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적 개인의 잃어버린 기억 반영된 한국 사회의 리얼리티
문제적 개인의 잃어버린 기억 반영된 한국 사회의 리얼리티
-정신분석학의 관점으로
한 문제적 개인의 고통을 사회의 아픔으로 연결짓는 것이 루카치가 말하는 리얼리즘의 진수다. 개인의 고통이 세계의 고통과 맞닿아 있다는 점, 바로 이것이 리얼리티의 본질적 표현일 것이다. 루카치의 리얼리즘 이론을 기준으로 한국 영화의 리얼리티를 총체적으로 반영한 작품을 꼽자면, 이창동의 초기작 <박하사탕>을 주목할 만하다. 2000년 1월 1일 개봉한 이 영화는 한국 영화의 새로운 천년을 알리는 동시에, 상처로 점철된 한국 근현대사의 폭력성을 깊이 있게 드러낸다. 영화는 한 인물의 자살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독재와 물질만능주의의 결과임을 폭로한다. 특히 순수했던 첫사랑을 '박하사탕'이라는 객관적 상관물로 표현하는 문학적 기법, 신경증과 억압된 기억의 역순행적 재현, 노골적이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은 카메라 연출 등 여러 측면에서 20세기 한국 영화의 정점으로 평가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영화 속 주인공 김영호(설경구)의 마지막 순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기억의 역순행적 재현을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탐구하고자 한다.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자는 아니지만 근대의 주요 사상가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및 <역사철학테제>의 '비자발적 기억' 개념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이 영화는 마치 한 인간의 무의식 깊은 곳에 억압된 상흔을 프로이트식으로 해제해 나가는 정신분석 과정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벤야민이 주장한 역사 서술의 핵심 - 파열된 시간의 이미지들을 모아 조합해야 한다는 명제를 영화적 형식으로 구현한다. '박하사탕'이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은 한 개인의 삶이 역사의 거대한 폭력 앞에서 어떻게 문제적 존재로 변모하고 좌초되는가이며, 이 질문은 기억의 심층에 자리한 역사적 트라우마와 신경증을 통해 폭로된다.
김영호의 비자발적 7가지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박하사탕>은 김영호라는 인물의 최후에 회상한 20년을 일곱 개의 단절된 에피소드로 나누어 역순으로 재구성한다. 이는 프로이트가 『쾌락 원칙을 넘어서』에서 규명한 '반복 강박(Repetition Compulsion)'과 신경증의 발생 메커니즘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영화적 장치다. 영호의 삶은 그의 무의식 깊숙이 박힌 과거의 트라우마가 현재의 모든 관계와 행동을 어떻게 지배하며 파멸로 이끄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1. 1999년 봄: 절규, 그리고 파멸
영화는 '가리봉 봉우회' 야유회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등장한 김영호의 절규로 막을 연다. 차가운 친구들의 시선 가운데 그는 기찻길 위로 올라서더니 다가오는 기차를 향해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며 몸을 던진다. 그의 절규는 단순한 삶의 한탄을 넘어, 과거의 어떤 순간으로라도 되돌아가 자신의 비극을 되돌리고 싶은 무의식적 열망의 폭발체였다. 모든 것을 잃은 파산자의 모습, 황폐하고 증오로 가득 찬 눈빛은 프로이트가 언급한 '리비도의 퇴행'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극심한 상실과 자아의 붕괴가 외부 세계를 향한 공격성으로 전이된 것이다.
2. 1999년 초: 엉망진창의 만찬
야유회 몇 주 전, 김영호의 삶의 막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파산 직전에 내몰려 사채업자들에게 쫓기고, 가족에게마저 외면당한 그는 완전한 고립 상태에 빠져있다.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 순임 앞에서조차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드러내며 불편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과거의 순수했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의 내면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트라우마로 인해 형성된 신경증적 무관심과 대상 관계의 붕괴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는 이제 다른 이와 어떤 의미 있는 정서적 유대도 맺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것이다.
3. 1994년 여름: 물질의 타락, 관계의 해체
김영호는 대기업을 그만두고 가구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사업 실패와 함께 아내와의 관계도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혼 과정에서 드러나는 그의 냉혹함과 폭력성은 프로이트의 『문명 속의 불만』에서 논의된 억압된 본능적 충동의 신경증적 표출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는 돈과 성공이라는 물질적 가치에 집착하며 자신의 파괴적 에너지를 쏟아붓고, 이는 내면의 채워지지 않는 공허와 불안을 억압하려는 무의식적 시도였다. 이때 그에게 수많은 열쇠는 단순한 성공의 상징을 넘어, 봉인하고 싶은 과거의 기억들이 끝없이 쌓여있음을 은유하는 듯했다.
4. 1987년 늦가을: 폭력의 내재화와 권력의 맛
경찰관으로 변모한 김영호는 심문 과정에서 서슴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잔혹한 형사로 탈바꿈해 있다. 고문 현장에서 보이는 그의 광기 어린 눈빛과 통제 불가능한 행동은 그가 이미 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벗어났음을 암시한다. 이는 자신이 겪었던 폭력적 트라우마를 타인에게 전가하는 '가해자와의 동일시' 현상의 전형적인 예다. 벤야민의 『역사철학 테제』에서 경고했듯이, 김영호의 폭력적 행동은 과거의 억압된 권력의 폭력이 내면화되어 새로운 형태로 반복되는 역사적 비극성을 함축한다. 약혼녀에게 보이는 거친 태도는 건강한 애착 관계 형성을 방해하는 신경증적 양상을 드러낸다.
5. 1984년 봄: 끔찍한 시작, 영혼의 얼룩
갓 경찰 제복을 입은 순진했던 영호가 불법 시위 현장에서 실수로 여성 시위대원을 총으로 쏴 죽이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이 순간은 그의 삶이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전환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이로 인해 그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이라는 심리적 방어 기제를 형성하기 시작하며, 죄책감을 억압하고 자신을 분리시키는 신경증적 회피가 시작된다. 벤야민의 "과거는 위험의 순간에 번득이는 이미지"라는 말처럼, 이 순간의 끔찍한 경험은 영호의 삶에 끊임없이 되풀이될 트라우마의 원형으로 각인된다.
6. 1980년 5월: 광주, 원초적 트라우마의 늪
군에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풋풋한 김영호는 광주 민주화운동 진압군으로 투입된다. 시민들에게 총을 겨누고, 우발적으로 한 여고생에게 총을 쏘아 죽이는 경험은 그의 순수했던 영혼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원초적 트라우마가 된다. 프로이트의 『쾌락 원칙을 넘어서』에서 설명된 전쟁 트라우마처럼, 영호에게 광주는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그의 무의식을 끊임없이 침범하고 정체성을 산산조각 낸 근원적인 상처였다. 이 사건 이후, 트라우마는 영호의 삶에 영원히 각인된다.
7. 1979년 가을: 박하사탕의 추억, 순수의 상징
영화는 모든 파국적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스무 살 김영호의 순수하고 앳된 모습에 도달한다.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부르며 가리봉동 동우회와 함께 간 노동자 야유회에서 첫사랑 순임을 만난다. 이 둘은 수줍게 친해지며, 순임이 주머니에서 꺼낸 박하사탕을 건네주자 수줍게 웃는 영호의 모습은 죽기 전 횟아하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자 삶에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잃어버린 시간적 시원의 순간이다. 흰 색의 박하사탕은 순수함, 첫사랑, 그리고 행복했던 과거를 상징하며, 영화의 제목이자 영호가 마지막 순간까지 되돌고 싶었던 순수의 표상이다. 이 마지막 장면은 프로이트가 주장하는 '억압되기 전의 초기 유년 경험'이 개인의 삶을 얼마나 강력하게 지배하며, 그 상실이 가져오는 신경증적 비극의 깊이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신경증적 반복과 역사적 억압
김영호의 삶은 트라우마로 인한 신경증적 반복 강박의 끔찍한 서사이다. 1980년 광주에서의 경험은 그의 무의식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고, 그는 그 끔찍한 기억을 의식적으로 처리하지 못하고 억압한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말했듯, "억압된 것은 사라지지 않고 무의식 속에 존재하며, 상징적 형태나 증상으로 끊임없이 다시 나타난다." 영호의 폭력성, 강박적인 자기 파괴,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 단절은 모두 억압된 광주 트라우마의 신경증적 증상들이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 끔찍한 상황을 계속해서 '반복'하며, 이를 통해 미처 통제하지 못했던 고통을 '장악'하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복은 그를 더욱 깊은 나락으로 밀어낸다. 사채업자로의 변모는 권력의 폭력을 휘두르던 자신의 과거를 재생산하는 방식이며, 결국 그의 파산과 자살은 이러한 반복 강박의 최종적인 파국을 의미한다. '박하사탕'은 김영호 개인의 신경증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광주 학살, 군부 독재, 물질만능주의 등 폭력적 경험들이 한 개인의 무의식을 어떻게 파괴하고 마비시키는지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는 벤야민이 역사를 "승자들의 기록"이라 비판하며 "희생당한 자들의 기억"을 구원하려 했던 시도와 일맥상통한다. 김영호의 절규 "나 다시 돌아갈래!"는 단순한 개인의 비명이 아니라, 폭력적인 역사 속에서 길을 잃은 모든 영혼들의 염원이다. 그의 파멸은 우리 사회가 외면하고 억압했던 과거의 트라우마가 현재에 어떻게 신경증적 형태로 되돌아오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장인 것이다.
벤야민이 최후의 순간, 수고로 남겼던 '비상 브레이크'라는 혁명은 결국 억압된 기억들이 섬광처럼 칠 때 돌아오는 것인가? 김영호는 절규하며 다가오는 열차의 비상브레이크를 당기지 못한 채 최후를 맞이했다. 이것이 바로 문학이자, 문학 영화적 연출이다. 역사적 억압으로부터 그것을 당길 수 있는 문제적 개인은 누가 될 것인가? 그것은 억압된 시대를 살아가는 또 다른 김영호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