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판 오페라의 유령?
영화를 빛내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총체적으로 조화를 이뤄야 한다. 훌륭한 각본, 이를 살려내는 연기, 그리고 이를 영상 미학으로 승화시키는 연출이 그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배우와 최고 수준의 연출을 선보일지라도, 각본이 단순히 진부한 복사판에 불과하다면 그 영화는 평범한 작품에 그치고 말 것이다. 장국영과 오천련이 출연한 동양판 오페라의 유령 <야반가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역설적으로 그 허점들을 메우는 완벽한 연출과 음악, 그리고 장국영이라는 배우 자체에 있다. 카메라는 당대 최고의 연출 기술을 선보인다. 웅장하면서도 섬세하게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고, 시대의 분위기를 완벽히 흡수한다.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포착해낸다. 당시 초라했던 홍콩 느와르와는 달리, 매우 섬세하고 현대적인 카메라 앵글이 인상적이다. 또한 OST 역시 매우 인상 깊다. 장국영-레슬리 장의 노래는 영화 속 비극적 사랑을 더욱 깊게 만들며 잊을 수 없는 여운을 남긴다. 당대 최고라 불릴 만한 미학적 성취. 그것이 바로 이 영화에 숨을 불어넣는 유일한 힘이다.
이 영화의 백미는 단연 장국영이다. 중국판 로미오로 비극적 운명을 지닌 '송단평'을 연기한 장국영은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준다. 그의 존재 앞에서 관객들은 플롯의 빈약함조차 잊게 된다.
하지만 그 모든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결국 장국영 이상을 보여주지 못한다. '오페라의 유령'과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을 어설프게 혼합한 듯한 플롯은 새로움을 제시하기보다는 익숙함에 안주하는 인상을 준다. 예견된 파국, 진부한 선악의 대립, 평면적인 캐릭터들. 겉모습은 화려하나 내러티브는 빈약하다. 장국영의 매력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그저 아름다운 배경음악과 영상미에 갇힌 평범한 멜로드라마로 남았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야반가성>은 장국영의 아우라와 카메라, 음악의 힘으로 간신히 생명을 유지한 영화다. 아름다운 서사에는 프롯의 상상력이 텅 비어있고, 완벽한 연출 안에 평범한 극본의 특징이 담고 있는 작품이다. 그 잔혹한 진실을 깨닫는 순간, 망령의 노래는 이내 아쉬움의 탄식으로 변모한다. 빛바랜 극장 안, 송단평의 비극적인 사랑은 영원히 울려 퍼지겠지만, 그 이상의 가치른 갖지 못하는 안타까운 재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