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밍족 말고 댄디
남자가 무슨 화장품이야?" 맞다. 한때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남자 고등학교의 강인한-혹은 천박한 남성성에 깊이 물들어 살던 나는 비누 한 장으로 얼굴을 문지르는 것이 진정한 남자의 피부 관리라고 믿었다. 로션이니, 선크림이니 화장품 같은 건 속된 말로 '여성스러운' 물건으로 생각했다. 얼굴에 무언가를 바르는 행위 자체가 남성성을 훼손한다는 무의식적 사고에 찌들었다. 물론, 남고에도 세련되고 자기관리에 열심이던 친구들이 있었지만, 적어도 나는 그 무리 속의 '야만인'이었다.
대학 입학과 함께 내 주변 환경은 완전히 바뀌었다. 소위 '여초학과'라는 낯선 공간에 들어섰고,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여초 직종에서 일하게 되었다.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그곳의 분위기는 남고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성별에 관계 없이 그들은 자신을 가꾸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물론 진짜 소수의 괴짜는 그딴 것 신경 안 쓴다.) 처음엔 그런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차라리 그 시간에 책 한 권을 더 읽는 게 낫겠다는, 다소 편협하고 엘리트주의가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점차 생각이 바뀌었다. 이는 단순히 외적 환경의 변화만은 아니었다. 핵심은 보들레르의 『현대 화가의 생활』에서 만난 '댄디즘'이라는 개념이었다. 주위에서는 그루밍족이 되었다고 신기해하나, 둘은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트렌드의 선진부가 되고 싶어하는 그루밍족과 달리, 댄디는 절제를 통해 도시의 수도승 같은 생활을 하면서도 우아하고, 기품있게 행동한다. (물론 스스로 댄디로서 아직 대자적 존재가 아님을 안다.)
댄디들은 화려하고 과장된 치장 대신 절제된 우아함과 세련된 태도로 자신을 표현했다. 외적 치장의 본질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단정한 슈트와 매끈한 실크 스카프를 통해 그들은 내면의 가치관을 드러내고자 했다. 즉, '화려한 치장'이 아닌 '깔끔'과 '단아함'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더 나아가 자기 존중의 태도를 실천하는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단지 건강한 피부를 유지하기다. 이는 불필요한 화장이나 과도한 기교가 아니라, 건강한 피부라는 견고한 토대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옷도 마찬가지다. 힙하게, 트렌디하게 입는 것이 아닌 중간계급으로 몰락한 댄디처럼, 단정하게 단아하게 입는다. 자유로운 복장이 허용된 직장에서 동료들에 비해 확실히 클래식한 편이다. 그렇다고 너무 클래식은 아니고 세미 빈티지 정도로
당연히 이것이 단순한 외모 관리가 아닌, 시대와 성별을 넘어서는 댄디 자세다. 이것이 바로 나만의 모던 댄디즘이다. 물론, 한병철의 『아름다움의 구원』에서는 이러한 매끈함 추구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보들레르의 아름다움을 더 선호한다. 단, 보들레르의 여성관은 너무나 시대에 뒤떨어져 불편하다. 누드화를 마주해도 무심하게 웃음 짓는 중년 남성 같은 그의 태도에 동의할 수 없다. 다만, 자신의 내적 미학과 태도에 집중하는 부분에 한해서만 그의 관점을 빌리고 싶다. 주변 사람들은 아마도 내 손의 로션과 선크림을 보며 '여성스럽다'거나 '그루밍족이다'라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단순한 유행에 편승하는 모습과는 다르다. 나는 그저 댄디일 뿐이다. 영혼의 댄디즘은 곧 외적인 댄디즘이다. 헤겔의 주객동일화처럼, 나는 댄디의 본질을 체화해가고 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물화하는 시대에, 한 줌의 반자본주의라는 믿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