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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존 버거의 책들》

by 꿈꾸는 곰돌이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가 끝난 뒤,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존 버거 관련 전시에 다녀왔다. 사실 전시회라기보다는 2층 한쪽에 그의 책들을 조촐하게 전시한 공간에 가까웠다. 아는 선배의 급한 추천으로 전시 마지막 날 겨우 방문할 수 있었는데, 내가 가장 애정하는 작가 중 한 명인 그의 흔적을 마주하며 특별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주중 음주로 망가진 일상을 회복하게 해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그의 책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였다. 2000년대 당시 미국 제국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한 자유로운 형태의 에세이집으로, 팔레스타인의 폐허를 직접 목격한 저자의 사려 깊은 시선이 담긴 책이다. 존 버거는 이 책에서 미국 제국주의와 시온주의의 야만성을 명징한 산문의 형태로 고발하며, 현실의 고통을 마주한 인간에게 윤리적인 사유를 요청한다. 이 책은 내가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서 발언할 때 인용하기도 했던 터라 더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허물고, 산문과 운문, 사진과 그림 등 다양한 매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인간의 삶과 고통을 깊이 어루만졌던 존 버거. 그의 작업은 단순한 예술적 표현을 넘어, 인간의 구체적 현실과 윤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존 버거는 언제나 우리의 시선을 바꾸고,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작품들을 만들어왔다. 그는 예술과 삶을 구분하지 않고, 무엇보다 ‘존엄’이라는 가치를 기초로 인간의 경험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팔레스타인이라는 시대적 상처를 껴안고, 우리가 그곳의 고통과 연대해야 하는 이유를 버거는 글로, 사진으로, 말로 끊임없이 전달하려 했다. 그런 그에게 다시 한 번 경의와 감사를 표하며, 그의 책들을 둘러보는 시간은 단순히 전시를 넘어서, 나 자신을 소중히 돌보고 되돌아보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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