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초 집단에서 살아남기
나는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다. 방송 작가 업계에서 나는 상당히 특이한 위치에 있다. 내가 속한 팀은 물론이고, 회사 전체를 봐도 '남자 방송작가'는 나뿐이다.
대학에서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하면서 이미 여초 집단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내가 여초 집단에 깊숙이 뿌리내리며 살아오면서 느낀 점들은 단순히 '적응'이나 '동화'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 경험이었다.
의외로 나는 남자고등학교 출신이다. 그곳이 얼마나 거칠고 야만적인 곳인지 잘 안다. 그러다 문학을 전공하며 여초 학과에 오게 되었다. 여초 학과 환경에서 남성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거대한 무리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낯설었다. 동기들의 대화 방식과 사고방식은 내가 알던 세계와 너무나 달랐다. 대화의 흐름과 사고의 방식이 완전히 달랐고, 내 몸에 남아있던 남고 특유의 남성적인 면모는 점차 희미해졌다. 말투와 태도는 그 환경에 점점 맞춰졌고, 이는 방송작가로 일하는 데 꽤 유용한 자산이 되었다. 그래도 아직 일부 여초 연예인들과 프로그램은 여전히 버거운 게 사실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나는 경청하는 능력, 공감적 소통, 그리고 집단의 분위기를 읽어내는 섬세함을 얻었다. 학과내 지인들 사이에서 나는 '남자다운' 모습과는 달리 의외로 섬세하게 관찰하고 감정을 공유하는 동료로 인식되곤 했다. 때로는 '게이 같다'는 평가도 들었지만, 이는 여성 중심 문화를 경험하며 자연스럽게 체득한 것이었고, 공감이 중요한 작가라는 직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
여초 환경에서 남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물론 남성 중심의 환경보다는 훨씬 낫지만, 이 과정이 언제나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고, 남성으로서의 정체성마저 희미해지는 경험을 했다. 간단히 말해, 알면서도 모르는 존재가 되는 경험이었다.
"우리"라는 집단에 속해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경계는 여전히 존재했다. 동료,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여성적인 언어와 감수성'에 익숙한 친근한 동료로 여겨지지만, 그들만의 사적인 대화나 감정 교류에는 완전히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을 종종 느꼈다. 이는 나를 '타인으로서의 남성'으로 규정 짓는 미묘한 경계심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나 자신도 스스로를 과도하게 검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팀 회의나 친목 모임에서 나는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까지 더욱 신중하게 점검한다. 이 민감한 공간에서 누군가를 불쾌하게 하거나 오해를 살까 봐 깊이 고민한다. 때로는 발언을 아예 포기하거나 조용히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된다. 이것이 지나친 자기 검열일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이미 나의 방어 기제가 되어버렸다.
또 다른 어려움은 기대되는 역할과 실제 역할 사이의 괴리다. '유일한 남자'인 내가 때로는 암묵적으로 정해진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느낀다. 동료들이 힘든 일을 내가 하길 기대할까 봐, 먼저 일을 맡아서 하곤 한다. 이는 사회적 기대에 대한 나만의 소소한 압박이다.
분명 이 여초 집단에서의 경험은 나를 성장시켰다.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법을 배웠고, 사고의 폭을 넓혔다. 동시에 이 환경은 끊임없이 나 자신을 성찰하고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결국 문학보다는 현장 경험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