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과 21세기』, 존 몰리뉴, 책갈피, 이수현역 1-2징
레닌과 21세기라는 두 단어는 주류 학계와 지식인들에게는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도대체 언제적 레닌을 이야기하느냐”는 반응이 돌아올 법하다. 하지만 레닌의 사상과 그가 걸어온 길은 21세기를 살아가는 많은 급진적 사상가와 실천가들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그의 제국주의론, 민족 자결권, 마르크스주의 국가론, 개혁주의 비판,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정당 이론은 오늘날에도 혁명과 대안을 꿈꾸는 이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특히, 레닌의 사상과 이론은 러시아 혁명과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격동 속에서 실천을 통해 입증되었다는 강점이 있다. 물론, 그 시대에 검증되었다고 해서 오늘날 그의 저작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그러나 레닌의 사상을 객관적으로 평가해보면, 그의 이론은 여전히 다른 세계를 꿈꾸는 혁명적 사유의 가장 선진적이고 풍부한 자산임이 명확하다. 문제는 냉전기를 거치면서 레닌에 대한 왜곡이 지나치게 심했다는 점이다. 소련은 레닌을 스탈린주의적 관점에서 곡해하고 교조화했으며, 서방에서는 레닌을 전체주의 독재자의 전형으로 묘사하는 데 그쳤다. 이처럼 레닌에 대한 평가는 좌우를 막론하고 정치적 의도에 따라 제멋대로 왜곡되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레닌주의를 두 가지 곡해로부터 해방시키고, 오늘날의 관점에서 올바르게 조명하고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뛰어난 마르크스주의 저술가 존 몰리뉴(John Molyneux)는 기존의 오염된 레닌 평가에 정면으로 맞서며,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혁명가로서 레닌을 새롭게 탐구하고 재조명한다. 그가 제시하는 레닌의 당 조직 이론, 제국주의와 민족 자결권 문제, 국가 이론, 차별과 불평등에 맞선 투쟁 등은 21세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깊이 있게 해설한다. 그의 작업을 보면, 한강의 <소년이 온다>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과거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자를 도울 수 있는가?" 문멕과 조금 다른 인용이지만, 레닌이라는 죽은 자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를 돕고 있다고 단언할 만하다. 과거 20세기 최고의 레닌 입문서가 루카치의 『레닌』이었다면, 오늘날 21세기에는『레닌과 21세기』이 혁명의 가능성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는 최고의 레닌 입문서라고 할 만하다.
1장: 레닌의 현대적 의미
오늘날 레닌의 사상이 여전히 유효하려면 노동계급 혁명의 가능성이 남아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노동계급은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섣부르고도 오만한 선언, 그리고 노동계급이 파편화되고 물화되었다는 통념이 널리 퍼져 있다. 이러한 통념은 좌파 진영의 논의에도 영향을 미쳐, 개혁주의적 관점의 ‘프레카리아트론’(불안정 노동 계급론)이나 네그리의 아나키즘적 ‘다중론’ 같은 새로운 변혁의 주체를 주장하는 다양한 이론들이 등장하게 만들었다.
존 몰리뉴는는 레닌을 옹호하기에 앞서, 여전히 노동계급이 사회 변혁의 주요 세력이며 혁명의 잠재성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물론, 레닌도 ‘노동귀족’ 같은 비판받을 만한 주장을 한 적이 있지만, 저자는 노동계급이 여전히 잉여가치를 착취당하는 자본주의의 본질적 구조 속에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자본과 대립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노동계급이 당장은 혁명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잠재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저자는 노동계급의 잠재성이 분출된 러시아 혁명의 사례를 통해, 이들의 변혁적 가능성이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저자는 레닌에 대한 대표적인 왜곡 중 하나인 ‘마키아벨리즘 해석’에 반대한다. 이 곡해는 주로 레닌의 저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등장하는 ‘외부에서 도입되는 사회주의’라는 개념을 근거로 삼는다. 서방에서 흔히 이 책을 레닌의 권위주의나 엘리트주의적 사상을 드러낸 저작으로 간주하지만, 저자는 이 책이 당시 러시아 사회주의 내부의 ‘경제주의자’들과 논쟁하기 위해 쓰였다는 맥락을 간과한 오해임을 지적한다. 초기 저작으로서 일부 표현상의 오류가 있기는 했지만, 레닌이 궁극적으로 강조했던 것은 노동계급 운동의 자발성과 사회주의 이론의 협력적 발전이었다. 1905년 혁명과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의 탄생 같은 사건들은 레닌에게 자발적인 노동계급의 혁명적 잠재력과 노동조합 운동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레닌은 전업 활동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이들과 노동계급 간의 유기적이고 변증법적인 관계를 중시했다. 이는 단순히 가르치는 관계가 아니라, 배우고 가르치는 쌍방향의 관계였다. 이러한 점에서 레닌의 사상은 엘리트주의나 권위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저자는 이러한 레닌주의의 왜곡을 바로잡는 작업이 과거 레닌을 미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레닌주의가 여전히 유효함을 입증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21세기에도 혁명이 노동계급 혁명으로 불릴 수 있다면, 그것은 노동계급 투쟁과 역사적 경험 간의 연속성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p.99). 과거 혁명의 교훈으로부터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는 저자의 분석은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2장 제국주의, 전쟁, 혁명
"우리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는지와 관계없이, 볼셰비키 당 조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사람은 그것을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이다." 루카치가 그의 저서 *레닌*에서 쓴 이 말로 2장이 시작된다. 이 장에서는 레닌의 제국주의 이론, 민족자결권 문제, 그리고 혁명이 현대에 어떤 현실성을 가지는지에 대해 탐구한다.
레닌은 마르크스처럼 자본주의 시대에 살았지만, 그가 목격한 것은 자본주의의 새로운 국면, 즉 제국주의 시대였다. 레닌은 이 시기를 생산의 집중과 독점기업의 발전으로 인해 자본주의가 질적으로 변화한 단계라고 보았다. 독점기업은 금융자본과 결합해 경제를 지배하며,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은 세계를 나누어 지배하려 했다. 레닌은 『제국주의론』에서 이러한 점을 실증적 자료를 통해 뒷받침하며,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최종 단계로 정의했다. 레닌은 독점기업의 경제적 성격을 이해하려면 금융자본의 역할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금융자본은 전 세계 경제를 지배하며, 자본수출의 증가라는 특징을 동반했다. 하지만 레닌은 이 자본수출이 국내 노동계급 대중의 생활 수준을 개선하는 데 쓰이지 않고 식민지 착취로 이어졌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착취는 열강 간 경쟁을 심화해 결국 세계 영토의 분할과 제국주의적 전쟁을 초래했다. 독일과 영국·프랑스 간의 불균등 발전이 제1차 세계대전의 요인이 되었다는 그의 분석은 여전히 설득력을 지닌다.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실천에서도 큰 의의를 지녔다. 반면, 카우츠키의 ‘초제국주의론’은 개혁주의로 귀결되며 대중의 투쟁을 억누르는 데 그쳤다. 반대로,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혁명만이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참상을 종식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민족자결권 문제에서도 빛났다. 레닌 이전의 마르크스주의자들, 심지어 마르크스와 엥겔스조차도 피억압 민족 문제에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했다. 로자 룩셈부르크 역시 민족 문제를 경시했다. 하지만 레닌은 식민지에서 반제국주의 투쟁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며,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이를 강력히 지지해야 한다고 보았다. 물론, 그는 이런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민족 운동과 동맹을 맺으면서도 절대적으로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저자는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네 가지로 정리한다.
1) 제1차 세계대전을 비판하고 전쟁에 맞서 봉기를 촉구했다.
2) 자본주의의 현 단계를 세계체제로 분석했다.
3) 국제 사회주의 운동의 위기를 진단하고 혁명적 국제주의로의 복귀를 주장했다.
4) 세계 인구의 다수를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와 공산당의 지도 아래 단결시키는 전략적 전망을 제시했다.
물론,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여러 한계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개혁주의를 노동계급 간부나 대표자들이 자본에 의해 매수당한 결과라고 분석했지만, 이는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 또, 자본의 수출로 다른 식민지가 발전할 것이라는 그의 예상도 오류였다. (이것이 나중에 종속이론으로 발전했으나, 종속 이론 역시 역사적으로 심판되었다. 스탈린주의로 거친 제3세계주의이며 이를 추구한 나라들은 결코 성장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크리스 하먼은 식민지 자본주의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3세계 투사들이 공산주의에 매력을 느꼈다고 주장한다.
레닌의 민족자결권과 반제국주의 입장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에서 저자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대표적 사례로 제시한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평화주의가 아니라 혁명적 레닌주의만이 충실히 대변할 수 있다. 저자는 레닌의 사상과 분석이 사소한 오류에도 불구하고, 특히 제국주의 간의 전쟁과 이에 대한 혁명적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중요한 교훈을 준다고 한다. 특히, 미중 간 경쟁이 격화하는 현재의 국제 정세에서 레닌의 혁명적 패배주의는 우리가 주목할 만한 통찰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