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크 루카치가 본 노발리스와 낭만주의
낭만적인 삶의 철학에 대하여
-게오르크 루카치가 본 노발리스와 낭만주의
게오르크 루카치의 첫 저서 『영혼과 형식』은 '영혼'이 어떻게 '형식'으로 구현되는지를 탐구한 작품이다. 특히 루카치의 분석은 초기 낭만주의자 노발리스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는 낭만주의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노발리스의 빛과 어둠을 모두 꿰뚫어 보고 있다.
루카치에게 노발리스는 낭만주의자들 중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는 노발리스를 괴테와 비교하며 "낭만주의 유파의 유일한 진정한 시인"이라고 평가했다. 다른 낭만주의자들이 모호함이나 환상에 갇히거나 관념에만 몰두했던 것과 달리, 노발리스는 견고한 실체를 획득했다는 것이다. 노발리스는 '낭만주의의 삶의 예술은 행동으로 옮겨진 시'라고 믿었고, 루카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노발리스의 삶 자체가 예술적 행위이자 시였다고 보았다. 노발리스에게 시는 예술이었고, 자신의 삶을 예술 작품처럼 직조하고 실천하는 것이 낭만주의의 이상이었다. 즉, 노발리스에게 인생은 시 그 자체였으며, 삶의 모든 순간은 낭만주의의 핵심 가치를 담아내는 시적 행위였다. 이는 추상적 관념이나 허황된 이상을 넘어 삶 속에서 그 본질을 구현하려 했던 노발리스의 독특한 면모를 보여준다.
하지만 루카치는 노발리스 외의 다른 낭만주의자들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그는 다른 낭만주의자들의 '삶의 철학'이 실상 '죽음의 철학'에 가깝다고 신랄하게 지적했다. 루카치는 노발리스를 제외한 낭만주의자들이 삶의 본질적 역동성을 상실하고 죽음을 지향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고 말한다. 낭만주의가 추구했던 무한한 이상과 자유는 현실 도피적 허무주의로 이어질 수 있었고, 루카치는 노발리스만이 이 위험한 함정을 피할 수 있었다고 보았다.
루카치의 분석은 더욱 깊어진다. 그는 역설적으로 노발리스의 죽음을 통해 낭만주의가 비로소 확고한 형체를 얻게 되었다고 말한다. 노발리스의 삶과 예술이 낭만주의의 가장 순수하고 이상적인 형태를 구현했기에, 그의 죽음은 모든 것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비극적 완성이 되었다. 루카치는 "노발리스의 삶만이 문학이 될 수 있었다"는 점이야말로 낭만주의의 비극이라고 말한다. 이는 오직 노발리스만이 삶을 예술로 만들 수 있었고, 다른 이는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가 낭만주의의 보편적 한계와 비극성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루카치는 현실에서 이상을 동경하고 재현하려는 노력의 어려움을 노발리스의 삶과 죽음이 보여주었다고 보았다. 이것이 이상을 고향에서 추구한 낭만주의자들과 현재에서 이상을 추구한 괴테의 결정적 차이였다.
사견)
루카치의 초기 사상이던 낭만적 반자본주의는 결국 노발리스적 반자본주의아닐까? 루카치는 괴테의 빛에 가려진 노발리스의 어둠의 마력을 통찰했기에 가능한 작업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