장벽을 느끼게 하지만, 그 문학적 목표는 인간 경험의 보편적 본질을 탐구하려는 것이었다. 반면 TS 엘리엇은 보다 고급 교양 독자를 대상으로 한 작품을 통해 예술의 순수성과 지성을 강조했으며, 따라서 대중문화보다는 고급예술의 맥락에 가까웠다. 물론、 둘 다 한 번에 이해하기에는 워낙 어려운 텍스트이지만、 TS 엘리엇의 황무지는 목적 자체가 교양층을 위한 거대한 서사시이다。
두 명의 천재 TS엘리엇과 제임스 조이스는 20세기 초 혼란과 위기의 시대 속에서 문화사의 상반된 경향을 대표한다. TS엘리엇은 상징주의의 전통을 이어받아 교양과 지적 전통 안에서 현대 문명의 혼란에 답을 찾으려 했고, 제임스 조이스는 그 전통을 바탕으로 이를 해체하면서 인간 경험의 본질적이고 즉각적인 측면에 집중했다. 오늘날 이들의 작품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현대성을 이해하는 길을 제시한다. TS 엘리엇은 고전의 유산 속에서 해답을 찾고, 제임스 조이스는 파편화된 현대 안에서 새로운 언어와 경험을 창조했다. 이 둘은 ’모더니즘‘이라는 은어 속 비슷하게 간주되지만 근본적으로 이 둘의 전통은 화해할 수 없는 두 경향-예술은 전통 속에서 해답을 구해야 하는가, 아니면 전통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야 하는가-?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