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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손길

왕가위 <에로스>에 비친 바타유적 에로티즘

by 꿈꾸는 곰돌이

불멸의 손길, 왕가위 <에로스>에 비친 바타유적 에로티즘

홍콩 영화에 빠져들며 왕가위 감독의 작품을 탐구할 때, <에로스>(2004)는 내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스티븐 소더버그,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와 함께 '에로스'를 다각도로 탐구한 세 편의 단편 중, 왕가위 감독의 '그녀의 손길(The Hand)'은 특히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작품은 왕가위의 전형적인 연출 기법인 재즈 선율이나 스텝 프린팅을 거의 배제한 채, 중편 영화의 호흡으로 진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그의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욕망'과 '인간 관계'의 본질을 깊이 탐구하며, 왕가위의 예술적 깊이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숨겨진 걸작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에로스와 허무라는 왕가위의 대표적인 주제를 감각적으로 묘사하고, 이 두 개념의 변증법을 통해 <에로스>를 그려낸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철학자와 예술가를 고민하다가 결국 조르주 바타유의 '에로티즘' 개념을 통해 접근하고자 한다. 육체적 행위를 넘어선 존재론적 에로티즘의 영역을 탐색하는 '그녀의 손길'은 바타유가 말한 욕망, 죽음, 상실, 초월의 핵심 개념과 놀랍도록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줄거리를 살펴보자. 한 줄로 요약하자면, 접촉으로 순간이 영원이 되어가는 서사라 할 수 있다. 영화는 1960년대 홍콩을 배경으로, 젊은 재단사 샤오 장(장첸 분)은 고급 매춘부 후 아(공리 분)를 만나며 시작한다. 첫 만남부터 샤오 장은 그녀의 '손짓'을 통해 관능적인 아우라를 풍기는 후아에게 강렬한 끌림과 묘한 경외감을 느낀다. 그는 후아를 위해 완벽한 의상을 만들기 위해 온 정성을 다하며, 그의 손은 후아의 몸을 측정하고 어루만지는 과정에서 깊은 감각적 교감의 매개체가 된다. 시간이 흘러 후아는 뛰어난 미모와 수완으로 사회적 명성과 부를 얻지만, 알 수 없는 병으로 점차 쇠약해진다. 그녀의 몸이 병들고 과거의 아름다움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샤오 장의 후아에 대한 욕망과 헌신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죽음을 향해가는 그녀의 곁을 묵묵히 지키며, 오직 그녀의 '손'을 통해 마지막 교감을 나눈다. 모든 것을 잃은 후아가 "성한 건 손뿐"이라고 절망적으로 말할 때조차도, 샤오 장은 그 손을 잡으며 영원하고 숭고한 유대감을 확인한다. 이 영화는 신분과 시간을 초월하여 깊어지는 두 남녀의 관계를 에로틱하면서도 지극히 문학적인 서사로 그려낸다. 단 한 번의 베드신이나 키스신 없이도 말이다. 무엇보다 여성 주인공에 대한 대상화 없이(카메라에 의해 대상화된 신체는 아마도 메니큐어가 칠해진 그녀의 손뿐일 것이다) 숨막히면서도 숭고한 에로티즘을 재현한다.

프랑스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는 에로티즘의 본질을 죽음과 깊이 연결지어 해석했다. 그는 "에로티즘, 그것은 죽음까지 인정하는 삶"이라고 말할 정도로 성과 죽음의 충동을 변증법적으로 이해했다. 생명 재생산의 본능으로 에로티즘을 설명하는 쇼펜하우어와 달리, 바타유는 에로티즘을 금기의 위반으로 정의했다. 그에게 에로티즘은 개별적 존재가 금기를 깨뜨리고 파괴적 행위를 통해 다른 존재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근원적 욕망이었다. 이는 죽음, 고독, 침묵,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극단적 경험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다시 말해, 에로티즘은 삶의 연속성을 상실하는 죽음을 인정하며 금기와 사회적 규범의 경계를 넘어 인간 존재의 심연을 탐색하는 행위인 것이다. <에로스: 그녀의 손길>에서 나는 바타유적 에로티즘이 섬세하게 구현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손'의 상징성이 두드러진다. 영화 제목의 '손'은 단순한 신체 부위를 넘어 에로티즘의 핵심 상징이자 연결고리가 된다. 샤오 장의 손길은 후아의 몸을 어루만지며 육체적 접촉을 넘어선 정신적, 감각적 교감을 이끌어낸다. 이 접촉은 당시의 사회적 계급 경계를 허물고, 금기시될 수 있는 매춘부와의 관계를 신성하고 순수한 것으로 승화시킨다. 바타유가 에로티즘을 "죽음까지 인정하는 삶"으로 보았듯, 샤오 장의 손은 후아의 젊음과 아름다움은 물론 병든 몸과 죽음의 고통까지 포용한다. 이는 육체적 쾌락을 넘어선 영적 합일, 즉 불연속적 존재들이 연속성을 향해 나아가는 바타유적 욕망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욕망의 초월성과 죽음의 불가피한 연결고리가 드러난다. 후아의 육체가 쇠약해지는 과정은 바타유 에로티즘에서 '죽음'이 가지는 압도적 중요성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바타유에게 에로티즘은 존재의 한계와 마주하는 궁극적 경험이며, 죽음을 향한 욕망과 깊이 연결된다. 샤오 장은 병으로 쇠락해가는 후아에게서도 강렬한 욕망을 느끼며, 그의 '손'을 통한 교감은 건강한 육체에 대한 단순한 갈망을 넘어선다. 그것은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본질적 끌림이자 헌신이다.

셋째, 금기 위반과 기사도적 헌신이 두드러진다. 시대적 금기와 사회적 낙인, 치명적 질병이라는 상황 속에서 샤오 장의 후아를 향한 헌신은 파괴적이면서도 초월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그는 사회적 시선과 비난을 초월해 후아에게 모든 것을 바치며, 도덕적 경계를 넘어 자아의 해체와 합일의 순간을 경험한다.

에로티즘에 무지한 평론가의 관점에서 왕가위의 <에로스>는 바타유의 에로티즘 없이는 '몽정기'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바타유의 에로티즘으로 해석하면, 상징계의 문법으로는 이해할 수 없던 영화의 서사가 명확해진다. 이 작품은 성애적 재현을 넘어 종교적 접촉, 인간 존재의 깊은 욕망, 죽음과의 대면, 금기 초월을 통한 연속성 탐구라는 철학적 관점을 완벽하게 구현해낸다. 샤오 장과 후아의 관계는 육체적 접촉을 넘어선 감각적 교감과 헌신을 통해 바타유적 에로티즘의 서사를 완성하며, 에로티즘의 종교적 마력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나는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왕가위의 숨겨진 걸작 중 하나로 평가한다.

P.S

영화 에세이고, 비평의 꿈만 꾸다가 <에로티즘>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흐지부지된 글. 딱 한 번 혼자 강독해서 읽었던 <에로티즘>이라, 무지한 부분이 많으니 프랑스 철학 전문가들에게 부끄럽습니다.

참고 자료

- blog.naver.com - 에로스 (왕가위, 2005) :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victory4825/222249820739)

- cine21.com - 그녀의 손길이 의미하는 것, <에로스>의 왕가위 편 <그녀의 손길> (https://cine21.com/news/view/?mag_id=31995)

->훨씬 더 노골적인데... 영화 비평만이 할 수 있는 매력

- 씨네21 - 사랑하는 기술에 대한 보고서, <에로스> - 씨네21 (https://cine21.com/news/view/?mag_id=3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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