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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대>

아놀드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권, 백낙청/염무용역, 창비

by 꿈꾸는 곰돌이

<영화의 시대>
*아놀드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권, 백낙청/염무용역, 창비, 2016, 제2장 발제

아놀드 하우저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권 제2장에서 '영화'라는 새로운 예술 매체를 중심으로 20세기 예술과 사회의 변화를 다룬다. 그의 논의는 우선 1930년대를 20세기로 보는데, 당시 시대적 이데올로기의 격돌-볼세비즘vs파시즘vs부르주아 사상 및 영화라는 매체가 역사, 사회, 예술의 맥락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탐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우리는 20세기라는 격동의 시기가 영화라는 특수한 예술 매체를 통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그리고 이것이 현대인의 삶과 어떤 연관을 맺는지 이해할 수 있다.

1. 1930년대: 극단적 대립과 위기의 시대
하우저는 1930년대를 "사회 비판의 시대", "사실주의와 행동주의의 시대"로 정의한다(286쪽). 당시의 세계는 정치적 극단화가 심화된 상황이었다. 중산층 중심의 부르주아 질서는 심각한 위기에 놓였으며, 다수의 사람들은 조화나 타협이 아닌 "극단적 해결만이 유효하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부르주아 계급 내부에서도 자신들이 오랫동안 구축해온 질서의 허약함과 그 붕괴 가능성을 직감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는 이러한 위기의 시대 속에서, 예술 역시 새로운 표현 양식을 모색하며 동시에 사회 현실을 더욱 날카롭게 반영한 시기였다.

2. 현대 예술의 전통적 단절과 새로운 모색
20세기 예술에서 가장 특징적인 변화는 전통과의 급진적 단절이다. 하우저는 자연주의적 예술 전통의 종말을 매우 상징적인 사건으로 본다(289쪽). 특히 인상주의는 이전까지 진행되어 온 400년의 예술 발전 과정의 "정점이자 종착점"으로 언급된다. 자연을 충실히 재현하고, 삶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는 예술적 목표는 인상주의에서 하나의 궁극에 도달하지만, 이후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표현주의 등 근대 예술 사조는 기존의 이상을 완전히 뒤흔든다.

이러한 전통의 해체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화된다. 1916년 출현한 다다이즘은 전쟁과 그로 인해 초래된 문화적 붕괴에 대한 항의로 탄생한 운동이다(290쪽). 다다는 기존 예술의 모든 형식을 부정하며,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패배주의적" 예술 형식으로 자리 잡는다. 그 뒤를 잇는 초현실주의 역시 모순적 요소의 결합과 부조리를 작품의 중심으로 삼으며, 현대 예술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297쪽)

3. 영화의 매체적 특성과 시간·공간의 융합
하우저는 영화예술의 독창성을 시간과 공간의 융합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영화는 시간적·공간적 요소를 결합한 유일한 예술 장르로, 전통 예술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혁신적 형식을 제공한다(302쪽). 연극이 갖는 시간-공간적 병존 방식과 달리, 영화는 시간과 공간을 유동적으로 오가며, 이러한 요소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도록 구성한다.

이와 더불어 영화는 현대 기술문명의 산물이자 상징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경험의 핵심적 일부를 형상화한다. 하우저는 영화가 현대 도시의 복잡성과 기술적 발전에서 비롯된 심리적 긴장과 애매성을 반영한다고 분석한다(306쪽). 특히 "동시성"이라는 개념은 영화 매체의 중요한 특징으로 언급된다. 현대인은 한 순간에 수많은 사건과 현상을 경험하며, 세계 여러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 단일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동일한 순간에 일어난다는 점을 인식한다. 영화는 이러한 동시성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며, 현대인의 경험을 새로운 시각으로 드러낸다.

4. 영화 관중의 특징과 예술의 민주화
영화는 근대 예술에서 처음으로 대중적이며 불특정 다수를 위한 예술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하우저는 영화 관객이 기존의 '고정적 관중'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312쪽). 전통적인 예술 관중은 서로 간의 상호 소통 가능성, 혹은 공통의 경험 기반을 가지고 있었지만, 영화의 관객은 단지 특정 장소에 모였다는 점에서만 공통점을 가진다.

이러한 변화는 19세기 예술의 민주화 과정의 연장선으로 이해된다. 연극과 연재소설을 비롯한 대중적 예술 형식이 부상하면서 예술은 더는 특정 엘리트 층만을 위한 것이 아닌, 많은 사람들에게 열려 있었다(314쪽). 영화는 이러한 민주화 경향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우저는 이러한 대중성의 확대가 예술의 단순화와 연결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하며, 마르크스주의자답게 싸워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4. 현대 예술의 과제: 대중의 시야 확대와 예술적 교육
저자는 "예술의 폭력적 단순화"가 아니라, 대중의 시야를 넓히고 예술적 판단 능력을 기르는 것이 현대 예술이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주장한다(324쪽). 그는 경제적·사회적 조건의 개선이 우선되어야 하며, 누구도 예술을 특정 계층의 전유물로 만들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그는 과거의 강압적 체제 하에서도 위대한 예술작품들이 탄생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오늘날의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과거의 억압적 환경과 현재의 상황을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과제는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극복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다.

5. 영화와 현대 예술의 전망
아놀트 하우저는 영화가 예술의 민주화를 이끈 중요한 매체라고 평가하면서도, 단순한 소비문화에 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는 "참되고 진취적이고 창조적인 예술"은 본질적으로 복잡한 것이며, 이를 모든 대중이 동일한 수준에서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참여와 이해를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우저는 영화를 포함한 현대 예술이 기술 발전의 결과물일 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와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반영하는 매체임'을 보여주었다. 영화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아우르는 동시에 현대인의 경험을 기록하고 재현하는 역할을 했다. 물론,1951년에 나온 저작인만큼 당시의 영화의 양상은 현재와 다르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할리웃을 비롯해 저자가 경고했던 것처럼, 영화에서 작가의 역량은 줄었고 훨씬 더 산업화되었다. 무비는 있을 지라도, 얼마나 많은 영화가 시네마의 경지에 오른지는 살펴봐야 한다.

당대 배경에서 우리는 영화가 단순한 오락 매체를 넘어, 사회적 역할과 예술적 가능성을 동시에 갖춘 복합적 양식임을 인정해야 한다. 영화는 현대인의 삶을 설명하는 중요한 도구로서, 예술과 공공적 역할을 병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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