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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미국 사회의 민낯을 고발: 마이클 무어 <식코>

by 꿈꾸는 곰돌이

병든 미국 사회의 민낯을 고발하다: 마이클 무어의 <식코>



2025년, 전 세계 악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지난 10여 년간 반미 정서는 그 어느 때보다 팽배해진 것 같다. 초강대국이자 '지구 방위대' 따위로 미화되던 미국의 추악한 실체가 트럼프의 폭주를 통해 속속들이 드러났기 때문이겠다. 아랍을 비롯한 전 세계에 수십억 달러나 하는 미사일을 쏟아부을 돈은 있으면서, 정작 자국민들은 제대로 된 의료보험 혜택조차 누리지 못하는 초라한 국가가 바로 미국이라는 현실은 마이클 무어 감독의 2007년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Sicko)가 고발하고자 했던 핵심과 맞닿아 있다.



영화는 충격적인 실제 사례로 시작해 관객의 허를 찌른다. 건설 현장에서 사고로 중지와 약지 손가락 두 개가 절단된 릭이라는 노동자의 이야기인데, 그는 두 손가락 중 하나만 선택해서 봉합해야 했다. 중지를 봉합하는 데는 6만 달러, 약지는 1만 2천 달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노동자에게 이 엄청난 비용은 감당하기 힘들었고, 결국 그는 '더 중요한' 손가락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비극적인 선택을 강요받는다. 이 장면은 돈이 없으면 인간의 기본권인 건강권마저 박탈당하는 미국 의료 시스템의 처참한 민낯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개인의 비극을 넘어서 미국의 민간 의료보험 제도의 구조적인 문제를 파고든다. 보험 가입을 거부당하거나, 겨우 보험에 가입했어도 로비로 탄탄해진 보험 카르텔에 의해 제대로 된 보장을 받지 못하는 평범한 미국인들의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깊은 분노를 안겨준다. 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거나, 보험사가 지불 거절을 위해 환자의 병명을 바꾸려 하는 등 충격적인 실화들이 이어진다. 이 영화는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신음하던 부시 정권 당시 처참했던 미국의 의료 제도를 적나라하게 해부한다.



'모두까기의 달인'이자 미국 민주당조차 아군으로 여기지 않는 마이클 무어 감독답게, 영화는 미국의 '엿 같은' 의료보험 시스템이 공화당 정권만의 문제가 아님을 지적한다. 빌 클린턴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 역시 의료 개혁에 무능력했음을 꼬집으며, 특히 한때 촉망받던 정치인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이 의료 제도 개혁을 배신한 과정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러한 연출은 주류 리버럴과는 거리를 둔 마이클 무어만의 특색 있는 시선으로 다가온다. 평생을 가정과 국가에 헌신한 노동자들이 처참한 미국 의료 제도의 허점을 알고 분노하는 장면들은 참으로 쓸쓸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장면들을 단순한 휴먼 다큐멘터리나 전통 시사 프로그램이 아닌, 예술적이고 풍자적인 다큐멘터리 영화로 풀어냈다는 점이 감독 마이클 무어의 진정한 강점이다. 날카로우면서도 경쾌한 연출 방식, 무책임한 시스템의 이면을 꼬집는 방식은 그가 왜 다큐멘터리의 거장으로 불리는지 증명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미국의 처참한 의료 현실을 극대화하기 위해 캐나다, 영국, 그리고 쿠바의 의료 체제와 비교한 지점이다. 캐나다에서는 모두가 진료 카드 하나로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영국은 무상 의료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심지어 공산주의 국가로 불리는 쿠바조차 미국의 9/11 구조대원들을 인도적으로 치료해주는 장면들은 통쾌하면서도 씁쓸한 감상을 남긴다. 이 과정에서 토니 벤 같은 좌파적인 인물을 만나기도 하고, 쿠바에서 의사인 체 게바라의 딸과 인터뷰한 점도 흥미롭긴 했다. 다만 상대적으로 보장이 잘 되었다고 해도 이 국가들 역시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어느 나라가 더 보장이 잘 되었는가 하는 수준의 비교에 머물렀다는 점은 아쉽다. 예리하게 시스템의 근본적인 한계를 꼬집지 못하고, 특히 계급 투쟁의 관점과 연관 짓지 못한 점, 그리고 쿠바의 국가자본주의적 의료 시스템의 한계를 초파하지 못한 점도 영화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던 아쉬운 대목이다.

<식코>는 확실히 미국 사회의 청진기 같다.

미국 민간 의료보험 조직의 부조리를 리듬감있게 드러내며 , 환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시스템을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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